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칼의 노래'를 읽은 후 두 번째 읽은 김훈 작가님 책이다.
'칼의 노래'에서는 강하고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추위가 느껴지는 그때, 병자호란 40여 일 기록이 매우 힘없이 그려졌다.
그 힘없고 무력한 문체는 또 얼마나 객관적인지, 저자가 그린 이 사람이 과연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 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봤다. 만화로도 50페이지 정도 되는 일을 무려 370여 쪽에 걸쳐 서술하고 있었다. 지루하지는 않지만 힘없이 버티는 듯한 문체를 쓰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인조는 광해군이 펼친 친청 정책에 반발하여 왕권을 잡았다.
그 논조를 유지하기 위해 인조는 쳐들어오는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간다.
임금은 국가를 위한다고 들어갔지만 남한산성 안 주민들에겐 뜬금없는 적이나 다름없다
  

남한산성에서 청에게 굴복하자는 최명길과 끝까지 싸워서 청을 몰아내자는 김상헌이 의견 대립을 한다.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 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석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143)

결국 광해군이 선택한 노선이 맞았다. 만약 자신이 청에게 굴복한다면 왕이 된 이유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따라서 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전하, 자꾸 어쩌랴 어쩌랴 하지 마옵소서. 어쩌랴 어쩌랴 하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옵니다. 받들기 민망하옵니다.(64)
                

이 와중에 인생 한 판 뒤집기를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정명수란 관노 출신 청 통사.
이 사람을 통해 청과 연락을 취한다. 따라서 이 사람은 조선 권력자다.
대접을 받을 때 기생과 놀아도 꼭 합방은 양반집 자제와 하길 바랐다. 하급 관리 자제임이 밝혀졌을 때는 죽이기까지 한다.
                

-경들이 박복하구나. 어찌하랴. 내가 비를 맞으랴.

임금이 내 행정 마당으로 내려섰다. 버선발이었다. 마당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다. 임금은 젖은 땅에 무릎을 꿇었다. 임금이 이마로 땅을 찧었다. 구부린 임금의 저고리 위로 등뼈가 드러났다. 비가 등뼈를 적셨다.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고, 임금은 오래 울었다. 막히고 갇혔다가 겨우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눈물이 흘러서 빗물에 섞였다. 임금은 깊이 젖었다. 비바람이 불어서 젖은 옷이 몸에 감겼다. 아무도 말리지 못 했다. 석자가 달려 나와 임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승지들 은 마루에서 뛰어내려 왔지만, 임금에게 다가오지 못 했다. 임금이 젖은 옷소매를 들어서 세자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성을 지켜라. 물러서지 마라.

김상용은 지팡이를 짚고 성첩을 돌며 소리쳤다. 빈궁과 숙의와 사녀와 나인들이 끌어안고 통곡했다. 동쪽 성문이 깨지면서 청병이 몰려들어왔다. 성문에서 정전 쪽으로 칼날의 대열이 번뜩이며 다가왔다. 청장은 정전에 자리 잡았다. 청병들이 성첩으로 올라왔다. 청병은 성첩을 돌며 청소하듯 도륙해 나갔다. 김상용은 쫓기면서 남문 문루 위로 올라갔다. 종이 따라왔다. 문루 위에 미처 쓰지 못한 화약 더미가 쌓여 있었다. 김상용이 화약 더미로 다가갔다. 종이 김상용의 도포자락을 잡았다.
-대감, 어찌....
-당면한 일을 당면하려 한다. 너는 돌아가라.
종은 돌아가지 않았다. 김상용이 화약 더미에 불을 붙였다. 종이 김상용의 몸을 덮쳐서 끌어안았다. 화약이 터졌다. 문루가 무너져 내렸고, 김상용의 육신이 흩어졌다. 종이 함께 죽었다.(331-332)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339)
슬프다. 내 나라가 약하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다.
그리고 최명길이란 사람에 대해 정말 궁금했다.
이 책은 정말 객관적이다.
시종일관 청에 굽히지 않는 김상헌 입장에 있는 듯하다가 뒤이어 최명길을 비춘다.
이런 구도로 봤을 때 난 최명길이란 사람이 매국노 같았다.
사실 아닌가? 자꾸 청에게 굽힐 것을 요청하는 일이..
답답한 마음에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를 들으며 놀랐다.
최명길처럼 멋진 사람은 없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나라를 유지하고 살리기 위해 자신 이름에 오명이 붙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도 청 밑으로 들어가겠단 글을 안 쓸 때 결국, 자신이 앞장서서 붓을 잡는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국가 간 시류를 바라보고 결론을 내린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우리나라는 보수가 우세했다.
그리고 그 보수 세력 때문에 파국 위기가 있었다.
결국 천시 받고 무시당했던 사람들이 국가를 살린다.
그렇게 가늘고 길게 조선왕조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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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4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명수 저 사람, 딱 봐도 자기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리네요. 일제 강점기의 형사 옷을 입혀도 어색하지 않겠어요. ㅎㅎㅎ

책한엄마 2016-02-14 16:53   좋아요 0 | URL
박시백 화백님이 인물을 정말 잘 그리신 것 같아요.
정말 김훈 작가님 인물 묘사랑 같아서 올려봤어요.^^

서니데이 2016-02-14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2-15 00:08   좋아요 2 | URL
아이고!오늘은 제가 늦었어요.둘째가 감기기운이 있어서 계속 손이 갔네요.ㅠㅠ내일 만나요.^^

서니데이 2016-02-15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2-16 20:26   좋아요 1 | URL
아이고-^^

서니데이 2016-02-16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꿀꿀이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한엄마 2016-02-16 20:27   좋아요 1 | URL
어제도 방문해주셨군요.^^감사합니다.행복한 하루 되셨는지-서재에 놀러갈게요.

커피소년 2016-02-17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ㅎㅎ국사(역사) 선생님 같습니다.. ㅎㅎ

책한엄마 2016-02-17 08:27   좋아요 1 | URL
과찬이세요.
조선 후기는 읽는 것 자체로 고문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