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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정성식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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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게 학기 시작 전 2월이었다. 학교를 옮기기 전 마음이 상당히 심란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이전 학교에서 일 년 유예할 수도 있었지만, 혁신학교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우대 점수를 믿고 지원했다. 업무 경감 시범학교부터 차근차근 혁신 학교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듯 보였던 학교였고 지원자가 경쟁이 심할 정도로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번 서평 이벤트에서 <혁신학교 2.0>을 신청해 읽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학교 선생님과 연락하며 학교 분위기와 학년 배정을 알아보며 나는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를 가늠하고 있었다.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막상 인사 발표가 나고 보니 나는 다른 우대자에 밀려 한 학교에 우대자를 한 명만 받는다는 규정에 따라 2지망에 썼던 학교에 발령이 나 있었다.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틀어졌고, 새 학교 발령 뒤 영어 교담을 희망했었지만 나는 1학년 담임 교사에 학년 업무는 학년교육과정이 주어졌다.

이 책의 1, 교육과정의 현실에 묘사된 현실이 그대로 나의 현실이 되었다. 8년만에 맡는 담임, 그 새 많이 바뀐 1학년 교육과정,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새 학교, 적응해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막 입학해서 가뜩이나 긴장한 아이들만큼이나 나 역시 긴장 상태로 보낸 첫 2, 아이들이 가고 나면 오후에는 몰아치는 각종 제출과 서류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학년 교육과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교육과정 작업을 맡아서 해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각 학년 교육과정 담당자들이 모여 전체 교육과정 담당교사의 설명과 반드시 맞춰 넣어야 하는 각종 시수와 가이드라인이 적힌 종이와 작년 교육과정 파일을 받았다. 다들 한 번쯤은 해 본 선생님들인지 별다른 질문도 없었다. 몇 장의 종이를 보며 막막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인지다른 선생님들은 아는 당연한 것을 묻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것조차 어려웠다.

작년 파일에서 교과 내용은 거의 그대로 두고 날짜와 시수를 맞추는데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작업하면서 계속 이 책이 생각났다. 이런 거였군.. 교육과정이란 게  한 학년 교육과정이 거의 100페이지에 달한다. 가뜩이나 바쁜 3, 2주 정도의 기간에 다 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다. 앞부분의 시수가 중요하지 일 년 동안 잘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3월에 하는 행사란다. 당연히 속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책에서 제기한 같은 물음. 보지도 않을 걸 이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나 길게 왜 해야 하는가? 이 시수를 맞추고 창체 영역에 교육청 지침에 따른 OO교육을 몇 시간 맞추어 넣고, 비고란에 무슨 내용인지 전체 차시와 해당 차시를 표시하는 작업에서 진을 뺐다. 뭐가 이렇게나 많은지. 이걸 다 이 서류에 넣으면 다 한 게 되나? 우리 학교는 이 내용을 포함시켜 했다는 서류 증거를 남기기 위한 것 아닌가? 정작 그 내용들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빠진 채, 담당 교사만 며칠간을 죽어라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여 만드는 문서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잠 못 자며 했어도 시수와 지침대로 다 제대로 넣은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결국 또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려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 했다. 주로 창체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 수많은 OO교육 부분에서.. 그러다 결재 라인에서 교감샘의 반려로 또 수정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내 입술엔 물집이 잡혔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내가 1학년 교육과정에 대해 잘 알게 되었느냐 그것도 아니다. 실제 교육과정 내용보다는 꼭 들어가야 한다는 OO교육이 시수에 맞게 들어갔는지, 주로 시수 맞추는 데 대부분의 시간이 쓰였다.

