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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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훌륭한 인물로 평가 되는 이순신.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기반으로 백의종군에서부터 이순신이 죽음을 맞이한 노량해전까지의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소설이다.

소설이다. 하지만 곧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어느새 임진왜란과 더러운 사람의 욕망 안에서 꿋꿋하게 바른 자리를 지키는 진정한 장군 진짜 이순신이 내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 김훈의 짧은 글 안에서 울리는 남자다운 기개와 분노 안에서도 자신을 극도로 절제하는 성인으로서의 풍모가 책 안에 그대로 풍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국가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풍전등화 상황에서 글을 쓰는 절박한 심정으로 읽었다. 마지막 말없이 이순신 장군 뒤에서 같이 칼을 휘두르고 장렬히 전사한 이름 하나 하나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가슴에 새겼다.

이순신은 뛰어난 장군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해야 했던 약한 군주 선조에게는 그는 일본군과 같은 적이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내친다. 그리고 자신이 신임하는 원균을 그 자리에 앉히고 그는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를 한다.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그는 전투의 결과에 얻을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때때로 수많은 적의 머리를 주어서 그를 달랬다. 그의 활화산 같은 적의와 분노가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적의 방사진 앞에 장졸과 함대를 집중시켰던 것이다.(21)

 

한마디로 관심 병에 걸렸던 원균. 그는 결국 죽었다. 그리고 도망간 배설이 남긴 비겁한 배 십 몇 척이 후에 명량해전을 성공으로 이끈 자랑스러운 배가 된다. 그 사이 길삼봉이라는 존재 자체도 의심스러운 자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한바탕 살육이 벌어진다. 서양으로 치면 마녀 사냥과 같은 그런 끔찍한 일이었다. 이 끔찍한 이벤트 앞에는 정철이라는 정치 달인이 있었다.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부지런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42)

 

선조는 자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타인에게 칼을 댔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고 자신의 목숨을 보전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위를 보전하는데 유능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나라를 다스리는데 뛰어난 자는 아니었다. 선조 후의 광해군은 자리를 뺏긴다. 선조같이 자신을 지키는 지혜는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쟁 중에 이순신은 어머니를 보내고 아들 면의 목숨을 적들 칼에 내어주고 말았다.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생각했다. 날이 선 연장을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130)

 

여진이란 여인을 만나 인연을 갖는다. 여진은 자신을 죽여 달라했다. 그냥 보냈던 이순신은 결국 여진을 적의 노리개로 있다 죽어 시체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게 전쟁은 끔찍했다. 아들이 죽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 자신의 어미가 죽어도 예를 다할 수 없었다. 왕은 없었다.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왕은 그를 죽여 마땅하나 대신 싸울 사람이 없어 죽음을 잠깐 사해준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게도 적이었지만 왕에게도 적이었다. 지금은 그의 행동이 의롭다 평가하나 그 당시 그는 나라에서는 왕권을 위협하는 사람이고 적군에게는 위협적인 장수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항상 이 전쟁 안에서 죽을 곳을 이야기한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베어 나온다.

 

나의 적은 전투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264)

 

이순신은 혼란스러워한다. 그가 가차 없이 베어내는 적은 개별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목숨을 담보로 적인 이순신에게 뛰어든다. 국가를 살리기 위해 이순신은 그들을 죽인다. 끊임없이 목을 벤다. 그러나 정작 왕은 이순신의 머리를 베고 싶어 한다. 이순신은 분명 선조를 위해 싸우는데 선조는 이런 이순신을 증오한다.

 

그때, 적들은 경건해 보였다. 적이 경건했다기보다는, 적이야말로, 그 앞에서 내가 경건해야 할 신비처럼 보였다. 신비, 신비하고나 해두자.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336)

 

사실 이순신은 그냥 훌륭한 사람이라는 추상적인 평가만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이다.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공감할 수 있다. 도대체 이순신에게 왜구란 무슨 의미였을까? 선조는 이순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이순신은 분명 선조가 아닌 자신을 믿고 따랐던 농민들과 우리 민족을 위해 싸웠다. 민초들 식량은 왕에 의해 뺏기고 적에 의해 뺏겼다. 심지어 그들은 노예로 적군에게 끌려가 적군 배에 노를 저어야 했다. 이순신은 그들을 지키려고 목숨을 다해 싸웠을 것이다. 오히려 왜적이 이순신 명을 늘여주었다. 만약 왜구가 계속 침략을 노리지 않았다면 선조는 길삼봉사건처럼 이순신에게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유를 대고 목숨을 거둬갔을 것이다. 선조 자신의 왕좌를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인 행위다.

