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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코 상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펄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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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5유형 그림책 작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사노 요코가 에니어그램 4유형이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 난 이 분 그림책을 다 읽었다.
게다가 에세이는 이 책까지 다섯 권 째.
그럼에도 사노 요코가 5유형 인간이란 걸 어렸을 때 모습을 보며 알게 됐다.
엄마는 4유형이고 사노 요코는 5유형, 사랑했던 죽은 오빠 또한 4유형이었다.
내가 이렇게 결론 내린 이유는 이 책에 열 군데 넘게 나와있다.
1. 기본적으로 혼자 독립해서 먹고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2. 어렸을 때 큰 팬티 때문에 남자아이들에게 성희롱적 놀림을 당했지만
'얼굴이 굳었다.'라는 데서 끝나는 감정 처리.
3. 반장이 자신보다 성적이 잘 나온 요코를 데리고 가서 때림.
그렇지만 덤덤하고 반응 없음. 이에 반장이 "얘는 때려도 반응 없는 애야."라는 말에 온갖 남자애가 다 얘를 때림. 그럼에도 울지 않고 버팀.
4. 귀찮아서 여행 안 감.(반면 4유형 엄마는 여행을 즐기고 인생을 즐김.)
5. 엄마가 요코에게 항상 꾸미지 않는다며 혼냄.
(속으로 엄마의 휘황찬란하게 요란한 옷과 온갖 화장품을 한심하게 여김.)
6. 선생님과 엄마 대화를 엿들음. 거기에서 엄마가 허심탄회하게..
"제가 딸에 대해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함.
(4유형 특유 질투 기질과 그 의미를 모르고 되뇌는 5유형 딸 콜라보.)
7."나는 엄마만큼 놀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활동적이지도 않았다. 가능하다면 그냥 집 안에서 뒹굴뒹굴 지내고 싶었다. 방바닥의 먼지를 보며 청소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206)
-이거 내가 쓴 글인 줄 알았...
8. 전체적으로 엄마를 신랄하게 묘사함. 하아... 너무 매정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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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폭력이 부르는 생각 멈춤 효과.
나는 요즘 딸보다 엄마다.
이 책에 나오는 엄마에 대한 강한 디스 글을 읽고 있자니 뭔가 가슴이 답답했다.
내 딸도 미래에는 이런 불평불만이 있겠구나.
과거 기억은 내 위주로 포장되어 있다.
저자는 그런다.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따뜻하게 만져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매정한 엄마. 차가운 엄마.
사노 요코의 엄마는 요코 바로 위 오빠와 바로 아래 남자 동생을 하늘로 먼저 보낸다.
죽어가는 아들을 한없이 만졌을 것이다.
닳도록 만졌겠지.
그러다 결국 둘 다 죽었다.
소멸에 대한 분노는 살아남은 딸인 사노 요코에게 넘어간다.
그렇게 사노 요코는 엄마에게 정신없이 맞고 신데렐라처럼 구박받고 동생 기저귀를 빨며 삶을 이어나간다. 얼마나 그 고생이 심했는지 '오싱'에 나온 여주인공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래도 그 여주인공 엄마는 상냥했다면서.
그럼에도 저자는 객관적이다.
자신 기억뿐 아니라 사랑했던 막냇동생 기억도 알려준다.
자신은 동생을 너무 사랑해서 자전거에 태우고 다녔단다.
동생은 귀찮게 억지로 태웠으며 자전거 살에 살이 눌려 매우 아프고 괴로운 기억만 갖고 있다.
그렇듯 사람 기억은 일방적이고 이기적이다.
어떤 글쓰기 선생님은 그런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저자는 그 이상이다.
뼛속을 뚫고 골수까지 내 보인다.
어쩌면 가족이란 그런 것일까?사람들은 엄마를 좋아했고 의지도 했다.
가족이란 비정한 집단이다.
타인을 가족처럼 샅샅이 알게 된다면 친구도 지인도 소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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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털고 나서야 사랑할 힘이 생긴다.
이 책은 결코 엄마를 흉보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감성적이고 아름다웠던 엄마.
그 엄마는 일곱 남매를 키우고 세 자식을 앞세우면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야 했다.
꽃다운 나이 마흔 두 살에 쉰이 된 남편을 떠나보낸다.
아버지가 떠났을 때 장녀였던 저자 나이는 열아홉 살.
어리지 않지만 부모 없이 혼자 지내기에 충분한 나이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네 아이를 모두 대학에 보낸다.
엄마는 혼자 지내는 법을 알려준다.
자신만이 가진 방식으로.
다른 면에 있어서는 매우 매정한 엄마였다.
엄마에게는 지체장애인 동생이 두 명이나 있었다.
이 둘을 외면하고 항상 거짓말로 자신을 둘러댔다.
미안할 상황에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고마워해야 할 상황에서도 당연한 호의를 받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웠다.
오히려 엄마는 치매가 돼서야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게 됐다.
누군가는 치매가 기억을 앗아가는 '바보'로 만드는 악독한 병이라고 말한다.
저자에게는 아니다.
진정한 엄마 마음을 알아가는 고마운 병이다.
글을 쓰고 난 후 치매에 걸린 엄마는 돌아가신다.
사노 요코는 말기 암 환자가 되어 장례식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다.
글을 맺으면서 작가는 의미심장한 말로 끝낸다.
사노 요코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엄마 글을 보고 "수사가 너무 많고 산만하고 감상적이다."라며 비판한다.
나도 5유형인데 4유형만이 갖고 있는 감수성 가득한 수사와 글을 좋아한다.
엄마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왜곡해서 보는 그 악순환.
항상 나는 가족에게 헌신하고 돌보면서 개인 자신을 돌보지 않는 내 엄마를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 반면 사노 요코는 항상 자신이 예쁘고 돋보여야 하며 딸까지 질투하는 엄마와 함께 지내야 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까지가 엄마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꿈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자신이 꾸민 생각 안에서 자식에게까지 거짓말하며 살아왔던 엄마.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해와 관용, 감사함과 사랑으로 모든 결점을 덮는다.
가족은 너무 가까이 있기에 힘든 게 아닌가 싶다.
내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모든 비밀이 없기에 미워하고 원망하며 지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만 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빠르고 아깝다.
저자처럼 뼛속까지 내려가는 이기적인 기억을 글 안에 털어버리고-
마음속에는 연민과 사랑과 존경이 가득한 그 마음만 집어넣는 건 어떨까?
팩트 폭력이 난무하는 글로 구멍이 난 마음에 따뜻한 사랑으로 집어넣어준 책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