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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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라는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이 책을 망가지고 부서진 자신과의 화해과정이라 부르고 싶다. 10대 후반 버지니아 울프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다른 어떤 것보다 나를 위로했던 한 문장이었다. 20년도 더 지나서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죄에 대한 형벌이 너무 무겁다는 의미였다. 록산 게이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대부분 충격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자책하게 된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하다가도 결국은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래, 잘못했을 수도 있다. 내게도 일말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형벌이다. 설령 내게 원인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에 대한 형벌로 고통이 따라온 것이 아니다. 명백히 피해자임에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무수한 타인에게 지독하게 고통을 당하면서 끝없이 내게서 원인을 찾는다. 그것은 반성과 성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가하는 형벌일 뿐이다. 세상을 내뜻대로 바꿀 수 없으니 나를 난도질 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느껴지지만 나를 가장 확실히 망치고 만다.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선 끝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스스로는 절대 발견할 수 없을 존재 의의를 찾게 된다. 아, 나는 살아야 하는 구나. 나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였구나.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구나.를 깨닫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명백히 몸에 대한 기록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무엇을 대입해도 관계없다. 몸의 외형에 대한 것이 아닌 몸의 내구성에 대입해 읽었다. 나는 만삭 때를 포함해 63kg를 넘어본 적이 없다. 키도 작은 편은 아니라 뚱뚱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30대 이후 체중이 늘어서 이 정도고 53kg 이하로 30년을 살았다. 하지만 아프고 불안한 몸으로 25년을 살아왔다.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것이 더 불편하고 힘들었다. 괜찮은 척을 위해 애썼고 비난도 조언도 수없이 들었다. 록산 게이 만큼은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 몸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모든 제약과 불편은 몸에서 비롯된 것처럼 여겨졌다. 변화를 위한 노력도 의지도 원망이나 불안보다 늘 부족했다. 앞으로도 분명 활기 넘치고 건강한 삶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과 조언과 염려도 여전할테고- 하지만 내겐‘개의치않는 방법’과 ‘그럴 수도 있지’라는 강력한 무기가 생겼다. 무기가 생기고 그 무기에 완전히 적응하고 나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의지도 따라왔다. 만족할만큼은 아니라고 좀 더 나은 내게 될 수 있을거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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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에단 호크 지음, 우지현 그림, 오득주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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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자신의 글을 써오지 않은 사람들은 균형감이 부족하다. 이야기와 의미를 균형감있게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빼고 줄이고 그러면서 매끄럽고 솔직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전업작가가 아닌 경우는 특히 더해서 이게 소설인지 수필인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런면에서 꽤 잘 쓴 소설이라 생각한다.
사랑과 종교, 사실 그저 사는 이야기다. 젊은 남녀의 성장과정. 혹은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누가 나쁘고 누가 옳고 누가 훌륭한가는 중요치 않다. 모두가 다양한 부분을 가진채 다른 이들과 맞물려 살아간다. 결국 우리는 불안을 이기고 상대를 기꺼이 여기고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방법이 다를 뿐. 그렇게들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그의 새 소설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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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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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다.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 만큼은 절대 공감한다. 모든 어른에게 외치고 싶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279p’ 자녀가 있고 없고에 관계없다. 여기서 자기 아이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상이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치환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 반려동물 등 무엇으로도 가능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소 평가해서도 과대평가해서도 안된다. 현실은 내 의도, 의지, 계획대로 굴러가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안녕과 내 아이의 안녕을 위해 사회의 안녕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나와 내 아이의 안녕만을 위해 사회도 국가도 법도 도덕도 모두 저버린 자는 언젠가는 구속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는 신을 말하며 신을 믿지 않은 것이다. 모두 제 손아귀에서 가능하리라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소심한 개인주의자가 전투적 개인주의자가 되기까지 그는 세상을 보고 듣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었다. 나이는 절로 먹고 자녀는 선택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고 듣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의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탓할 수 없다. 권리는 의무와 함께 오는 것이다.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최소한의 것부터, 각자가 가능한 만큼. 그렇게 세상은 변해왔고 변해갈 것이다.