역사는 말한다. 무능보다 더 악한 것은 이기심이다. 분명 선조는 창피한 왕이다. 자신의 안위만 급급한 치졸한 사람이다. 그래도 이순신과 그를 따랐던 인물들이 있기에 아직도 이 작고 연약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독립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다.

민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다하는 이순신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일 것이다. 최소한 선조처럼 비겁한 사람은 되지 말자. 이 책을 보며 다짐하고 또 다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314)

원균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고 아무도 말리지 못할 무서운 적의를 지닌 사내였다. 그 사내는 모든 전투가 자기 자신을 위한 전투이기를 바랐다. 그는 전투의 결과에 얻을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때때로 수많은 적의 머리를 주어서 그를 달랬다. 그의 활화산 같은 적의와 분노가 날개를 펴고 달려드는 적의 방사진 앞에 장졸과 함대를 집중시켰던 것이다.(21)

정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민첩하고도 부지런했다. 그는 농사를 짓는 농부처럼 근면히 살육했다. 살육의 틈틈이, 그는 도가풍의 은일과 고독을 수다스럽게 고백하는 글을 짓기를 좋아했다. 그의 글은 허무했고 요염했다. 임금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임으로써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삼봉은 천 명이 넘었으나, 길삼봉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42)

면의 작은 입과 그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생각했다. 날이 선 연장을 신기해하던 면의 장난을 생각했다. 허벅지와 어깨에 적의 칼을 받고 혼자 죽어갈 때의 면의 무서움을 생각했고, 산 위에서 불타는 집을 내려다보던 면의 분노를 생각했다. (130)

나의 적은 전투대형의 날개를 펼치고 눈보라처럼 휘몰아 달려드는 적의 집단성이기에 앞서,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적의 개별성이었다. 그러나 저마다의 울음을 우는 개별성의 울음과 개별성의 몸이 어째서 나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없었다.(264)

그때, 적들은 경건해 보였다. 적이 경건했다기보다는, 적이야말로, 그 앞에서 내가 경건해야 할 신비처럼 보였다. 신비, 신비하고나 해두자. 나는 대장선 갑판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빌었다. 무엇을 향해 빌었는지, 나는 빌고 있었다. 바다는 문득 고요했다.(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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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2-28 0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해가던 차에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새록 새록 기억이 되살아 났어요. 참 멋진 소설이죠!!

책한엄마 2015-12-28 08:24   좋아요 1 | URL
네-곧 김훈 작가님의 다른 역사 소설인 남한산성도 읽어요.벌써부터 설레네요.^^날씨가 엄청 추워졌네요.감기 조심하세요.

마르케스 찾기 2016-12-04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이 책 칼의 노래의 마지막 장을 읽고,,, 다른 분들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서 리뷰를 찾아 읽었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책한엄마 2016-12-04 21:56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훌륭한 서평 기대하겠습니다.
칼의 노래 서평 쓰신 것 읽으면 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더라고요.
아마 마르케스 찾기 님 글 읽고 그런 생각이 다시 들 것 같네요.^^

마르케스 찾기 2016-12-04 22:07   좋아요 1 | URL
김훈 작가님께선 기억도 못하실ㅋ 사인본을 받아 읽은 터라,, 그 빚을 어찌 갚아야 하나,,, 고심을 했어요ㅋㅋ 꼼꼼히 끝까지 다 읽어,, 감동받은 독자를 한명이라도 더 늘여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뿐이겠죠ㅠㅠ
때론, 좋은 리뷰는 또다른 책 한권을 읽는 것 같아 좋았거든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