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Charlie and the Great Glass Elevator (Paperback, Reissue)
로알드 달 지음 / Puffin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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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다 놓은 로알드 달의 책 5권을 모두 읽었다. 처음에 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뭐 이렇게 허무맹랑한가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이어진다. 웡카 씨, 외 할머니, 외 할아버지, 친 할머니, 친 할아버지, 엄마, 아빠와 함께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나는 또 다른 모험 여행. 너무 높이 올라간 탓에 우주까지 가서 세계 최초로 생긴 우주 호텔에도 들어가 보고 (당연히 미국 소유) 몸이 쭉쭉 늘어나는 외계인 Knid도 보고 다시 지구에 있는 초콜릿 공장으로 안전하게 돌아와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법(?)을 배운다.

 


너무나 독특한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에 몇 개씩 배열이 되어있어 서로 연관성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 작가님이 뭔가 생각이 있었겠지. 게다가 이렇게 독특한 주인공이라니!! 냉소적이면서도 긍정적이고, 순수한 듯 현실적인 초콜릿 공장장 웡카 씨는 참 매력적이다. 찰리는 착하고 똘똘한 아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들의 성격이 의미하는 것이 또 있더라.


 

그동안 내가 생각한 어린이 동화에서 보던 뻔한 인물과 구조 - 착한 등장인물들이 나쁜 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결국은 착한 쪽이 승리하게 되는 - 는 아니었지만, 너무 착하지도 특별히 못 된 사람도 없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재미있고, 그 끝에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짓는 '로알드 달식'  이야기는, 너무 착하고 순수하지만은 않아서 더 좋다. 

3

But we must go up before we can come down!

하지만 먼저 올라가야 내려올 수 있지.

56

It‘s the only world they know.

아는 단어라고는 그것 밖에 없어.

87

"But didn‘t we come rather a long way round?"

"We had to," said Mr.Wonka, "to avoid the traffic."

"그렇지만 좀 돌아온 거 아니요?"
"그럴 수 밖에 없었죠" 웡카 씨가 말했다. "아니면 차가 너무 막히잖아요."

155

COULD YOU PLEASE BRING ME A FEW WONKA FUDGEMALLOW DELIGHTS. I LOVE THEM SO MUCH BUT EVERYBODY AROUND HERE KEEPS STEALING MINE OUT OF THE DRAWER IN MY DESK. AND DON‘T TELL NANNY.

오실 때 웡카 퍼지 초콜릿 몇 개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굉장히 좋아합니다만 백악관의 모든 이들이 제 책상 서랍에서 자꾸만 훔쳐갑니다. 유모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59

"It‘s certainly been a busy day."

"It‘s not been over yet," Charile said," laughing. "It wasn‘t even begun."


"정말 정신 없는 하루였어."
"하지만 하루가 다 간 게 아니예요." 찰리가 말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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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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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역사 관련 지식을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열심히 챙겨보는 <역사 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역사 선생님들이 뽑은 '현대에 살려내고 싶은 역사 속 인물 1위'에 다산 선생이 올랐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최태성 선생님이었던가? 여하튼 출연진 중 한 명이, 워낙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분이었던지라 정약용 한 분만 살려내면 우리에게 닥친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워낙 소설을 좋아하고 이런 유의 공부하는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우리나라 위인 중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에 대해 알고 싶었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이라는 것이 워낙 한자가 많이 섞여있으니 최대한 쉬운 책으로 볼까 싶어 사봤는데, 이나마도 한자 까막눈인 나에게는 좀 어려웠지만 다산 선생 본인이 가졌던 사상, 가치관 같은 것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엿볼 수 있어 좋았던 책.

 

솔직히 처음에는 아무리 대단하신 분이라고는 하나 무슨 편지글까지 읽어야 되나 싶었으나, 곧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인데 내가 생각했던 고루한 양반은 아니셨나 보다. 아들들에게 '어머니 잘 모시라'부터 시작해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편지로 꾸지람하시더니 역시 대학자였던 둘째 형 정약전과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학문에 대해 논하고, 심지어 개고기 요리하는 법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이어 제자들에게 쓴 편지에서는 살아가며 지켜야 할 마음가짐 등에 대해 꼿꼿한 자세로 일러주신다.

 


 

책 초반을 읽을 때는 잔소리가 너무 심하여 무슨 편지로까지 혼을 내나 싶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서 정리하려고 다시 훑어보니 다 맞는 말이다. (어른 말 틀린 것 없다던가) 모르는 것 없이 다 능통한 분이었다더니, 닭 기르는 방법에서부터 기존의 책에 대한 비판까지 이 책에만 등장하는 분야만 해도 엄청나게 방대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 논할 때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까지 상세히 적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학자란 이런 글을 남기나 보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다산의 다른 글을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그거야 읽어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나같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무난히 볼 수 있었으며 다른 저서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만드는 괜찮은 입문서였다. 워낙 곱씹을 말이 많아 천천히 읽게 되는데, 소설만 잔뜩 보던 나로서는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39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떄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41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100
너처럼 배우지 못 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이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까지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 제발 이 천애의 애처로운 아비의 말을 따르도록 해라.

