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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도 2 - 폭풍전야 ㅣ 청소년 상도 2
최인호 지음, 김범진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1807년 순조 즉위 7년째 되던 해 9월
당대의 세도가였던 박준원 대감이 68세로 세상을 떠났다.
청렴하던 박준원과는 달리 아들 박종경은 권력의 맛을 즐기던 세도가의 한사람이였다.
인삼교역권을 확보하기 위해 임상옥은 부의금을 가지고 박종경을 찾아갔다.
부의금으로 내민 어음은 백지어음이였다. 준만큼 받는 다는 이치를 알게해준다.
박종경은 임상옥을 떠 보이느라 퀴즈를 냈다. 임상옥은 <논어>의 <계씨(季氏)>편의 예를 들으며 퀴즈를 맞췄다.
'세 명의 이로운 벗과 세 명의 해로운 벗이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박학다문한 벗이면 이로운 벗이고,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와 신용 없이 간사한 자와 진실한 견문 없이 말을 잘 둘러대는 자는 해로운 벗이다.'
임상옥은 백지어음 수표에 '赤心(적심)'을 적음으로써 박종경에게 마음을 주었다.
임상옥 역시 박종경의 마음을 얻어 인삼교역권을 확보할수 있게 되었다.
먼 훗날 박종경이 어려움에 처해졌을때 임상옥의 도움으로 복귀할수 있게된다. 임상옥은 적심을 지킨 의로운 사람인 것이다.
임상옥은 나라로부터 인삼 교역권을 얻어낸 덕분에 조선 최고의 거상(巨商)으로 성장하게 된다. 중국과의 인삼무역을 거의 독점하게된다.
1809년 순조 9년
임상옥과 박종일은 연경장사에 인삼 5천 근을 확보했다. 인삼 한근에 은자25냥이었다.
인삼값이 너무 적다고 판단한 임상옥은 '홍삼 1근당 은자40냥'을 적었다. 중국상인들은 기가 막혔다. 중국상인 모두 임상옥의 인삼 불매 운동을 벌였다. 임상옥은 첫번째위기를 맞는 순간이였다.
임상옥은 석숭스님이 알려주신 첫번째 위기순간에 살릴것은 '죽을사(死)'라는 말을 떠올린다.
연경에 같이가게된 김정희의 도움으로 깨달음 얻는다.
다음날 임상옥은 홍삼을 불에 태우게 명령한다. 중국상인들은 모두 놀랬다. 반은 타고 반이 남았을때 중국상인들은 자신들이 불에탄 홍삼 값까지 책임지기로 하고 구매를 한다. 무려 인삼 한근에 은자 90냥이 된 셈이다.
임상옥은 자기 자신을 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생명과 존재의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현한 것이다.
같이간 김정희 역시 문자향 서권기를 추구하던 옹방강과 학자들을 많이 키우고 학술 진흐에 앞장섰던 최고의 사상가 완원으로 인해 '實事求是(실사구시)'사상의 근간을 알게된다.
또한 '海東第一通儒(해동제일통유)' 조선제일의 통유, 즉 세상일에 두루 통하며 실행력이 있는 최고의 유학자라는 뜻을 담은 찬사를 선물로 전했다.
1811년 춘삼월, 순조11년 신미년이었다.
임상옥을 찾아온것은 이희저의 소개로 온 홍경래였다.
이희저, 우군칙, 홍경래는 혁명군에 끌어들이기 위해 임상옥을 선택했다.
임상옥은 홍경래의 뜻을 알아 채고는 반역자로 몰릴것을 걱정하며 이로써 두번째 위기가 왔슴을 깨달았다.
석숭스님이 두번째 위기일때 열어보라던 종이를 펼쳤다.
'솥 정(鼎)'
김정희만이 이 화두를 깨울쳐 줄수 있는 인물이라 선택하고 길을 나선다. 3편을 기대하며...
상도를 읽어 나감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장사를 해서 이문을 남기는 장사이전에
사람 볼 줄도 알아야하고, 어떠한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해 나가는 방법,
또한 책을 많이 읽고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얼마전 돌아가신 법정스님을 떠올려보며...석숭스님도 이런분이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은 無에서 온다고 했는데 모든것을 나눠주시고 간 법정스님의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