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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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기업 삼성의 비리에 대한, 한 때 삼성 구조조정본부 핵심 임원으로 일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자 고발이다. 일단은 일생의 어려운 결정을 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가 일생을 걸고 한 것에 비해 사회적 파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을지라도. 비록 규모와 질량에 있어 비할 바 못되겠지만,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앞두고 느꼈을 갈등과 괴로움을, 경험상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규모가 가장 크다는 말이기도, 영향력이 가장 크기도 하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대학생들은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고, 삼성에 취직하면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갔다는 자부심에 들뜨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대표적인 기업이 (어쩌면 정부보다 더한 영향력을 가진) 회장 1인의 지배체제, 회사 이익과 회장 이익의 분리, 기업 세습을 위해 불법과 비리를 서슴치 않는 행태, 권력과 언론도 돈으로 매수하여 오염시키고 있는 '범죄'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은 어찌됐건 참 씁쓸한 일이다.  그 비자금을 삼성 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개선시키는 데 썼더라면. 그런 모든 행태가 과연 삼성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 김용철 변호사의 말대로 직원을 1회용 소모품처럼 대하는 태도는 우수한 인재를 떠나가게 만들 것이고, 비리와 뇌물에 대한 공공연한 소문은 국제 거래 관계에서도 신용도를 크게 떨어뜨린다. 그게 앞으로도 통할 것이라 보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 양심고백을 통해, 그리고 이 책의 발간을 통해 미약하나마 삼성 (비리) 철옹성의 균열은 시작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삼성 뿐만이 아니겠지. 비리는 기업이든, 공직사회든 이미 뿌리 깊이 물들어 있다. 검찰과 법원이 그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엄청난 장벽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소위 잘 나가던 삼성 임원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며,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그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출세'의 전형적인 모델인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일까 싶었다. 내 눈에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다. 그 돈과 지위가 없으면 그들 곁에 누가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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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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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논쟁 하나.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을까? 아니면 '환경적 요소'에 더 많이 좌우될까?  

 

   「아웃라이어」는 「티핑 포인트」, 「블링크」로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말콤 글래드웰의 최근작이다. 영어 아웃라이어(outlier)는 책의 앞부분에도 나와 있듯이,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지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두드러지는 성공을 거둔 사람을 뜻한다. 또 '성공'에 관한  자기 계발서인가? 이러이렇게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개인만의 재능과 지능, 성공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기회요소, 그리고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다. 개인을 넘어선 '문화'와 '상황'이 결정적이다.

   물론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 그것이다. 누구나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1만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이는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누구나 하루에 3시간을 10년 동안 한 분야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꼭인정받고 빛을 발하는 것도 아니다. 가정 환경과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이 속한 문화적 환경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글래드웰은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노력만을 주로 강조하는 여타 다른 자기 계발서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글래드웰의 장점은 풍부하고 꼼꼼한, 그리고 재미있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캐나다 하키 선수들의 사례, 빌 게이츠 등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사례 뿐 아니라,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볼 수 있는 문화간 차이와 그 차이가 어떻게 큰 재앙으로 이어지는지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성공의 결정 여부는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사실 신자유주의에서 전형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실패 이유는 그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탓이지 사회의 탓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이들을 보조해 주거나 도울 이유가 없다고 한다. 역으로 개인의 성공 역시 그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종부세 같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과 복지는 (실패한 이들의 게으름만 부추길 뿐이므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간단히 생각해 봐도, 개인의 성공은 개인만의 노력이라 할 수가 없다. 좋은 가정환경,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성공할 가능이 높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데 질 좋은 교육 역시 요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이 되었으며 부자일수록 좋은 교육에 접근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개인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이용해야만 하는 수많은 사회간접자본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개인의 성공은 그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레이코프의 「자유 전쟁」에도 잘 나와 있다)

 

    「아웃라이어」는 문화적으로 살펴봐도 개인의 성공은 신화라는 것을 잘 드러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주로 인용하는 책은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의 생각의 차이)와 홉스테드의 권력거리 개념 (아마도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서 인용했을)이다. 둘 다 예전에 문화연구소에서 공부했던 책들이라 친숙한 내용이었다.

