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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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논쟁 하나.

개인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을까? 아니면 '환경적 요소'에 더 많이 좌우될까?  

 

   「아웃라이어」는 「티핑 포인트」, 「블링크」로 이미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말콤 글래드웰의 최근작이다. 영어 아웃라이어(outlier)는 책의 앞부분에도 나와 있듯이, 1. 본체에서 분리되거나 따로 분류되어 있는 물건. 2. 표본 중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관측지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두드러지는 성공을 거둔 사람을 뜻한다. 또 '성공'에 관한  자기 계발서인가? 이러이렇게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개인만의 재능과 지능, 성공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기회요소, 그리고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 공동체의 혜택을 누린 사람들이다. 개인을 넘어선 '문화'와 '상황'이 결정적이다.

   물론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 그것이다. 누구나 한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1만 시간을 쏟아야 하는데 이는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누구나 하루에 3시간을 10년 동안 한 분야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분야에서 꼭인정받고 빛을 발하는 것도 아니다. 가정 환경과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이 속한 문화적 환경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글래드웰은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만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노력만을 주로 강조하는 여타 다른 자기 계발서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글래드웰의 장점은 풍부하고 꼼꼼한, 그리고 재미있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캐나다 하키 선수들의 사례, 빌 게이츠 등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사례 뿐 아니라,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볼 수 있는 문화간 차이와 그 차이가 어떻게 큰 재앙으로 이어지는지 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성공의 결정 여부는 개인에게 있다는 것은 사실 신자유주의에서 전형적으로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실패 이유는 그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탓이지 사회의 탓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이들을 보조해 주거나 도울 이유가 없다고 한다. 역으로 개인의 성공 역시 그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종부세 같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한다. 사회 안전망과 복지는 (실패한 이들의 게으름만 부추길 뿐이므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간단히 생각해 봐도, 개인의 성공은 개인만의 노력이라 할 수가 없다. 좋은 가정환경,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성공할 가능이 높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데 질 좋은 교육 역시 요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무엇이 되었으며 부자일수록 좋은 교육에 접근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개인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이용해야만 하는 수많은 사회간접자본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개인의 성공은 그 개인 '혼자'의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논의는 레이코프의 「자유 전쟁」에도 잘 나와 있다)

 

    「아웃라이어」는 문화적으로 살펴봐도 개인의 성공은 신화라는 것을 잘 드러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주로 인용하는 책은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의 생각의 차이)와 홉스테드의 권력거리 개념 (아마도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서 인용했을)이다. 둘 다 예전에 문화연구소에서 공부했던 책들이라 친숙한 내용이었다.

   교육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 자못 흥미롭다. 캐나다 하키 선수들의 실력이 또래에 비해 먼저 태어나서 하키 연습을 할 시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누적적 이익을 갖는) 아이들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통계치로 밝혀내었는데, 성장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빠른 그 또래 어린 아이들간에 몇 개월은 엄청난 차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일 년 일찍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는 아이가 학업을 잘 따라갈 지, 또래들과 잘 어울릴지를 고민하곤 한다. 그래서 글래드웰은 학교에서 1~4월생, 5~8월생, 9~12월 생 등으로 끊어서 같은 발육단계에 있는 학생들끼리 학급을 편성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그리고 아시아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좋은 이유를 쉬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쌀농사 문화에서 찾으면서, 미국의 상대적으로 무척 긴 여름방학의 폐해와 아시아의 긴 학습 시간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빈곤층 학생들에게 3개월이나 되는 여름방학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한다) 그 예로 든 것이 뉴욕 브롱크스의 키프 아카데미인데 평균 수업 일수로 볼 때 이 학교 학생들은 일반 공립학교에 비해 50~60퍼센트 많은 시간을 공부한다. 키프 졸업생 중 90퍼센트가 사립이나 가톨릭 교구에서 설립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며 80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걱정스러웠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지나친 '학습'에 글래드웰의 이런 주장이 이용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는데, 키프 아카데미의 수업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 교육과 차이가 나는 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의 문제를 붙잡고 20분 이상을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이런 장면은 없거나 아주 드물다.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의 긴 학습시간은 사교육과 경쟁 체제라는 묘한 상황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므로 한국 교육의 질은 수업 시간의 양에서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비약이다. 수업 시간은 길지언정 키프의 한 교사가 말한 '지구력, 동기부여, 인센티브, 적절한 보상, 그리고 재미를 하나로 녹여내야 한다'는 고민이 우리 학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역자가 말하듯이, 글래드웰은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을 가르는 그 작은 차이, 작은 기회들을 더 많은 이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한 차이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아웃라이어」는 좋은 안내서다. 함께 인용된 니스벳과 홉스테드의 책을 읽으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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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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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를 덮고 나서 바로 생각난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몇 달전 읽다가 덮어두었던 책이었는데, 왜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놀랍게도, 이 책의 첫 문장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오 신기하여라!