253
비록 이것이 초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서 가르쳐주시고 의당 절차탁마하여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더러 갑이다 을이다 서로 우기며 분쟁이 오감으로써 어린 시절 집안에서 다투던 버릇을 잇는 것도 절로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301
재물을 남에게 주는 것을 혜惠라 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재물이 있고 난 뒤에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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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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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봤다. 가장 사랑받는 영문학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현대에 와서 꾸준히 사랑받는 것도 모자라 재생산까지 되고 있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3년 전인가, 같은 책을 사서 봤다가 그때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던지 장황한 문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깨끗이 보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다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다시 사서 봤다가, 그래도 매력을 못 느껴 옛날 옛적에 사 놓은 원서를 조금 보다가, 당최 어려워서 다시 사 본 민음사의 번역본. 처음에 봤을 땐 내 상태가 그래서 그랬는지,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아주 재미있게 봤다.


 

내용이야 워낙 유명하니 그냥 지나가기로 하고. 어디선가 현대 드라마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착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큰언니 제인은 잘 생기고 성격 좋은 (그리고 당연히 부자인) 빙리 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당시 또래의 여성과는 조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역시 한눈에는 매력을 알아보기 힘든 다아시 씨와 (역시 이분도 무지무지 부자) 오랜 사랑싸움 끝에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정의하는 대로 딱히 '여성스러운 매력'을 가진 것은 아니나 특유의 자신감과 재치 있는 말솜씨 등등의 매력에 엄청난 부자이며 다소 무뚝뚝한 성격을 지녀 표현을 잘 못하는 남자 주인공이 반하게 되고, 자신의 재력과 외모를 봤을 때 거절하기 힘들 거라 생각하고 청혼을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엄연히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당시 사회에서 본인보다 신분이 낮은 여자에게 '감히' 거절당했으나 그래도 마음을 접지 못 한다. 그리고 여자에게 큰일이 생겼을 때 티도 내지 않고 묵묵히 처리해준다. 이 과정에서 남자에게 가졌던 생각이 편견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여자는 어느새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한국 드라마의 기본 전개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그 수많은 '한드'를 영국 소설의 형태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으나 이 소설이 1813년에 출판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대 멜로물의 원형'이라는 말이 맞는 것도 싶다. 주인공끼리 서로 첫인상이 좋지 않아 만나기만 하면 투닥대는 것을 포함해서.


 

뭐, 그러면 어떤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제인 오스틴 특유의 장난스럽고 장황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게다가 이렇게 독특한 등장인물들이라니. 베넷 부부를 비롯해 리지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하고 옆집 사는 샬롯과 결혼하는 친척 콜린스며 번드르르한 얼굴과 태도로 만나는 사람들을 죄 속이고 다니는, 리지의 동생 리디아와 결혼하게 되는 위컴 씨, 착하디착한 제인 언니와 그런 그녀의 진가를 알아본 빙리 씨. 소설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사람들 같다.


고전이 다들 이렇게 재미있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읽겠다. 굉장히 굉장하고 대단히 대단한 그런 작품들은 당장 못 보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은 좀 더 봐야겠다.

33
......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나 그 호감이 전혀 북돋워지지 않는데도 진정한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우리 가운데 별로 없을 거야. (...) 빙리가 네 언니를 좋아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렇지만 그 사람이 계속 좋아하도록 언니 쪽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저 좋아하기만 하고 말지도 몰라.

147
엘리자베스가 보기에는 자기 가족이 그날 저녁 최선을 다해 망신당할 짓만 하기로 미리 약속을 하고 왔다 한들 그날 저녁보다 더 신나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거나 더 훌륭한 성공을 거두기는 불가능 했을 것 같다

185
게다가 연인들이란 세상에서 제일 못 봐줄 족속들이다. (베넷 부인 감사합니다)

267
몇 분 동안의 침묵 후에 그는 다소 흥분된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봤자 안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15
그런데 난 말이야, 그 분을 단호하게 싫어하는 것으로 남 다르게 똑똑하게 굴려고 했던 거야. 아무 근거도 없이 말야.

447
그녀의 마음은 속삭였다. 그가 이 일을 자신을 위해 했다고.

521
내가 시작했구나 알았을 때는 벌써 한참 지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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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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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와 <아가미>를 본 것이 전부였지만, 환상적인 소재를 통해 따뜻한 시선을 그려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동화를 빌어 또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냈다는 것이 신선해 '아묻따' 구입한 책.