   교육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자못 흥미롭다. 캐나다 하키 선수들의 실력이 또래에 비해 먼저 태어나서 하키 연습을 할 시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누적적 이익을 갖는) 아이들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통계치로 밝혀내었는데, 성장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빠른 그 또래 어린 아이들간에 몇 개월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일 년 일찍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는 아이가 학업을 잘 따라갈 지, 또래들과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곤 한다. 그래서 글래드웰은 학교에서 1~4월생, 5~8월생, 9~12월 생 등으로 끊어서 같은 발육단계에 있는 학생들끼리 학급을 편성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그리고 아시아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좋은 이유를 쉬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쌀농사 문화에서 찾으면서, 미국의 상대적으로 무척 긴 여름방학의 폐해와 아시아의 긴 학습 시간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빈곤층 학생들에게 3개월이나 되는 여름방학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한다) 그 예로 든 것이 뉴욕 브롱크스의 키프 아카데미인데 평균 수업 일수로 볼 때 이 학교 학생들은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50~60퍼센트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키프 졸업생 중 90퍼센트가 사립이나 가톨릭 교구에서 설립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며 8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걱정스러웠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지나친 '학습'에 글래드웰의 이런 주장이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키프 아카데미의 수업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 교육과 차이가 나는 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문제를 붙잡고 20분 이상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이런 장면은 없거나 아주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의 긴 학습시간은 사교육과 경쟁 체제라는 묘한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므로 한국 교육의 질은 수업 시간의 양에서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다. 수업 시간은 길지언정 키프의 한 교사가 말한 '지구력, 동기부여, 인센티브, 적절한 보상, 그리고 재미를 하나로 녹여내야 한다'는 고민이 우리 학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역자가 말하듯이, 글래드웰은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가르는 그 작은 차이, 작은 기회들을 더 많은 이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한 차이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아웃라이어」는 좋은 안내서다. 함께 인용된 니스벳과 홉스테드의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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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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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깊숙이 점령해 들어가고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그때까지 동맹국이던 나치 독일을 향해 급작스레 전쟁을 선포했다, 1945년 1월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내 어머니도 오 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   (작가 후기 중)

    역사 속에서 강제수용소에 관해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한 것은 아마도 나치 치하의 유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일 것이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의 영화, 「죽음의 수용소」, 「더 리더」같은 책을 통해서 강제수용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때는 시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슷한 때이지만, 그 대상은 유태인이 아닌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이고 강제수용소는 러시아에 있다. 동성애자 레오가 열 일곱살때 징집되어 오 년 동안 러시아 강제수용소에서 복역한다. 

   작가는 다른 소설들이 흔히 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시점은 레오의 시선에 있고, 시간 순으로 흐르지만 짧은 각개의 장은 '시멘트'나 '화학 성분에 대하여' 처럼 어떤 사물, 사건, 개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격앙된 감정이나 분노는 표면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담담하게 현재형으로그리고 말할 뿐이다. 그것이 오히려 더 실재감을 더한다. 읽으면서 그들의 배고픔, 서서히 박탈되어 가는 소망, 처절함을 서늘하게 함께 느낀다.  읽으면서 가장 아팠던 부분은 '대리형제'였다. 집에서 편지가 왔다는 소식에 '기뻐서 입천장이 팔딱거렸'던 레오가 어머니가 보낸 (새로 태어난) 동생의 사진과 그 밑 한 줄을 보고 흐느끼던 장면. 그 한 줄에서 어머니는 쓰지 않았지만 레오는 읽어내어 버렸던 말, '너는 거기서 죽어도 돼, 그게 내 입장이야. 집에 입 하나 준 셈 치고."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말이 결국 레오를 지켰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시에 이 소설은 하나의 언어 실험실이다. 숨그네, 심장삽 같은 새로운 단어의 조합, 의인화된 수많은 단어들과 개념들 - 그럼에도 추상적이지 않고 그 의인화가 그 상황을 더 적확하고 날카롭게 드러내어 주는 -, '한방울넘치는행복' 처럼 띄어쓰기를 없애버림으로써 본래 단어 의미를 넘어서는 뜻을 표현하는 것, 수많은 은유가 시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밑줄 그은 단어와 구절이 너무 많아 다 옮기지 못할 정도다. 번역서이지만 입으로 소리내어 굴리고 싶은, 되씹게 만드는 구절들이 많았다. (번역자의 공도 크다 할 것이다)  뮐러는 실제로 수용소에서 복역한 경험이 있는 시인 파스티오르에게서 영감을 받고 이 소설을 집필했는데,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뮐러는 '지시어와 대상 간의 거리'에 대해 고민했고,


