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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평점 :
중국인'위화'라는 작가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책을 펴고 읽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북클럽 힘을 빌려 그를 만나게 됐다. 이 글을 우연히 본 사람에게 얘기한다. 나처럼 이렇게 늦게 위화를 만나지 마라. 나처럼 후회한다.
아마도 이런 게 기억이 아닐까 싶다. 기억이란 속세의 은혜와 원한을 뛰어넘어 그렇게 저 홀로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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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속세의 은혜와 원한을 뛰어넘어 그냥 홀로 따라온다는 문장. 저 한 문장이 이 책 한 권을 대신한다. 여기 나온 등장인물 모두 흠이 많은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 책을 진행하는 화자조차 좁은 식견과 유치한 행동을 거르지 않고 그려진다.
화자인 쑨광린. 할아버지인 쑨광위안을 통해 시내 군인 왕리창과 리슈잉 부부에게 여섯 살 때 입양된다. 그러다 5년 후 왕리창이 사고로 죽고 다시 고향인 남문으로 돌아온 화자. 하필 돌아오는 날 집에 불이 났다. 상황이 안 좋을 때 돌아왔다는 이유로 온 가족에게 미움을 받는다. 색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 쑨광차이, 장남이자 가장 역할을 하는 형 쑨광핑, 동네 동생을 구하다 죽은 동생 쑨광밍, 의사 아들 쑤위, 쑤항 형제, 왕리창 집에 있었을 때 친구인 궈칭과 류샤오칭. 이들을 통해 화자는 어린 시절에 대해 담담히 전개한다.
이 소설 구조가 일관되게 진행된다. 상황에 대한 도입 설명, 등장인물에 대한 전개, 주요 인물 죽음, 그리고 새로운 인물 탄생이란 구조를 갖는다.
1부는 화자가 5년 동안 남문에 있지 않았고 그렇기에 다시 돌아온 남문 집에서는 이방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쑨광밍은 동네 동생들을 이끌고 다슬기를 잡으러 가다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그다음 장은 뜬금없이 화자인 쑨광밍이 태어났을 때 쑨광차이와 아내가 어쩌다가 쑨광밍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내용이 실린다.
2부는 남문에서 친구인 쑤위. 그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쑤위는 다른 식구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 자면서 뇌혈관이 터져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예전 모든 사춘기 소년들이 흑심을 품었던 펑위칭과 그녀가 낳은 아들 루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부는 할아버지 쑨유위안이 청년 때 있었던 이야기다. 그 후 아들 쑨광차이에게 구박받고 후에 죽고 싶으나 죽어지지 않아 겨우 숨을 거둔 할아버지. 그리고 바로 그다음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너도 네 자식들에게 나와 똑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던 에피소드를 실었다.
마지막 4부는 입양 간 5년에 대한 기억에 대한 내용이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혼자 아파트에 살았던 궈칭, 그리고 간염으로 형을 잃었던 류 샤오칭과 우정 이야기다. 양아버지 왕리창은 약하고 우울증이 있는 아내 때문에 힘들어한다. 결국 외도로 욕구를 해결하던 왕리창은 이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갈 곳 없었던 주인공이 남문에 돌아가 항구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으로 책이 끝난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해 봄. 많은 등장인물과 익숙하지 않은 이름 때문에 읽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다. 한 장을 읽는 순간 빠져들었다. 중국 1960년대 모습은 우리나라 그때와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책을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저자가 내내 그린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매정하다 싶을 만큼 객관적이다. 심지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조차도 피할 수 없기에 선택한 현실을 기피하는 비겁함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고 받아들이기에 불편하고 어색하지 않았다.
이 책 안에 참으로 많은 '죽음'이 등장한다. 막장 드라마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억지로 '죽음'을 만든다. 뜬금없는 죽음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아니다. 이들 죽음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심지어 이 책 시작도 죽음이다.
주인공 쑨광린이 다른 집에 입양 가기 위해 나가는 길에 가랑비가 왔다. 그리고 여인이 외쳤다. 그 답은 어느 남자의 검은 옷이 흩날리는 모습이 외침에 대한 답이었다고 얘기한다. 이 이상한 시작은 계속되는 죽음들을 겪으면 다시금 앞에 나오는 그 부분이 생각났다. 둘째 아이를 포기한 엄마의 처절한 외침. 그걸로 남문에서 둘째 아들 쑨광린은 죽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다시 돌아온다. 또한 각자 한 부 한 부에서도 주변 인물이 죽었지만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책이다. 모든 인생은 끝이 있다. 모두 죽는다. 그러나 이 책은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남문을 떠났다. 하지만 마지막 내용은 남문에 다시 돌아온다. 1부에서 주인공 동생 쑨광밍은 죽었다. 하지만 형 쑨광핑은 결혼해 사내아이를 낳고 쑨샤오밍을 낳는다.(여기서 샤오는 '小'다. 따라서 '작은 밍'이다.) 2부에서 친구 쑤위는 죽는다. 그렇지만 쑤위같이 예민한 소년인 새로운 꼬마 친구 루루가 등장한다. 3부에서도 그렇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밥만 축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조그만 밥그릇 밥으로 연명하던 할아버지는 "이 작은 밥그릇을 내 아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라는 말을 뱉으며 너도 후세에 평가를 받을 거란 경고를 한다.
단순히 이 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절망을 얘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힘들게 버티는 인생을 그렸다고 이해할 뻔했다. 하지만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이없이 죽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그로 인해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일을 행하는 비극이 생긴다. 다치면 새 살이 돋듯이 죽음 뒤에는 또 다른 만남과 탄생이 기다린다. 물론 이 삶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전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숙제는 그대로 남긴 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비록 죽도록 잔인하고 힘들더라도.
산 자가 망자를 땅에 묻고 난 뒤, 망자는 영원히 그곳에 누워 있지만 산 자는 계속 살아 움직인다. 이런 진실한 장면은 시간이 여전히 현실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주는 암시인 것이다.(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