더러는 이 책에서 과거를 보고, 더러는 이 책에서 현재를 읽고, 나는 이 책을 통해 미래를 꿈꾼다. 허황되든 아니든 성과가 있든 없든 이효리 말마따나 가능한 것만 꿈꾸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꿈꾸고 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일은 해나가는 무수한 개인주의자들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집단과 개인은 사회와 나는 명확한 경계와 구분이 불가능한 것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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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최승범 지음 / 생각의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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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내 주변의 누구보다 페미니스트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말로 뱉어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의 다른 말이라는 오해.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라는 오해. 스스로 확신하기까지 시간과 정보와 생각이 필요했다. 그것들을 쌓아가는 과정에 김슨생을 동참시켰다. 사춘기 청소년인 아들을 동참시켰다. 잘 들어준 두 남자 덕분에 좀 더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명백히 페미니스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기울어진 현실을 확인하고 전달해야겠다. 작가도 말했듯이 남성의 말이 더 효과적이고 신뢰를 얻는다. 그것이 현실이고 그 현실에 따라 이 책을 구입하고 읽었으며 읽게 할 생각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왕관을 씌우고 권력을 주자는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 뿐만이 아닌 남성 역시 자유로워지는 운동이며 성대결이 아닌 사회 공감능력을 키우는 운동이다. 우리는 지독히 오해하고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비틀린 상태였는지를 인정하고 반성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에 놀라게 된다. 나도 내 아들도 내 남편도 그릇된 성 관습에 자유롭길 바란다. 좀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아들과 남편을 사랑한다고 해서 남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격에 통큰 성격이라도 그렇다). 반대로 우리집의 두남자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데도(의심없이 확신한다) 여자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생각과 노력을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생각이 틀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럴수도 있다. 최소한 의심하고 반문하길 바란다. 대체 무엇인지 알고자 하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남성들에게 해주고픈 말들이 여기 씌여있다. 그것이 정답은 아니라도 모두 공감할 순 없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며 한 문장씩 읽어가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내와 더 사랑하는 딸을 가진 남동생에게 선물하려 두 권을 구입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남성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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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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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이 넘는 책을 읽으며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모두의 손에 이 책을 쥐어주고 싶다. 모두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과 사람이 어떤 비밀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어떤 것을 어떻게 감당하는 지에 대해,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지,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때로 원인이나 과정에 대한 것을 지우고 눈앞의 현실에 지나치게 집중한다. 각자 제 방법대로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유리한 쪽으로 효율적인 쪽으로 쉬운 쪽으로 선택한다. 그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옳고 당연하다 굳게 믿는다. 마치 믿으면 진실이 되기라도 하는 것 처럼. 믿음은 중요하다 . 아니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믿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해변의 모래성에 불과하다.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잊어선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것이 없이 어느날 뚝딱 만들어진 현실이란 없다. 다소 번거롭고 불편하고 피곤하고 손해보고 원망을 듣고 내쳐지더라도 외면해선 안된다. 우리는 자주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당연시 한다. 문제는 그 ‘소’ 역시 각각의 생명이고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든 내가 ‘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눈앞에 없다고 잊는다. 잊고 외면하다가 당하고 만다. 우리는 모두 강자인 반면 약자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속한 개별적인 존재다. 우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거기서 거기인 인간이다. 그렇기에 기준은 중요하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이상주의자, 원칙주의자,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 고집불통이라고 비웃음을 살지라도 모든 것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아주 단순한 진리와 원칙.
내 기준은 이렇다.
1)모든 생명은 소중해서 그 어떤 것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2)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해야 한다. 동시에 다름은 인정되어야 한다. 3)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아무리 불편하고 두렵다해도-
나머지는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다. 기준이 확고해도 완전히 지키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최소한 수치를 알고 반성하고 조금씩 더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 외엔 도리가 없다. 최소한의 법이라도 그 자체를 우습고 피곤하고 의미없는 것이라 여겨선 안된다. 그것이 때론 부조리하고 불합리해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울지라도. 그 자체를 원망해선 안된다. 잘못된 기준이 있다면 바로 잡으려 노력하면 된다. 오랜 시간에 걸친 부단한 노력들이 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 번쩍하는 화려한 것이 아닌 언제나 한결같은 작고 소중한 노력들이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 아무튼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한 이야기가 잘 쓰여진 글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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