10년쯤 됐을까, 그 때도 시수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은 나는데, 새삼 교육과정에 이렇게 많은 내용이 들어갔었던가 의아해졌다. 오랜만에 담임을 맡고, 또 학교 교육과정을 받아들고 보니 매우 촘촘하다. 틈이라곤 없어 보인다. 일 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사며 OO교육이며를 보다보니 숨이 막혀온다. 이게 솔직한 느낌이었다. 업무도 그렇고 교육과정도 그렇고 담임 교사가 재량껏 할 수 있는 여지는 아주 적어 보였다. 정해진 것을 따라가며 하기에도 벅차겠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저자인 정성식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여겨진 부분은, 학교에서 담당자라면 누구나 다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대안 제시도 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공식적으로 하고, 학교 선생님들과 관리자들을 설득해 실제로 교육과정을 실제 이루어지는 교육을 실천으로 옮기셨다는 것이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책에는 생략하셨을지 모르나 준비 시간이나 기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냥 관행처럼 해 오던 교육과정 작업은 담당자만 며칠 (혹은 몇 달) 고생하는 일이니 다른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괜히 일 하나를 더 만드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분 한 분 만나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셨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과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장의 분업 공정처럼 세분화된 학교 업무와 일정 속에서,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는 ?’라는 질문 자체가 불편할 때가 많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 하라는 것 하기에도 피곤한데 무슨?’ 이런 분위기랄까. 이제 새 학교에 막 와서, 이런 분위기도 겨우 파악하고 있는 처지에서 교육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이 책을 함께 읽어보자고 다른 선생님들께 제안하는 것 이 지금으로서는 멀게만 느껴진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소통. 학교 실정에 맞는, 구성원들의 바람과 의견이 반영된 학교 교육과정은 이러한 소통의 기반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이 곳에 익숙해지게 되면 그런 질문과 제안을 던져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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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2.0 - 혁신학교를 넘어 학교혁신으로
박일관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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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한 궁금증으로 서평 이벤트에 신청해서 책을 받아보았다. 전북 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정책을 담당한 분이 쓰신 책이라고 하니, 한 학교의 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학교의 이야기를, 정책을 추진하는 입장과 잘 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 이 책은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혁신학교의 지정과 추진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겪는 어려움, 그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사례, 교육청의 역할, 현실적으로 안타까운 부분에 대해서도 3년 반의 경험을 통해 담담하게, 그리고 치우치지 않게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강조되었다고 느낀 부분은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진정성, 그리고 관계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무리 좋은 철학과 정책이 있어도 위에서부터 강제적으로 내려오고 통제와 지시 일변도라면 그 본래의 의미가 제대로 실현되기가 어렵다. 지금껏 우리 교육 현장의 교육 정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학습공동체가 필수적이라는 말에도 적극 동의한다.

복직하여 겪은 1년 동안의 학교의 모습은 이 책에서 묘사된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를 통해 모두가 참여하는 학교 운영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많지 않은 학급 수에 연구학교 등 이런저런 정책 사업들이 네 개나 되고 선생님들은 일년 내내 수업 외의 시간은 업무와 행사 준비로 마음의 여유라곤 없이 보내야 했다. 문서적이고 형식적인 절차는 있었으나 민주적인 절차는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듯 보이지 않았다. 문서상으로 많은 실적을 내고, 학교는 2년 연속 학교평가에서 최고등급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선생님들은 너무 지치고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도 그랬다. 목소리도 내기 어렵고 뭘 바꿔 보기는 더더욱 어려워 무기력감마저 느꼈다. 그나마 학교 선생님들과 조금 익숙해질 무렵, 함께 수업과 관련된 책 한 권이라도 꼭 읽어보자는 마음에 후배 선생님들 몇 분과 함께 독서 모임을 만들어 이혁규 교수님의 <수업>을 함께 읽고 이야기했다. 같은 학교에 있으니 함께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 만들기가 더 쉬울 줄 알았는데, 늘 학교 일과 행사가 있어 퇴근 시간 전에 다 함께 만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세 번만 모일 수 있어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학년말에 총 네 번을 모여서 서로 나눈 부분을 발표하고 생각을 나누었다.

  책의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학교가 관료제의 말단 조직으로서 기능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교사들이 업무 부담에서 놓여나기는 어렵다는 점, 행정 인력 배치 등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수업을 중심에 놓자는 단순하지만 본질을 위해 조금씩 바꿔나가려는 노력은 소중하다.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혁신학교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올해 옮길 학교로 혁신학교 중 한 곳을 신청했다. 아직 결과는 모르지만 어느 학교에 가건, 올해에는 의미 있는 변화에 동참하고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교사로서의 보람을 좀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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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허쌤의 공책레시피 - 공부가 좋아지는 공책필기 시작하기! 허쌤의 공책레시피
허승환 지음, 허예은 그림 / 테크빌교육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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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환 선생님의 공책 레시피는 학생들이 공책 필기를 통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기술(technique)적인 면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동기를 유발하고 있는 점이 신선하다. 나는 지금 영어 교담교사이기 때문에 허승환 선생님이 제시하신 방법들을 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지만, 다른 과목(특히 주지교과인 국어, 사회 등 내용 정리할 것들이 많은 과목)에서는 꽤 체계적으로 아이들에게 공책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예전만큼 공책 정리를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고, 수업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모습도 보기 드문 것 같다. 학원 학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해 스스로 손으로 써 보며 공책정리를 하고 정리를 하는 것은 추후 공부량이 많아질 때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고학년 아이들에게 활용도가 높을 내용인데, 이미 공부를 잘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는 활용도가 높을 것 같으나, 그런 동기가 이미 떨어져 버린 아이들한테는 어떻게 공책 정리를 시작하도록 해야 할 지에 대한 사례나 허승환 선생님의 노하우가 좀 더 제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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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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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쓰리'가 무엇인가 했다. 일본 소설이니 영어 three는 설마 아닐테고. 표지의 그림이 '쓰리'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의 말처럼 '반사회적'인 소매치기이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내게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낯선 이름이고, 이 소설가의 책도 처음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흡인력이 있어 쉽게 읽힌다. 무엇보다 소매치기 장면의 생생한 묘사,인물 행동들의 묘사가 영화를 보는 듯 눈 앞에 그려진다.

