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 씨 부부가 나타나자마자,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 시원한 것이라도 들자는 간곡한 권유를 받았으나, 굳이 사양하고,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고서 헤어졌다. 다아시 씨는 여자들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으며, 마차가 떠나자 그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엘리자베스에게 보였다.-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 (민음사)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이다. 두 주인공이 만난다. 여자는 몰랐지만 남자는 여자를 처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차저차 오해가 조금 풀린다. 이후 남자는 본래 살던 곳으로 떠나고 여자는 그 근방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주인 없는 집이라 해서 남자의 집을 구경하러 갔다가 우연찮게 남자와 딱 마주친다.
남녀는 서로의 마음을 모를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모른다. 생각 외로 신사다운 남자의 태도를 본 여자는 마음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집에서 딱 마주친 두 사람. 분위기가 묘하다. 그는 나를 아직 사랑할까? 이제 아무렇지 않아서 저렇게 예의 바를 수 있는 걸까? 아니야,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 엘리자베스는 마음만 급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에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잡힌다. 작가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어떤 때는 백 마디 말보다 잠깐의 정적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해주기도 한다.
예전에는 작가가 분명히 명시해놓은 부분에 집중을 했다면 요즘은 자꾸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 멈추어 생각해보게 된다. 풀어놓은 이야기를 따라 열심히 읽다가 제동이 한 번 걸리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 공간을 채워 넣기도 하고, 반대로 단어 몇 개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스러운 감정을 실뭉치처럼 남겨두기도 한다. 작가와 함께 작품을 완성한 기분이라 뭔가 뿌듯한 느낌도 든다. 나는 요즘 수동적으로 읽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읽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