....거리를 줄이고자 하는 뮐러의 필사적인 노력과, 언어와 의미에 대한 불신을 음성시와 같은 글쓰기로 표출한 파스티오르의 시적 특성이 만나 태어난 말들이 '숨그네', '배고픈 천사', '심장삽', '감자인간', '양철키스', '볼빵'과 같은 조어들이다. 파스티오르는 수용소가 자신의 언어를 부수었다고 했다. 파스티오르에게 바치는 오마주의 성격을 띤 소설 「숨그네」 안에서, 이 단어들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건축가가 집을 짓듯 머릿속에 수용소를 짓는다.

    "모국어란 피부와 같아서 누군가에게 폄하되거나 심지어 사용을 금지당했을 때 피부에 상처를 입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고 뮐러는 말했다. 얼룩진 역사에 오염된 모국어를 혐오했지만 말년에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국어를 보여준 파울 첼란처럼, 뮐러와 파스티오르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처투성이의 모국어를 복원해냈다. 그 모국어에는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떠나온 고향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고향과 과거의 얼굴도 새겨져 있다. 「숨그네」 는 독재치하 루마니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깊이 그 파국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 독일로 이주한 작가 헤르타 뮐러가 쏟아내는 말의 축제다. 말들의 축제 속에서 복원되는 수용소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 감당할 것인가는 우리의 과제다.


이 부분을 보면서 문득 우리말의 사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약간 씁쓸해졌다. 우리말은 제대로 풍부하게 사용되고 사용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 이 영어 광풍의 시대에 우리말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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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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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생애」를 쓴 로맹 롤랑은 독일 태생 천재 음악가의 생을 다룬 대하 소설 「장 크리스토프」의 작가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롤랑에게 장 크리스토프에 대한 모티브를 주었음은 자명하다. 그는 영웅을 숭배했고 그러한 열정은 베토벤 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와 톨스토이의 전기를 쓰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음악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던 그에게 베토벤은 최대의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한다. 그는 "위기 속을 헤메던 청년 시절에 가슴속에 영원한 삶의 불을 붙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이었다."라고 말하였다.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쾰른 지방, 본 시의 어느 가난한 집의 보잘것없는 다락방에서 태어났다. 베토벤은 그다지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 술주정뱅이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는 베토벤의 음악적 자질을 이용하여 신동이란 간판을 붙여 그를 구경거리로 만들려고 했고 1787년에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걸며져야 했고 소년 시절은 슬프기만 했다.

