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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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무게감이 필요했다. 한참 전에 p님께 재밌다는 얘길 들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편두통이 사라질 뻔한 결말이라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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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맞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끔찍하고 지긋지긋한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어떤 희망이나 해결책을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법과 정의가 살아 있어서 호소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법과 정의는 밝은 곳에 있어 어둠에 못 미치는 일이 많다. 그 때 우리에겐 어떤 선택이 남겨질까. 가장 극단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구원의 동앗줄처럼 여겨진다. 일단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다. 다른 길 따위는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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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일어서고 힘을 내고 없는 머리를 쥐어짜고 내달리고 정신차리게 만드는 그 것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내게는 무엇, 네게는 무엇. 그렇다면 우리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평소와 같은 내가 아니라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겐 유독 예민한 부분들이 있다. 먼저 식탁에서 불편한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 싫다. 얘기는 밥 먹고 그 다음에 진지하게 하는 게 좋다. 체할 것 같은 상황은 너무 싫다. 그리고 일상적인 공중도덕이나 법의 위반을 싫어한다. 쓰레기 무단투기, 가벼운 음주운전, 안전불감증,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과 공공기물 파손 등이 싫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도 너무 싫다. 동물학대도 싫고 비속어 사용도 싫고 강요와 압박에 늘 반기를 든다. 낱낱이 세다보면 싫은 게 너무 많고 좋은 건 얼마 안되는 불평불만분자가 된 기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바른생활인간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아서 제멋대로 산다. 취향이든 성격이든 제멋대로 좋을대로 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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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식간에 나쁜 것은 생각지 않으려 한다. 그런 얘기 해봐야 기분만 나쁘다고 누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라고 내 운이 나쁘고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참는 것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물론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게도 있었고 지나왔고 또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런 순간에도 분명 누군가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있어서 단순히 대화상대가 되줄 수도 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나름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반증이므로 감사히 받아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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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마와 루이스. 나오미와 가나코.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할 수 있는 데 까지 해보자. 물론 살인을 권장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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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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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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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동화가 아니고서야 가능한 일인가를 따지고 들자면야 세상의 많은 일들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안되는 것과 되는 것을 구분하고 쉽게 미리 포기하는 법을 터득하는 어른들에게 일단 의지를 가지고 시도는 해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일단 나부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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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른 주제를 가진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건 나는 그 안에서 양육에 대해 배운다. 고양이가 아기 갈매기를 양육하는 태도에서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을 엿보는 것이다. 아이가 개별적 존재임을 인정하고 아이를 사랑할 것. 다르기 때문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교육할 것. 양육하는 자의 서툼을 받아들일 것. 아이보다 먼저 포기하지 말 것.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것. 다르기 때문에 더욱 사랑할 것. 나는 어떤 부모였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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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니까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소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일이 많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경청하지 않는다. 내가 다 가질 수 없고 내가 다 알 수 없으니 다른 타인이 의미있고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자 한다면 나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일 것이다. 달라서 사랑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오만이다. 그 오만을 벗어던져야 내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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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이야기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다. 역시 고양이는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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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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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희귀한 생명체란다. 글쎄- 하고 체감하지 못하다가도 베스트셀러들을 관찰하다보면 역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진다. 나는 멀쩡한 독자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 읽기에 문제는 없는가에 대한 걱정이랄까? 물론 각자의 방식이 있고 즐거우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책 좀 읽는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지적허영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식자가 되고픈 것은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쯤은 되고 싶은 것이다. 그 부분은 책이든 차든 비슷하다. 잘 모르지만 좋아합니다! 잘 모르지만 즐겨합니다! 