안녕, 뜨겁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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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어디 소설집에서 만났을 수도 있지만 기억에 없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은혜로 좋은 책들을 두루 만나고 있어 즐겁다(물론 서평단에 용감히 신청해서지만-). 서평단의 책이 오면 늘 선물받은 기분이라 먼저 읽게 된다. 이번에는 몹시 적절한 순간이었다. 너무 슬픈 소설집을 읽고 많이 울고 많이 외로웠던 차에 읽은 이 소설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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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체념에 억눌린 삶을 살아간다. 대부분이 그렇다. 어린이도 젊은이도 꿈을 가지기 어렵다. ‘잠을 자야 꿈을 꿀 게 아닌가’라는 농담처럼 잠을 자고 생각을 다듬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 꿈을 가져도 ‘비현실적이고 철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일 수다. 꿈도 없이 체념하고 포기한 주제에 라며 비난하기 전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주고 좋아하는 것을 찾을 시간도 주고 천천히 실패할 기회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답답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과 어디에서도 마주하기 힘든 인물이 만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 받았을까? 아- 사랑이야기 면서도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사랑의 기억에 붙들려 있지만 또 막 절절하진 않다. 그래도 사랑이, 사람이 가고 난 자리는 너무 선명하게 남고 그 순간은 어딘지 실제가 아닌 환상처럼 기억된다. 덩어리진 아픈 기억 하나 없는 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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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글은 몹시 참신하다. 너무 뻔하고 그래서 막막한 이야기에 외계인이 등장한다. 말도 안되는 납득하기 힘든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저 외면하고 무시할 수는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은 믿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내 기억을 내가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 다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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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를 작가는 소설로 만들어 냈다.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우습지도 않고 구질구질하지도 않고 허무맹랑하지도 않은 진심이 담긴 이야기. 우리는 그 무시할 수 없는 진심을 왜 감추며 살아야 할까. 알고보면 다들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괴롭히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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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적인 재미와 불안에 가득찬 사람들에게 주는 적당한 거리감의 위로와 무시당하는 존재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실 기대 이상이고 몹시 만족스럽다. 작가는 이야기를 버무릴 줄 아는 것이다.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고 누구에게는 판타지로 누구에게는 감성소설로 누구에게는 현대문학으로 다가간다. 이 작가의 글을 더 만나봐야겠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가지고 있구나 싶어서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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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작가는 그 노래를 알까?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로 시작하는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 찾아봤더니 싸이나 토이의 동명의 곡이 있다. 내가 확 늙어버린 이 기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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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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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고 큰 감명을 받거나 하지 않았다. 괜찮네, 정도 였달까? 물론 단 한 권에 그 작가에게 빠져드는 일은 드물다. 한 두권쯤 더 읽어보고 싶다,에서 작가를 알고 싶다,로 더 가서는 전작을 읽어야겠어.에 이르는 점진적인 단계를 거치고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 까지난 짧아도 몇 년은 걸리는 것 같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포함), 폴 오스터, 움베르트 에코, 버지니아 울프,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의 줄리언 반스 정도가 좋아한다고 고백하게 하는 작가들이고 의심없이 그들의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전작을 읽고 싶다의 단계로 끝나기도 하고 거의 전작을 읽어와놓고 이제 그만으로 더이상 찾지 않는 작가도 제법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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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세 권과는 다르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섬세한 감각은 여전하다.