    이 전기는 베토벤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남겨진 기록과 증언들, 초상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은 베토벤의 마음 역시 사로잡았다.  베토벤은 꿋꿋하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이미 그 때부터 귓병은 그를 괴롭혔다. 베토벤 역시 영웅에 심취했었고, 이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을 위해 쓴 「영웅 교향곡」에도 드러난다. 베토벤의 친구들이자 지지자였던 베겔러 부부와의 서신, 또 사랑했지만 결국 파혼하게 된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 (열정 소나타는 테레제의 오빠 프란츠에게 헌사되었다), 괴테와의 만남, 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 조카 카를에 대한 사랑 (그러난 그에 정비례하여 엇나갓던 카를), 「환희의 송가에 의하여 합창을 종곡으로 한 교향곡」(일명 합창 교향곡) 에 대한 설명과 초연 당시 압도된 빈의 청중들에 관한 이야기가 베토벤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 로맹 롤랑의 목소리로 펼쳐진다.

 

    그 뒤에는 베토벤이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 유서, 그의 사상단편을 엿볼 수 있는 메모들, 그리고 1927년에 롤랑이 베토벤 1백 주면 기념제를 위해서 낭독했던 원고와 작품에 대한 베토벤의 수기도 덧붙여져 있다.

짧은 책이지만, 고난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음악가로서의 베토벤의 인간적인 면을 들여다보기에 충분하다. 

     내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을 진정으로 만났을 때는 몇 년 전 빌헬름 켐프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아마 23번 열정이었을 것이다)를 들었을 때였다. 그 음악 테이프를 이미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몰입해서 듣고, 그 에너지를 깊게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다 듣고 나니 베토벤과 대화를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악 속에 담긴 엄청난 힘과 고뇌도 얼마간 느낄 수 있었다. 모차르트보다는 베토벤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그 후로 그의 음악을 찬찬히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베토벤 전집을 구입하기도 했지만,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들어보지 못하고 쌓여 있는 것이 더 많다. 이 책도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보게 된 책이다. 그의 음악을 더 많이 알았더라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롤랑의 이야기를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롤랑이 머리말에서 썼던 한 단락을 발췌해 본다.


이 영웅적 대열의 선두에 맨 먼저 장하고 깨끗한 베토벤을 세우자. 그 자신 고난 속에 있으면서 바라던 바는, 그 자신의 실례가 불행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며, 또 "모든 불행한 사람들은 한낱 자기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자연의 갖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에 값닿는 사람이 되고자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얻으라"는 것이었다. 오랜 세월의 초인적 분투와 노력으로 마침내 고난을 극복하고, 천직을- 그 천직이란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가련한 인류에게 조금이라도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 완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승리자 프로메테우스는 신에게 애원하고 있던 어느 친구에게 "인간이여, 그대 자신을 도우라!"고 대답했다.

  그의 이 자랑스러운 말에서 가르침을 받자. 그를 본받아 인생과 인간에 대한 인간적 신앙을 다시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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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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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하면 떠오르는 것 - 이슬람 국가, 오사마 빈 라덴, 탈레반, 미국과의 전쟁, 파병 등..

   작가인 할레드 호세이니는 1965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출생하여 1980년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다. 그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전까지 겪었던 그 곳에서 (아마도) 겪었을 역사의 굴곡은 이 소설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사는 상류층 '바바'의 아들이고 작가인 호세이니처럼 나중에 미국에 망명하게 되는 '아미르'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그 어린시절의 중심에는 하인 '알리'의 아들 '하산'이 있다. 수니파인 아미르는 바바의 유일한 외아들이자 도련님이고 하산은 소수인 수니파이고, 하자라인 하인의 아들이면서 아미르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다. 비록 아미르가 다른 사람 앞에서도 하산을 친구로 인정한 적은 없었지만 하산은 늘 아미르에게 변함없는 신의와 충직을 지킨다.