주인공들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일어난 사건들, 그들간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지 각 인물들에 대한 부연 설명은 거의 없다.  

'나(니시무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맨 마지막 그를 죽이기 직전에 기자키가 "너 참 너저분하게 살았더군."이라고 한 것과 지난 날을 회상하는 아주 잠깐의 몇 몇 장면에서 '나'에 대해 유추해 볼 뿐이다.  

신처럼 이 세상을 휘두르는 기자키 외에 (아니 그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모두들 삶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정되고 지속적인 관계는 없다. 니시무라와 관계를 맺었던 유부녀 사에코는 헤어진 후 한달 뒤 자살했고, 신미도 살해당했다. 편의점에서 발견한 꼬마 소녀치기와 창녀인 그 젊은 어머니의 관계, 생활도 매우 불안하다. '내'가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은 나에게 조금씩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가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자키에게 약점으로 이용당하고 만다.  

기자키는 소름끼치는 존재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가나 권력자보다도 더 큰 권력을 뒤에서 휘두르고 사람의 운명을 마음대로 정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다. 기자키가 니시무라에게 들려준 '운명의 노트' 이야기는 기자키가 생각하는 최고의 쾌락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그가 예로 든 이야기는 끔찍하다)

기자키는 몇 가지 임무를 니시무라에게 맡긴다. 꼬마 소매치기와 그 어머니의 목숨을 담보로. 임무 수행 전 꼬마 소매치기에게 상자를 주고 함께 공던지기를 한다. 작별인사를 하며 '시시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세상과 어울려 살 수 없으니 소매치기도 되지 말라고. 니시무라가 그 임무를 수행해 내는 과정은 이 소설에서 극적인 재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자키의 칼(그가 명령한)에 찔린다. 애초부터 그렇게 되기로 되어 있었다면서. 그러나 소설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으리는 암시를 남기며 끝난다. 기대할 것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라는 걸까. 혹시 속편이 나온다면 살아남은 내가 기자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며, 그 꼬마 소매치기가 어떻게 성장해서 또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려지지 않을까. 

파편화된 인간관계가 일본 소설에서는 주로 많이 다루어지지 않나 싶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실제 우리 삶이 많은 부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 소설을 읽고 나면 금속성의 차가운 기운이 더 많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이야기 중간중간 등장하는 '탑'. 실제 작가의 경험과 의식에서 나온 이 '탑'은 어떤 지향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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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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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처럼 보인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고 먹지 않는 것이 돼지고기인데 이런 고기류를 다루는 정육점 주인이 무슬림이라니. 게다가 이 소설의 배경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이슬람은 아직은 낯선 단어다.

서울의 한 달동네. 소설의 화자인 ‘나’는 고아원에서 입양된 아이다. 나를 입양한 사람은? 터키 출신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앉은 ‘하산’아저씨다. 터키에서 왔으니 무슬림인 아저씨의 직업은 정육점 주인이다.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지만 학교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이승복 동상의 팔을 떼어버리고 화단에 오줌을 누었던 나는 어떤 ‘진단’을 받았고 그 후론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산 아저씨가 몇 번이나 나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셨어도 말이다. 내 몸에는 나도 알지 못하는 무수한 흉터가 있다. 하산 아저씨는 그 흉터의 기원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그것도 소외되고 보잘것없는 방향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우울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외려 담담하고, 이야기는 경쾌하게 흘러간다. 너무 무겁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등장인물들의 아픔과 우리 사회의 모순을 오히려 더 잘 전해주었지 않나 싶다.