  책을 사 놓고도 몇 년동안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해 늘 부끄러움과 부채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차피 그 때 읽어봤자 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그 때는 그렇게도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었나 보다.

   고전으로 분류될 만큼 꽤 오래 전 책인데도 시간의 흐름을 넘나드는 특이한 구성과  '프라하의 봄'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지리적 배경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묘사가 혁신적이라 느껴질 만큼신선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주인공들의 마음 속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고독감으로 헛헛하다. 사비나처럼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참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면 허무해질텐데.

 진실한 관계 맺음이란 현실에서도 참 쉽지 않다. 얼마만큼의 진실함이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가족 간, 언어를, 출신 지역을, 출신 학교를, 출신 직장을, 비슷한 생활 수준과 계급 혹은 계층, 그리고 비슷한 (같은) 종교 등의 경계를 넘어서서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나이가 들수록 회의가 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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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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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Clear our clutter with Feng shui)」이라는 책의  저자는 잡동사니가 에너지의 흐름을 정체시키고 그것이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의 몸과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고 풍수의 관점에서 말한다. 풍수에 대해서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보류하지만, 각 물건에도 에너지 파장이 있고 쓰지 않고 쌓여 있는 물건들이 에너지의 흐름을 정체시키며, 정리 정돈되지 않은 주변이 인생까지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책을 보면서 몇 번이고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항상 뭔가 쌓여 있는 내 방, 사무실의 책상, 옷장, 컴퓨터 안의 정리되지 않고 쌓여있는 파일들.  눈 수술 후 한 달 사이에 엄청나게 불어버린 체중과 바깥 나들이 기피증, 늘어나는 피로감과 무기력증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 더 무서운 것은 나의 정리되지 않음으로 인한 부정적 에너지들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모든 것이 내 자신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무리 가치있고 즐거운 일이라도 내가 힘들고 버거워지면 그 때부턴 부담스런 짐이 된다.

나를 지킬 수 있는 힘, 그것은 나를 알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책에서 식상하리만큼 자주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걸 가슴 깊이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나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것(내면이든 외면적인 것이든)은 사치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의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몸도 완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떨 때 보면 몸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내 몸이 내 마음대로 되던가? 그 안에 살고 있지만 몸에 대해선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런 몸에게도 얼마나 평소에 함부로 대하고 있는지. 계속 그대로 가다간 언젠가 몸이 '복수'를 해 올지 모른다. 자기를 알고 소중히 하는 사람이 어떤 큰 대의나 가치를 위해서도 희생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알지도 못하고 있지도 않은 자아를 어떻게 버린단 말인가. 역설 같지만 알고, 갖고 있기 전에는 버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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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이야기 1 - 미술이 태어난 날
조승연.앤드스튜디오 지음 / 세미콜론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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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1권의 부제는 “미술이 태어난 날”인데, 이는 서양에서 미술이 “미술”로서 인정받고 미술가들이 석공이나 노동자들이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한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앞부분 저자의 말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분명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는 독자들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분위기와 인물들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저자는 - 이 책은 역사적 인물과 배경을 중심으로 소설을 쓴 “역사 소설”이 아니다. 사록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을 극화시키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빈 공간에만 상상의 붓으로 몇 명 가상 인물의 삶을 그려 넣었을 뿐이다 - 라고 밝히고 있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을 어렴풋이 떠올려 볼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예술가들과 이탈리아의 문예부흥, 독일의 종교개혁 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런 거장들이 아니라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도나텔로, 마사초 등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메디치 가문은 워낙 역사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그러나 저자의 이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자가 <생각 기술>에서 서양 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으로 르네상스 정신을 언급했고,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를 그 예로 들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구상은 그 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듯하다)

