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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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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집에 사놓은 <데미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고전 중에서는 번역자의 느낌에 따라 여러 번역본을 사서 읽는 편이다. 그렇지만, 왜인지 지금까지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 만난 200여권 중의 데미안 중에서도 열림원의 데미안을 만났기 때문에 완독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꽤 오래전에 초판본 디자인의 데미안도 샀었고, 개인적으로 고전을 모으는 타 출판사의 데미안도 책장에 있는데, 결국 다 읽은 것은 이것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내 상황 때문에 후반부에 싱클레어가 에바부인 에게 사랑을 느끼는 장면에서 상당히 섹슈얼하다고 느꼈다. 데미안에서 이런 느낌을 느끼면 안되는 건가 싶었는데, 책 말미에 역자 후기에서 사랑을 표현한 데미안의 어머니는 확실한 다른 표현(그녀 보통은 부인으로 표현)으로 번역했다는 의도를 읽고 나서 제대로 읽었구나 하고 안심했다. 이 부분이 은근한 것이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와 약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데미안이 1919년 작이니까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의 은근한 유혹이 데미안을 생각나게 해야 맞지만 내가 읽은 순서가 반대니까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유명한 구절을 적어본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그 알이라는 세계 그것을 깨부수는 경험을 최근 했다. 늘 내가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은 약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초반에 싱클레어가 분명 거짓말로 훔친 사과에 대해서도 크라머에게 질질 끌려다녔다고 생각한다. 매번 돈 가져오라면서 얼쩡거리며 휘파람을 불어댈 크라머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냥 그런 일 자체가 없었다고 하면 될 일을 어째선지 싱클레어는 크게 만든다. 가지고 있는 물건을 주면서도 달래보고, 돈없다고 읍소도 해보고, 그렇지만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가 처한 세계의 밑바닥이 보여지는게 거짓을 정당화 시켜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세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내 껍질을 깨부숴서 얇은 막만 남아있는 개구리 알 상태가 되었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건 아니건 그 남은 선택의 결과조차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연약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더라. 이제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상태라 어떻게든 딱지가 앉고 그렇게 내 발가벗겨진 세계가 다시 강건해지는 계기가 되겠지. 그렇기에 태어나고자 하면 세계를 부숴야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을 졸이며 결국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과 같다. 예전과 달리 반 정도가 아니라 정말 생 날것의 비밀들을 모두 이야기 해버렸는데, 물론 모든 걸 다 잃어버렸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까지나 솔직하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보다, 한번 쯤은 당당하게 밝히고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믿음직스러운 막스 데미안은 어떻게 크라머를 처리한 것인지 그 점이 궁금하다. 신이자 악인 <아브락삭스>에 대해서도 에밀에게 알려준 데미안. 에밀이 에바부인을 좋아하는 것도 일찍 눈치 챈 데미안. 앞으로의 나는 또 단단한 벽을 만들고 나만의 세계에서 지낼지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랑한 알의 존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에밀처럼 내면의 홀로서기가 조금은 더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