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죽화의 존재를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뮬란(위목란) 이나, 프랑스의 잔 다르크는 익히 들어보았지만, 정작 고려의 설죽화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녀 전사 설죽화는 1018년 고려 - 거란 제3차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로 강감찬 장군의 휘하에 있습니다. 읽을수록 가슴이 뛰고 빠져드는 그녀의 매력은 끝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무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생각하기보다는 동료와 이웃을 배려하고 더 나아가 나라의 장래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무술을 배우러 왔으니 무술 수련 기간에는 분노를 삭이고 오로지 목표 달성에만 전념해야 한다. 우리 동림산채의 무예는 검술과 창술 그리고 궁술이 기본이다. 이 세가지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 외에 마상 궁술과 수박은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한 무예 종목이다. p. 69 굴암산에 들다
고작 13살의 어린 소녀.
거란과의 전쟁에서 장렬히 전사한 고려장군이던 아버지의 복수를 꿈꾼다.
이름부터 '설죽화'에서 '이설죽'으로 바꾸고 남장을 한 채 굴암산에 들어가 도인들에게 무술을 배우고 산채생활을 한다. 말이 쉽지 산도적 같은 남자들만 우굴우굴한 곳에서 여자임을 감추고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설죽, 혼자는 위험하다."
맹호가 소리쳤다. 설죽의 안광이 얼마나 강렬한지 호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떨구고 설죽의 시선을 피했다. 호랑이 한 마리가 설죽을 향해 거리를 좁혔다. 호랑이가 한 번에 뛰는 폭이 어른 대여섯 명이 한 줄로 누워 있는 길이 정도였다. 두 마리가 동시에 길게 포효하고 나더니 땅을 박차고 설죽에게 덤벼들었다. 호랑이들이 뛰어오르자, 설죽도 땅을 박차고 호랑이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p.117 굴암산에 들다
설죽의 활약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굴암산에서 호랑이 세마리를 혼자 때려잡는 장면은 기가 막히다.
이렇게 멋진 여전사가 고려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뿌듯했다.
6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지루한 줄도 모르고 몰입해서 읽었다.
재미는 물론이고 깊은 감동을 주는 소설이다.
딸만 둘을 키운 나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 구절이 많았다.
전쟁을 겪으면서 여인의 신분을 숨기고 전쟁터에서 칼을 휘둘러야 했던 설죽화도 그렇고,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같은 신세인 여리디여린 백성들, 함부로 취급당해야 했던 연약한 부녀자들, 심지어 무능한 임금과 그 신하들까지도... 안타까운 장면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