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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나자
심필 지음 / 서랍의날씨 / 2024년 7월
평점 :
어제 만나자 - 심필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한 페이지터너를 만났다. 612쪽의 방대한 분량. 처음은 주인공인 동수가 생매장 당하는 회색페이지 부터 시작된다. 동수 동호 형제가 어떤 일로 마장식, 마혁수, 월터와, 장반장까지 엮이게 되었는지 순차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일어난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 중에서 그 어떤 사람도 손가락질 안할 부분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다 나름대로 나쁘다. 실제로 오랜동안 책을 읽게 되면서 동생의 복수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움직이는 복수를 실행하는 동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실제로 책을 읽는 동안 네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흥청망청하게 돈을 쓰지 않았다면 동호가 너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을까. 너의 꼬임에 넘어가서 격투기로 계속해서 사각 링안의 개처럼 맞아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연민을 가질만한 캐릭터라 하면 동호겠지만, 동호도 순진하게 새 삶을 꿈꾼 대가와 혈육까지 믿은 대가도 참혹하다 하겠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동수가 복수를 완성하기 직전 하는 제목과 동일한 <어제 만나자>가 아니다. 나는 의외로 마장식의 대사가 제일 좋았다. 월터를 넘기는 기한이 지나서 이를 갈던 원수한테도 맷갑을 네고 해버리는 동수의 찌질한 면과 대조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생 도 아니면 모 아닌가. 내가 이래서 이 대사를 좋아하나보다.
- 동수야.
- 네 회장님.
- 인생에 반이 어딨냐.
- 네, 맞습니다.
- 다 가져가던가, 안 가져가야지.
그렇다. 인생에서는 반이 없다. 일어나거나 안 일어나거나. 살아있거나 혹은 죽었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한다.
이 대사 이후 동수는 월터의 신묘한 약 덕분에 타임루프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소중한 것은 이미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복수는 재미나게 한다. 시간은 되돌아갔는데 상황들에 대한 변수는 최대한 적게 해야하고, 그래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상황을 잘 풀어가는게 이 책의 묘미이다.
처음 월터가 약을 하면서 천국에 가는 상상의 묘사와 장반장을 고문하는 씬은 엄청나게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영화 아저씨에서도 드라이기로 고문하는 장면을 보고 질겁했었는데, 그게 또 나올 줄이야. 장반장도 참으로 나쁜새끼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는 그저 운 없는 놈 정도였는데, 생각해보면 이 사람도 참 많은 것이 얽혀있다는 것. 책을 읽으며 어제로 되돌아가는 약보다도 콩알탄 하나에 푹 잠들 수 있다는 묘사에서 콩알탄이 나에게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중간중간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서사가 나오는데 개눈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자신이 업신여기던 것으로 인한 피해와 그로 인해서 결국은 인생이 기구하게 돌아가 버리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개눈 이자식도 참 나쁜 놈이다. 자세한 나쁜 짓은 책에서 확인하자. 영화화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긴 장편을 뽑아낸 작가의 흡입력에 박수를 보낸다. 두 번째 이야기도 기대하게 된다. 결국 남이 짜놓은 판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도 자기 몫이라는 이야기가 교훈으로 남았다. 근데 그게 보인다면 걸려들 일이 없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