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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ㅣ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평점 :
이슬람 정육점.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처럼 보인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고 먹지 않는 것이 돼지고기인데 이런 고기류를 다루는 정육점 주인이 무슬림이라니. 게다가 이 소설의 배경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이슬람은 아직은 낯선 단어다.
서울의 한 달동네. 소설의 화자인 ‘나’는 고아원에서 입양된 아이다. 나를 입양한 사람은? 터키 출신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앉은 ‘하산’아저씨다. 터키에서 왔으니 무슬림인 아저씨의 직업은 정육점 주인이다.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지만 학교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이승복 동상의 팔을 떼어버리고 화단에 오줌을 누었던 나는 어떤 ‘진단’을 받았고 그 후론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산 아저씨가 몇 번이나 나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셨어도 말이다. 내 몸에는 나도 알지 못하는 무수한 흉터가 있다. 하산 아저씨는 그 흉터의 기원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그것도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방향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우울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외려 담담하고, 이야기는 경쾌하게 흘러간다. 너무 무겁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등장인물들의 아픔과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오히려 더 잘 전해주었지 않나 싶다.
본래 남편, 아이들과 무슨 연유에선지 떨어져 살고 있는 충남식당 안나 아주머니. 하산 아저씨처럼 한국전 참전 후 역시 한국에 눌러 살고 있는 그리스 출신의 야모스 아저씨. 소설가를 꿈꾸는 연탄집 아들 말더듬이 유정(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기가 억겁 세월 윤회를 통해 이 곳에 왔다며 끝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맹랑한 녀석, 참전 당시 기억을 잃어버려 그 당시 기록을 줄줄 외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기억은 찾지 못한 대머리 아저씨. 어른이고 아이고 우리가 말하는 소위 ‘정상적인 삶’에서 한참 빗겨나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쌀집 둘째딸과 교회 전도사까지.
각 등장인물들의 사정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들의 이야기들이 갖가지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다같이 ‘소풍’을 가는 장면일 것이다. 트럭을 타고 이 모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함께 소풍을 떠나서 산돼지를 잡고 먹고 어울려 논다. 이후에 하산 아저씨의 가게를 더 비싼 값에 개발업자에게 팔려는 주인 때문에 하산 아저씨는 결국 가게를 내놓고 나와야 하게 되고, 라마단 금식 중 폐렴에 걸려 위중한 상태로 입원하게 된다. 거기서 하산 아저씨는 내 흉터가 총상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하산 아저씨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의붓아저씨의 피가 흘러 들어온 것을 느끼고 , 그리고 적대하던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떤 처지에 있건 삶의 순간 순간은 소중하다고,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내라고 이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순응’하라는 것은 아니다. 무덤덤하게 소설 중간중간에서 보여준 비판적 시선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후속편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자라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밑줄)
(p. 22) 학교란 한마디로 착실한 바보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나는 학교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똑같은 책걸상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얻어터지거나 욕을 먹거나 웃거나 울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끔찍해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p. 50) 불행과 비극은 온전히 타인의 것일 때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았다. 사람은 결코 자신과 닮은 타인을 진심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과 닮은 이들 - 가난하고 억압받고 무시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그처럼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 저 불결하고 끔찍한 인간과 내가 전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p. 51)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차이가 유사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행복한 자들이라고 한다.
(p. 70)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다. 불우한 청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추상은 구체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행복은 추상에 속한다. ......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것이야말로 구체가 아닌 추상으로밖에 꿈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p. 91)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싸구려 애정과 동정일 뿐이었다.
.....
상처받은 사람을 놀리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p. 107) 상처의 치유는 그런 식으로 유예된다. 정작 상처입은 사람들은 그걸 하루라도 빨리 잊기 위해 태연한 척 애를 쓰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상처가 낫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상처가 증식하면 드디어 온몽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되돌려주기 시작한다.
(p. 118) 말을 더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이 확신에 차 있는 건 아니다.
(p. 126) 나는 지루한 오후를 맛없는 빵처럼 뜯어먹었다.
(p. 129) 둘 다 명사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 둘이 함께 걷기 시작하자 일종의 합성명사가 되어 버렸다.
(p. 138) 내게 속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늘 그렇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도 그 때 알았다.
(p. 140) 시선에는 한계가 없다. 어디든 볼 수가 있다.
(p. 141)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들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구석이 있었다. .... 음악은 소리의 강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우리의 영혼과 유사한 리듬을 지녔느냐에 따라 음악으로 인식되는 법이니까.
(p. 155) 고통받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언어의 목록은 너무 간단하다.
(p. 189) 슬픔에 시효가 없다는 점이 인간이 지닌 권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p. 197) 소풍이란 이런 것이다. 용트림을 하는 돼지와 함께 게으른 바람속을 진땀을 흘리며 갈팡질팡 걷는 것.
(p. 214) 너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냥 여기는 자본주의라는 곳이야. 자본주의란 녀석은 한마디로 버릇이 없단다. 너도 자본주의한테 예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상처받는 건 너일 테니까.
(p. 229) 눈부신 하늘과 푸른 나무와 그것들이 품은 생명들. 그런 때가 있지 않던가. 세계가 선명한 의미가 되어 소나기처럼 와락 덤벼드는 순간. 지나가는 비 한 줄금에 영혼마저 흠뻑 적셔버린 그 순간이 지나고,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저 스쳐 지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하산 아저씨는 까닭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이해해 주었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아름답다는 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p. 233)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음에도 이 세상과 별거 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들이 수렴된 단 하나의 표정은 바로 저 엉덩이에 있는 게 아닐까.
(p. 236) 나는 내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꼈다. 뜨거웠다. 인간의 모든 기억들이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게 이어진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병실 구석에 있던 이맘이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