라는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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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독자를 세 부류로 구분한다. ‘여행자로서의 독자', '상아탑 속의 독자’, '책벌레’의 세 분류에서 예로 든 인물들 역시 책과 밀접하다. ‘여행자로서의 독자’에서는 단테를 ‘상아탑 속의 독자’로는 햄릿을 ‘책벌레’로는 돈키호테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저자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저자가 괜찮은 독자로 인정하는 부류는 ‘여행자로서의 독자’인 듯 하지만 삶을 망치지만 않는다면 어떤 부류의 독자든 책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으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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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독자인가. 책벌레든 책바보여도 좋으니 실컷 사서 실컷 읽었으면 좋겠다. 과거에야 어쨌든 지금은 김영하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읽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들 중에서 읽는 것이고 이동진 씨의 말에 의하면 재밌으면 장땡이라 읽다가 말아도 중간부터 읽어도 다 독서란다. 그냥 제멋대로 좋을대로 신나게 읽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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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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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집인 ‘웃는남자’ 때문에 구입했다. 기대가 컸는지 약간 실망했다. 너무 관념적이다. 현실에 착 달라붙지 않은 약간 붕뜬 세계. 고통은 알지만 명확한 현실보단 가정형의 세계 같다. 수상집에 나온 짧은 소설의 장편이 읽고 싶었는데, 이건 장편이 아니고 연작소설? 아니 단편모음이다. 소재는 같다고 해도 장편소설이라고 이름할 순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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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모르고 관념적인 것은 작가나 글이 아닌 내가 아닌가 되짚어본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글 속의 모든 소재는 내게 너무 익숙하고 현실적이다. 이야기들이 어색하고 불편한 게 아니라 표현이 어색하다. 아니 어딘지 솔직하지 못하다. 그러고보니 ‘솔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다. 솔직한 사람, 솔직한 말, 솔직한 마음을 마주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솔직하고 싶다. 가감없이 솔직할 수 있는 대상이 단 하나쯤은 존재해야 되는 게 아닐까? 솔직할 수 없고 에둘러야 하는 세상에서 솔직한 감정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무엇이 ‘솔직한 것’인지 느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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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 안 읽었지만 작가의 글은 왠지 판타지로 다가온다. 아니 ‘미사고의 숲’처럼 모호한 경게처럼 다가온다. 15년 전?쯤 그 글은 몹시 충격적이었는데, 이제 더 발칙하고 적나라하고 추상적이고 모호한 이야기들도 넘쳐난다. 이 기분으로 마거릿 애트우드를 읽었다간 과격한 페미니스트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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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는 대부분의 글에서 불안을 발견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인지 내 심리상태인지 모르겠다. 스물아홉의 고통스러웠던 가을을 얇게 펴서 온 한해 동안 느끼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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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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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 결혼이나 출산을 앞둔 젊은 부부는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도 안 읽었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허구나 가상의 세계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인식될 때 변화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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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즐겁게 꿈을 쫓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젊은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첫 아이와의 만남이 너무 행복해서 둘째를 가졌다. 두 아이가 되자 감당할 수 없어졌고 점점 꿈도 잃고 자신도 잃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졌다. 기회가 왔고 숙고 끝에 보모를 구했다. 아이들과 너무 잘 지내고 집안일까지 완벽히 해주는 보모를 만나 젊은 부부는 다시 꿈을 찾고 안정되어 간다. 여기까지면 좋았다. 그 완벽한 보모에게 다른 세계가 있을 거라는 것을 몰랐을 때까지. 그림같은 행복과 완전한 가정을 지탱하는 보모에게 감사와 애정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사는 것은 그리 쉽지 않고 모든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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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와 육아에 대한 이야기. 생존을 위한 조건에 대한 이야기. 숨겨진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 불안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그 모든 것이 엉켜있고 그래서 삶은 쉽지 않고 복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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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문장들이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을 던져준다. 그 전에 책 속 가득한 불안을 본다.
우리는 때로 모성에 대해 오해한다. 지나친 환상을 품는다.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모성이 저절로 생기고 넘쳐나길 기대한다. 왜? 왜 우리는 위대한 모성을 바라는가. 왜 그것을 당연시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지 않는가. 모성은 자연발화되는 무엇이 아니라 지극한 인내와 수고와 노력이다. 끝없이 나와 아이를 저울질하고 매번 져야하는 끝없는 체념이다. 그 모든 것을 당연한 듯 감당하게 해서는 안된다. 간혹 젊고 사랑스럽고 의욕이 넘치는 부부 혹은 엄마에게서 그림자를 본다. 아이는 행복하고 만족한다. 그럼 당신은 괜찮은가? 정말로 괜찮은가? 당신의 인생은 아이의 출산을 기점으로 들러리나 도우미로 전락해도 괜찮은가?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나? 묻고 싶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부모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옳을까? 부모의 꿈을 위해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옳을까? 문제는 균형이다. 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 인류는 기형적인 연령 비율을 지나 멸종할지도 모른다. 단순한 젠더 싸움이어선 안된다. 이 혐오 속에 아이와 양육을 원인으로 만들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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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인간은 모두 소중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나는 종종 내 이상과 소망이 너무 먼 곳을 향해있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는 누구도 안전과 안정과 행복과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더딘 걸음이어도 내딛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개인과 사회는 긴밀하다. 그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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