   남성적인 바바와 달리 (어머니를 닮은) 아미르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책 읽기, 글쓰기를 좋아한다. 자기를 별로 닮지 않은 아들에게 바바는 아들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아미르는 늘 아버지의 애정에 목이 말라 있다. 알리는 바바의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지낸 가까운 하인이었고 그의 아들 하산 역시 바바는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하산과 아미르는 동네의 어린 악당인 아세프 일당을 마주치게 되고, 하산은 그에게 새총을 겨누며 위기에 빠진 아미르를 구해준다. 아세프는 복수하겠노라며 이를 간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연날리기와 연싸움이 아이들의 대대적인 행사였다. 연싸움에서 끝까지 이기는 아이와 마지막까지 날던 연을 잡은 아이는 영웅이 된다. 아미르와 하산은 연을 잘 날렸고, 연을 잡는 데는 하산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연싸움에서 이겨 바바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미르는 결국 연싸움에서 이기고 하산은 연을 잡으러 간다. 이렇게 말하며,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열 두살 나이에 아미르를 그 이후의 그로 만든 그 사건이 그 날 일어났다.

연을 주워오다 골목에서 아세프에게 강간당하는 하산을 보고도 아미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도망쳤고, 하산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산을 볼 때마다 드는 죄책감에 아미르는 하산을 아예 피해 버리고,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결국 알리와 하산을 떠나게 만든다. 하산은 다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떠났다.

 

   그 후 공산세력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 사건 후 6년 뒤 바바와 아미르는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트럭에 몰래 오른다. 여러 고비를 거치며 미국에 도착한 그들. 바바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아미르는 작가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아프가니스탄인 벼룩 시장에서 만난 소라야와 아미르는 결혼하고, 바바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느 날,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아버지의 옛 친구 라힘 칸의 연락을 받고 고국에 가고 그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산의 출생의 비밀(그가 아미르이 이복동생이라는 것)과 그가 탈레반에게 총살당한 것, 그리고 그의 아들 소랍에 관한 이야기를. 그사이 아프가니스탄에는 공산 정권을 몰아낸 탈레반이 공포 정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연싸움은 금지되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여곡절 끝에 소랍을 찾아내어 데려오지만 탈레반의 우두머리가 된 아세프와 마주치게 되고 아미르는 그의 놋쇠 장갑에 처참하게 맞는다. 죽기 직전이었던 그를 구한 것은 소랍의 새총이었다. 하산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고아원에서 끔찍한 생활을 했던 소랍은 미국으로 가기 전 잠시 법적 절차를 위해 고아원에 가 있자는 말에 절망하여 손목을 그어 버린다. 다른 통로가 마련되어 고아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러 아미르가 갔을 때 욕조는 이미 피바다였다. 가까스로 목숨은 구했지만 소랍은 그 후 말을 잃었다. 미국에서 소라야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소랍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에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아미르와 소랍이 다시 희미하게나마 소통을 시작한 것은 연을 날리면서였다. 아미르가 연을 날리자 그것을 보던 소랍의 눈에 점차 생기가 돌았고 아미르는 상대편 연을 끊어버렸다. 연을 잡아다줄까 하는 물음에 소랍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아미르는 말한다.


"너를 위해서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나는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지 미소에 불과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아지지도 않았고, 어떤 것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저 작은 미소에 불과했다. 놀란 새가 날아오른 직후에 흔들리는 숲 속의 나뭇잎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를 양팔을 활짝 펴고 환영할 것이다. 봄이 오면 눈발이 하나씩 녹듯, 어쩌면 최초의 눈발이 녹는 것을 내가 목격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연은 아미르와 하산, 소랍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아프가니스탄 마을의 모습, 아이들의 놀이, 음식, 연싸움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호세이니의 개인적 체험에서 나왔으리라. (아직도 그 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극과 격동의 역사 속에서  아미르와 하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그럼에도 그들을 바라보고 그리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애정이 스며있다.

 

  출간된지도 한참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좋은 평을 받았고, 구입한지도 한참 되었지만 선뜻 손내밀어 읽지 못했다. (부끄럽다.) 읽고 나면 틀림없이 마음이 아플 것 같았고,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터였다.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읽기를 잘했다. 이 책에 대한 입소문은 부풀려진 것이 아니었고, 누구에게든 추천하고픈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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