 

 

<작가의 말>에서처럼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봤을 법도 하지만 그것의 출처가 정확히 누구의 어디였는지는 살짝 가물가물한 여러 개의 원본 화소들이 혼재해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꼭 하나의 동화만을 가지고 그려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동화'라는, 시대도 배경도 모호한 공간에서 초현실적인 일들을 겪으며 인간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 보여주는데, 이런 점에서 차라리 다큐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꾸며주는 말이 많은 영어식 문장과 다소 냉소적인 어투로 그려내는 이야기 속에는 재미있게도 곳곳에 한국식 문화가 숨어있다. 그래서 더 '동화'라는 몽환적인 주제를 더 잘 살려준다. 장치는 비현실적이나, 인간을 내밀하게 이해한 작가의 힘 있는 필력 덕에 자꾸만 책 속의 긴긴 문장을 곱씹게 만든다. 전작들을 읽을 때에는 알지 못 했던 차가운 문체도 좋다.


 

 

옛날이야기, 동화, 설화, 민담 등등에는 계속해서 들춰보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래오래 살아남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장 원초적으로 자극하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가벼운 듯 쉬운 듯, 하지만 읽고 난 후 그냥 넘길 수 없는 구병모식 환상동화. 다 필요 없고, 정말 재미있다.

45
실은 그까짓 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코웃음 치실까 두려워 숨기고 있었답니다. 정말 두려웠던 것은 그 코웃음마저 감사히 여길 나 자신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95
그들 인생의 가장자리에 불과한 내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99
생활을 위해, 그것을 뒷받침하는 노동을 위해 스스로의 실루엣을 기꺼이 지우거나 돌출부를 깎아 냄으로써 한없이 둥그스름해지고, 그러므로 언젠가는 평평해지며 밋밋해지는 일이 당연한 삶.

122
시간은 꺾이지도 역류하지도 않고 앞으로만 나아간다. 도모해야 할 것은 등 뒤가 아닌 눈앞에 있다.

145
우리의 대화는 긴박하고 차갑고 예의 발랐으나 그 모습은 언제 끊어내도 무방한 절취선을 서로에게 긋고 있음을 뜻했고, 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230
나가는 문을 찾지 못 할 만큼 나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길들여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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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Thief (Paperback) - 『책도둑』 원서
마커스 주삭 지음 / Alfred A. Knopf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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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려운 편도 아니었고,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재미없게 느껴지지 않았는데도 읽는데 오래 걸렸다. 계산해보니 정확히 한 달 읽었네. 영어책이라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나는 책을 살 때 딱히 책의 정보에 대해 미리 알고 사는 편은 아니다. 그냥 추천을 받거나 요새 인기 있는 책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마음에 드는 놈들을 장바구니로 옮겨 한 번에 왕창 지르곤 한다. 그러니까 이 책도 나치 시절 독일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며 화자가 저승사자라는 걸 전혀 몰랐다. 그래서 초반에는 내가 뭘 잘 못 읽었나 싶어 자꾸 앞으로 돌아가 읽은 것을 확인 또 확인했지만, 곧 익숙해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은 아주아주 오랜만에 책에 폭 빠져 손에서 놓기가 싫었던, 정말 정말 재미있게 본 책.





1930년대, 리젤은 독일의 양부모에게로 입양된다. 기차를 타고 독일 뮌헨으로 오는 동안 남동생이 죽고, 어딘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 하는 곳에 묻어주게 된다. 그리고 리젤은 처음으로 책을 훔친다.




생모와 헤어지고 남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9살의 리젤은 새로운 부모와 살면서 또 다른 삶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그녀를 따뜻하게 받아준 양아버지 한스와 함께 훔친 책을 읽고 글자를 배우고, 옆집 사는 레몬색 머리칼을 가진 루디와 친구가 되며 낯선 동네에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오래전에 은혜를 입었던 지인의 아들이자 유대인인 맥스가 함께 지내게 된다. 유대인들을 함부로 죽여도 이상할 것이 없던 때라 지하실에 숨겨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험한 시대였다. 그러나 이들은 맥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비정상적인 시대에 정상적인 인간애를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




패망 직전, 세상의 포악함은 극에 달하고 그에 따라 이 착한 사람들의 인생도 자꾸만 휩쓸려 가게 된다. 절정을 향해 속도를 낼 듯 말 듯하던 이야기는 갑자기 급제동을 걸고 멈춰서 이 이야기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정확히 보여준다.




정신 나간 시대의 가족애, 사랑, 우정, 생명의 소중함, 용서, 공감, 죄책감... 이야기가 전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이상한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서로 사랑하고 보듬고 싸우고 미워하며 살았나 보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길이가 다소 길다 보니 등장인물들에게 애정이 생겨 너무 많은 일을 겪은 리젤에게 연민이 가고, 심지어 화자인 (그리고 인간이 아닌) 죽음의 신 (혹은 저승사자)의 입장에까지 자꾸 대입이 되는 것도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명실공히 선진국인 독일에 이런 과거가 있었다니. 사실 이런 일은 까딱 잘 못 하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그 참혹함을 앳된 소녀 리젤의 인생을 통해 들여다보는,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의 이야기. 소설을 읽는 것에도 목적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몰랐던 일을 사람들에게 생생히 전해 기억하게 하는 것. 당분간은 나치 관련 이야기는 읽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오랜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깊이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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