 

  생소한 인물이 많은 만큼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저자는 독자의 부족한 배경 지식을 채워주기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데 그 점이 이 책의 형식적인 특징이자 큰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미술에 관한 책이니만큼 르네상스 시대의 여러 미술 작품과 건축물들의 사진과 그에 따른 해설은 물론이고, 인물과 용어에 대한 즉각적인 설명과 풀이, 지금의 시각으로 얼핏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에 대한 그 시대의 관점과 역사적 배경에 의거한 설명, 중간 중간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해 주는 연대표식 요약 등이 책을 읽으면서 따로 참고서적,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상세하고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의 형식을 통해 저자가 평소 책을 읽고 공부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또한 영상 매체, 인터넷 매체를 많이 닮아 있다. 여러 가지 관련 지식이 링크되어 있는 잘 짜여진 블로그 같기도 하고, 현재형의 시제와 생생한 묘사 덕분에 이야기 형식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해설 같은 표현도 있다. “지금 우리는 북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밀라노의 폭군인 비스콘티 공작의 군대를 지켜보고 있다.”)

 

  미술가와 작품들에 대한 참고서 몇 줄의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철저한 자료 조사에 근거한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상황(상당히 폭력적이었던)과 생활사, 커져 가던 예술가들의 영향력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등장하는 인물의 수가 많아 그 인물들에 대한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는 천재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던 이 시대의 특징을 소설 형식 속에 녹여내고, 여기에 가상 인물들까지 등장시키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야기의 진행이 가끔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도 받곤 했다. 앞으로 3권의 분량이 더 남아 있다고 하니 백과사전적인 이 책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도 좀 더 높아지기를, 또 더 많은 미술 작품들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시대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그렇게 문화적으로 부흥하고 융성했던 르네상스 시대이지만, 여성들의 참여는 여전히 봉쇄라 할 만큼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도 귀족이나 사업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지식과 교양이 있던 ‘코르테자노(궁정인)’가 나오는데, ‘코르테자노’가 19~20세기에 여성들에게 나타난 것이 ‘코르티잔’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런 코르티잔들이 없었는지, 여성들의 예술에의 참여는 어떤 형태로든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기는 기술자, 노동자라 불리던 사람들이 막 예술가, 지식인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때였으므로, 자신의 직업을 갖지 못했던 그 당시 여성들로서는 기술, 예술에의 참여 기회가 거의 없었을 거라는 추측은 해 볼 수 있지만.

 

  그리고,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오타가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철자법이 틀린 경우(p. 214. 마사초의 작품을 을->'을'이 두 번 나옴, p. 253. 나았는데->낳았는데, p. 272. 설치면->설치면서)나, '안나'를 '카테리나'로 잘못 쓴 부분(p. 132, 150)도 있다. 다음 쇄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부분에 대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책을 읽다가 어느 인물이나 용어에 대한 부분을 다시 찾으려면 책을 여러 번 뒤적여야 했다. 책 뒤에 색인 목록이 있으면 책의 활용도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한다.

 

  책에 대한 소감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저자와 같은 세대의 독자로서, 자신이 좋아하고 공부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형상물로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와 노력에 늘 자극을 받는다.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그리고 이‘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시리즈를 끝까지 완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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