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읽은 것이 4권, 이 작가가 어떻다고 말하기에 앞서 더 읽어야 겠다. 전작을 읽고 싶다, 단계까지 단숨에 이른 기분이다. 향수와 화해, 공감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사뭇 달라서 전작과 작가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사야할, 사고 싶은, 읽고 싶은 목록은 아무리 열심히 사고 부지런히 읽어도 줄어들 지 않고 늘기만 한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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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세 권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면 이 글에선 현재와 미래를 잇고 있다. 우리가 단순한 목적을 위해 창조되었다면 다른 미래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이 오로지 목적대로 사용되고 소멸된다면. 우리의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고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가질 수 있을까? 목적을 너무 일찍 알게 된다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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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소통이 가능한 관계들이 있다. 어떻게 돌아서 헤메다가 만나더라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관계.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너도 누군가 만나겠지가 아니라 정해진 운명적인 제 짝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는 그 짝을 만날 수 있을까? 만나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까? 혹 사소한 실수와 오해로 저버리는 일은 없을까? 나는 만났을까? 놓쳤을까? 의식조차 못하고 지나쳤을까? 언젠가 너무 늦게 발견하게 될까? 지나친 망상. 때론 오해하고 때론 소망하고 때론 체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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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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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후 영화를 못 본 것이 아쉬웠다. 남한산성을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낸 것도 봤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 의중은 있으되 무기력한 인조도 의와 예가 목숨보다 중한 김상헌도 살아야 무엇이든 도모한다는 최명길도 이리저리 휘어지며 상황을 기다리는 김류도 모두 원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그 자리에서 나라가 주저앉지 않게 하는 것. 조선에서 나라는 곧 임금이었고, 그 임금이 죽으면 나라는 끝이다.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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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맞고 지금은 달라졌다. 남한산성의 보이는 싸움과 보이지 않는 싸움들 끝에 삼전도의 굴욕이 남았고 그 뒤로도 조선에겐 200년의 역사가 더 남겨졌다. 시대적 상황, 그 시대의 윤리와 가치와 도덕. 무엇이 중요한가는 계속 달라져왔으나 지금 어느 무도하고 광포한 세력이 이 나라의 대통령을 인질로 잡는다면 그 다음의 선택이 남는다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없어도 국가가 사라지지 않고 국민이 존재하면 국가의 지속이 가능한 이 시대에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다. 그 시대에 대입하자면 많은 백성이 희생 당했으나 지켜야 할 백성이 더 많았고, 많은 백성이 주권을 잃었으나 모두 잃지 않았고, 많은 영토를 짓밟혔으나 아직 빼앗기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켜야 할 것이 있어서 온전히 남은 것들을 생각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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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의 말처럼 ‘짐이 곧 국가’고 임금은 ‘하늘이 내린 나라의 주인’인 시대라 청의 요구는 납득하고 수용할 수 없는 치욕이리라. 조선을 이어받은 한국은 작은 반도국가일 뿐이다. 덩치 크고 힘 센 나라들 틈새에 끼인데다 동양과 서양의 대척점이고 정치 이념의 대척점이라 이 작은 내 나라는 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당당하지 못했다. 그것에 매번 화가 나더라. 상황은 어쩔 수 없다지만 잘 이용할 수도 있을텐데, 어쩌면 이롭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을텐데 하며 분개했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더했던 우리의 대표가 타국의 대표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봐주기 힘들었다. 나라가 작건 크건 힘이 세건 약하건 나라의 대표이니 만큼 대등하게 손을 잡고 대등하게 마주하길 바랐을 뿐이다. 입지가 좋지 않다고 쉽게 체념하고 굽실거리는 사람을 대표로 두고 싶진 않았다. 그 점에서 나는 김상헌과 닮았다. 치욕과 굴욕을 국민에게 전가하지 말로 당당하고 바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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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최명길이 그른가. 치욕보다 목숨이 중하다하는 것은 틀렸는가. 아니다. 제 목숨을 담보로 타인의 치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되나 내 목숨과 더 많은 목숨을 위해 치욕을 감당하는 것은 숭고한 희생이다. 그로 인해 나라를 지키고 목숨을 지킨다면 그것을 감당하는 것 역시 국가의 대표인 임금이 할 일이다. 국민을 담보로 국토를 담보로 제 치욕을 지킨다면 그것은 왕의 자격을 잃는 일이 아닐까.