본래 남편, 아이들과 무슨 연유에선지 떨어져 살고 있는 충남식당 안나 아주머니. 하산 아저씨처럼 한국전 참전 후 역시 한국에 눌러 살고 있는 그리스 출신의 야모스 아저씨. 소설가를 꿈꾸는 연탄집 아들 말더듬이 유정(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자기가 억겁 세월 윤회를 통해 이 곳에 왔다며 끝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맹랑한 녀석, 참전 당시 기억을 잃어버려 그 당시 기록을 줄줄 외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기억은 찾지 못한 대머리 아저씨. 어른이고 아이고 우리가 말하는 소위 ‘정상적인 삶’에서 한참 빗겨나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쌀집 둘째딸과 교회 전도사까지.

각 등장인물들의 사정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들의 이야기들이 갖가지 사건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다같이 ‘소풍’을 가는 장면일 것이다. 트럭을 타고 이 모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함께 소풍을 떠나서 산돼지를 잡고 먹고 어울려 논다. 이후에 하산 아저씨의 가게를 더 비싼 값에 개발업자에게 팔려는 주인 때문에 하산 아저씨는 결국 가게를 내놓고 나와야 하게 되고, 라마단 금식 중 폐렴에 걸려 위중한 상태로 입원하게 된다. 거기서 하산 아저씨는 내 흉터가 총상에 의한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하산 아저씨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의붓아저씨의 피가 흘러 들어온 것을 느끼고 , 그리고 적대하던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어떤 처지에 있건 삶의 순간 순간은 소중하다고,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내라고 이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순응’하라는 것은 아니다. 무덤덤하게 소설 중간중간에서 보여준 비판적 시선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의 후속편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자라 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밑줄)
(p. 22) 학교란 한마디로 착실한 바보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나는 학교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똑같은 책걸상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얻어터지거나 욕을 먹거나 웃거나 울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을 끔찍해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p. 50) 불행과 비극은 온전히 타인의 것일 때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았다. 사람은 결코 자신과 닮은 타인을 진심으로는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과 닮은 이들 - 가난하고 억압받고 무시받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그처럼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 저 불결하고 끔찍한 인간과 내가 전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p. 51) 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차이가 유사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행복한 자들이라고 한다.
 

(p. 70)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다. 불우한 청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추상은 구체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행복은 추상에 속한다. ......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것이야말로 구체가 아닌 추상으로밖에 꿈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p. 91) 순종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철회할 수 있는 싸구려 애정과 동정일 뿐이었다.
.....
상처받은 사람을 놀리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다.
 

(p. 107) 상처의 치유는 그런 식으로 유예된다. 정작 상처입은 사람들은 그걸 하루라도 빨리 잊기 위해 태연한 척 애를 쓰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상처가 낫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긴다. 그런 식으로 상처가 증식하면 드디어 온몽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되돌려주기 시작한다.
 

(p. 118) 말을 더듬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이 확신에 차 있는 건 아니다.
(p. 126) 나는 지루한 오후를 맛없는 빵처럼 뜯어먹었다.
(p. 129) 둘 다 명사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 둘이 함께 걷기 시작하자 일종의 합성명사가 되어 버렸다.
(p. 138) 내게 속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늘 그렇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도 그 때 알았다.
(p. 140) 시선에는 한계가 없다. 어디든 볼 수가 있다.
 

(p. 141)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들은 어딘가 모르게 서글픈 구석이 있었다. .... 음악은 소리의 강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우리의 영혼과 유사한 리듬을 지녔느냐에 따라 음악으로 인식되는 법이니까.

(p. 155) 고통받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언어의 목록은 너무 간단하다.

(p. 189) 슬픔에 시효가 없다는 점이 인간이 지닌 권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p. 197) 소풍이란 이런 것이다. 용트림을 하는 돼지와 함께 게으른 바람속을 진땀을 흘리며 갈팡질팡 걷는 것.
 

(p. 214) 너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냥 여기는 자본주의라는 곳이야. 자본주의란 녀석은 한마디로 버릇이 없단다. 너도 자본주의한테 예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상처받는 건 너일 테니까.
 

(p. 229) 눈부신 하늘과 푸른 나무와 그것들이 품은 생명들. 그런 때가 있지 않던가. 세계가 선명한 의미가 되어 소나기처럼 와락 덤벼드는 순간. 지나가는 비 한 줄금에 영혼마저 흠뻑 적셔버린 그 순간이 지나고,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저 스쳐 지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하산 아저씨는 까닭 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이해해 주었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가 아름답다는 걸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p. 233)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속해 있음에도 이 세상과 별거 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인간이 지을 수 있는 모든 표정들이 수렴된 단 하나의 표정은 바로 저 엉덩이에 있는 게 아닐까.
 

(p. 236) 나는 내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꼈다. 뜨거웠다. 인간의 모든 기억들이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게 이어진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병실 구석에 있던 이맘이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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