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평점 :
물을 수놓다 - 데라치 하루나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남고생인 기요스미의 가족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된다. 기요스미, 누나인 미오, 엄마인 사쓰코, 외할머니인 후미에, 아빠 친구(?) 보호자(?)인 구로다씨. 마지막으로 다시 기요스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다 각자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원하는 바가 다르다. 각자 다 이런 게 보통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지만 그 보통의 범주가 누구나 다를 수 있다는 건 잘 모르는게 사실이다. 특별히 남자 답고 싶다거나 한 건 아니다. 그냥 수를 놓는 것을 좋아하느 기요스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관심도 없는 게임이야기를 하는 것 조차 질색이다. 그런 기요스미에게 엄마는 남들과 다르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설의 주요 라인을 구성하는 미오의 결혼. 보습학원에서 사무를 보다가 복합기를 고쳐주는 신랑을 만나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어릴 적 나풀거리는 치마에 대한 사건이 있어서 그 뒤로 몸이 드러나거나 여성성이 보이는 옷은 싫어한다. 이 소설에서 제일 공감갔던 캐릭터가 나에게는 미오였다. 왜 웨딩드레스의 장식도, 리본도, 갑갑함도, 다 싫은 것인지 뼈에 아로새겨져 있을 그녀의 아픔이 느껴진다.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기요스미의 엄마인 사쓰코. 남편인 젠과 22살에 만나서 기요스미를 낳고 1년만에 이혼한다. 사쓰코를 보면 나와 달라서 좋았던 점들이 어느새 퇴색되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 나를 만나면, 애를 낳으면, 결혼생활을 지속하면 이 사람은 바뀔거야 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남편인 젠은 너무나도 한결같이 처음 만난 그대로다. 나도 나를 어떻게 못하는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면 내가 힘들까 아니면 상대가 힘들까 그냥 둘 다에게 비극일까. 제일 좋은 캐릭터는 할머니인 후미에다. 사쓰코를 크게 강압적으로 키우지도 않았고, 결국 내가 나답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라도 실현시키는 인물이라서다. 실패할 권리도 있다고 사쓰코에게도 말하고 기요와 사쓰코의 관계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너와 니아들 사이의 일은 둘이 알아서. 나는 그냥 이 집의 메뉴가 먹고싶어서 온거라고 사쓰코와의 외식자리에서 말하는데, 그게 어른의 센스 아닐까.
의외로 아빠인 젠의 이야기가 아니라 젠을 바라보는 친구 구로다의 이야기가 나와서 신선했다. 젠의 입으로 나는 예전과 똑같은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취급한다고 변명하는 모습을 봤다면 나는 아마 젠을 비난했을거다. 아빠가 되어서!! 이렇게밖에 못하고!! 이런 말을 했겠지. 그렇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젠을 거둬주고 가족이 되어주고 또 기요스미에게도 후견인처럼 다가오는 어른이라서 좋았다. 물론 구로다도 남은 가족이 없다는 것, 새로운 가족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또 보통 사람들과 다른 쓸쓸함이 있긴 하다.
결국 웨딩드레스와 자수, 가족 등 보통이면서도 서로 안온하게 보듬어주는 이야기로 끝나서 좋았다. 그 누구도 누구에게 푸시하지 않는 적당함. 처음만난 데라치 하루나라는 작가가 좋아져버렸다. 제목처럼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고 움직인다는 것처럼 가족도 고여있는게 아니라 늘어나고 줄어들고, 변화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