무엇이 중한가. 순간의 수치와 굴욕으로 많은 것을 지켜낸다면 그것이 어찌 단순한 치욕과 굴욕이겠는가. 삼전도의 치욕은 인조의 치욕이 아니다. 그것이 슬프고 원통한 이유는 작고 약한 나라가 살아남는 방편이었단 사실이지. 이제 우리에게 그런 굴욕의 역사가 반복되길 원하지 않는 갈망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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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했다. 어떻게든 지켜야했다. 생각할 것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이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나라를 지키고자 했고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탁상공론이나 하고 드잡이질이나 하는 높은 자리에서 나라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양반님네들과 나라보다 목숨과 생존이 중한 뭇 백성들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과거는 단지 과거에 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의미있는 이유는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뼈아프게 알고 배워야 한다. 그것은 권리이자 의무이고 뒷세대를 위한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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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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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연작이래도 믿을만큼. 작가는 인터뷰에서 ‘창백한 언덕 풍경’,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남아있는 나날’ 세 편에 대해 세편의 같은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한다. 앞의 두 편은 너무 닮았지만 ‘남아 있는 나날’은 좀 다르지 않나. 배경만 봐도. 싶지만 세 편의 이야기에서 나는 ‘늙은 주검은 젊은 주검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글귀가 자꾸 떠올랐음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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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젊은이들을 비롯한 전반적인 일본의 사회분위기는 전범에 대해 몹시 회의적인 분위기였나 보다.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그들이 살아낸 방법과 태도에 대해 부정하고 비판한다. 글에서는 그것을 소리쳐 외치지 않는다. 그저 그런 분위기를 드러내고 그 속에 놓인 그들의 상황과 심리를 드러낸다. 전쟁을 이유로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자명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어느때고 있어왔던 일이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가 젊어서 듣던 말이고 우리 조부모 세대 역시 젊어서 듣던 말이다. 요즘 애들에서 어느새 늙은 할아버지가 되버린 그들은 청춘의 수고와 열정이 억울하고 내심 자부심을 갖는다. 그것 또한 세대의 반복되는 변화일 것이다. 안타까움은 뒤로하고 얼마간은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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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에 따라 세대가 화해하는 방법, 더불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을 잘 터득해야 근사한 노인이 될 수 있다. 지혜와 너그로움이 동시에 요구된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많은 것이 요구된다. 나이를 공으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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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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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신뢰하는 편이다. 수상작가의 글을 챙겨보는 편인데, 수상 전에 그 작가를 알고 있거나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경우들이 있고 왠지 만족스럽기도 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역시 ‘남아 있는 날들’을 통해 먼저 만난 작가였다. 제목이 그렇듯이 서정적이다. 아마도 번역을 하며 제목이 가장 신경쓰일 텐데 직역이 아닌 의역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은 글이나 작가의 이미지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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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이전 세대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왜곡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행위와 가치가 모두 정당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결과론에 의해 전쟁에 패한 것은 과거의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라거나 내가 모성이 부족하고 이기적이이어서 내 아이가 불행하다.는 단순한 인과가 아니다. 과거의 당위성, 그 시대의 가치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할 것은 그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수고와 불가피했던 시대적 요구를 잘 해결하고 지금에 이르게 된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세대간의 차이이다. 현재를 긍정하고 미래를 기대한다고 해서 과거를 부정해선 안된다. 현재가 있는 것은 과거가 있기 때문이고 현재는 미래를 만든다. 그것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지우고 없애고 무시하고 덮어둬선 열심인 현재도 멀끔한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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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다정하다. 문체도 인물들도 다정하지만 그저 그렇게 그치진 않는다.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이렇게 저렇게 지나온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억울해서일 뿐이다. 패배가 억울하니 이유가 필요하고 과거의 노력이 억울하니 사과받아야겠다. 그것은 변했을 뿐이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고 그래서 변했고 지금 역시 미래와 다르고 변해가는 중이다. 우리는 결국은 짐작하며 살아갈 뿐이다. 지금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밖에. 나중에 그 때 그건 잘못된 던 것 같다고 누가 말하면. 조용히 긍정하며 변명하고 싶다.
‘그래 확실히 이제보니 잘못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것이었다. 옳다고 믿었고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되버린 것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지만 어쩌겠니. 나로써는 별 도리가 없었단다. 그 때의 세상은 그 만큼이었거든.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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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단다, 니키. 넌 네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돼”

#창백한언덕풍경 #가즈오이시구로 #민음사모던클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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