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목의 성장
이내옥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엄마가 내 어릴 때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는 장난감은 별로 좋아하질 않고 책에 집착을 했다고 한다. 웃긴 건 그렇다고 내가 글씨를 알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종이 가득 뭔가 채워져 있는 ‘책’이란 물건을 좋아했다. 이 취향은 바뀌질 않고 지금도 그대로다. 책을 좋아해서일까? 나름 나는 책을 보는 데 안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물건에 있어서는 전혀. 무엇이 좋은지 알지 못한다.
엄마는 화폐를 좋아하신다. 매년 한국은행에 가서 그 해에 나오는 기념주화를 구입하시는 게 일이다. 매년 발행되는 500원과 100원 등 동전을 모으기도 하신다. 내 눈에는 하찮아 보인다. 내가 만지기라도 하면 지문 묻는다며 어찌나 소중히 다루시는지. 내게 화폐는 그저 책을 바꾸기 위한 교환 가치일 뿐이다. 그게 비트 코인이던 금, 은, 동이던 내게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 책 <안목의 성장>을 읽으며 나와 엄마 ‘안목’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랜 기간 박물관을 책임졌던 공무원이시다. 처음에는 어떤 물건이 가치 있는지 깨닫지 못하다가 박물관에서 귀한 물건을 보고 그 물건에 온 정성을 다하는 수집가와 유지 보수를 하는 분들을 보며 보는 눈이 성장해 감을 깨닫는다. 그 순간에 대한 짧은 글이 한 챕터가 되고 그 챕터가 모여 결국 이런 한 권 책이 만들어 졌다.
솔직히 나는 오랜 경력을 앞세워 만든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그런 책은 지리한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읽다보면 상사가 얘기하는 내 입사 전에 고군분투한 영웅담을 듣고 있는 것보다 더 괴로울 때가 많다. 오랜 지혜를 배우기보다는 시절인연으로 만난 행운을 자신 능력으로 포장하며 자신 자존감을 위해 과하게 포장하는 게 읽힌다. 이 또한 내 편견이었다.
작년 나는 100세에 가깝지만 아직도 학계에서 활발히 집필과 연구를 하시는 김형석 교수님이 쓴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한 ‘꼰대’같은 생각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당신이 갖고 있는 진실한 마음과 예전 추억담이 포장 없이 소박하게 담겨있었다. 이런 책이 더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책을 이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에세이 <안목의 성장>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먼저 저자 자신이 걸어 간 길에 대한 회고로 시작한다. 박물관 일과 이와 관련된 사람을 만나며 일어나고 깨달은 일들을 쓴다. 이 부분에서 특히 옛날 토기와 도자기를 모은 후 국가에 기증하신 분들 이야기가 있다. 이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돈을 아끼지 않고 물건을 모으는 광기를 이해하고 이들이 가진 물건을 보호해 주는 국가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주변에서 높은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좋은 안목으로 바라본 주변 박물관들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들을 통해 진정 좋은 것을 바라보는 눈과 그들이 갖고 있는 올바른 마음가짐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바람이 흐르는 곳에서 만물은 기를 얻어 소생해 움직인다. 바람은 생명이다. 동양 회화 제일의 품평 기준 또한 기운생동이었다. 대초에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사람을 만든 것도 바람이요,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바람이다. 이렇게 우주의 생명은 바람이니, 우리의 삶도 바람이요, 우리의 생명도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간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나도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 게 겁이 난다. 나이를 먹고 흰머리가 생기고 몸이 약해지는 건 참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보여주는 지혜롭지 못한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 나도 그렇게 될까봐.
속절없이 가는 시간 앞에서 내게 필요한 건 나보다 멋있게 나이 든 지혜로운 어른이다. 이런 어른 글을 읽고 있으면 더 이상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시간이라는 존재도 내게 장애가 아닌 축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