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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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영하 작가가 인기인가 보다. 이 책을 사놓은 지 1년은 된 것 같지만, 사실 작가님은 그때도 <알쓸신잡>으로 유명세를 더할 때였다. 비소설보다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궁금해 소설이 읽고 싶었는데, 크레마에 들어있는 몇 개 안 되는 소설 중 인기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살인자의 기억법>,<퀴즈쇼>를 읽은 게 다다. 팬까지는 아니고 관심 있는 작가다. 일단 김영하 작가의 책은 참 재미있다. 사실적인 표현이 상황을 눈에 그리듯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은 남으로 내려온 간첩 가족이 하루 동안 겪는 이야기다. 평양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남으로 내려와 김기영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그 인물로 살아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북에서 훈련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도시는 낯설었다. 무엇보다 개인에게 여러 가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게 신기한 개념이었다. 북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하긴, 남에서 사는 지금도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라 사정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십여 년 전 마지막 명령을 수행한 이후로 부여받은 인격으로 저 위에서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살라고 계획한 인생의 틀 내에서 조용히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북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의 나이 어느덧 사십 대가 되었고, 힘들었던 젊은 날을 지나 이제는 그날들에 대한 감회를 느낄 수 있는 때도 되었는데, 심한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저 위에서 나를 찾아냈고, 이제는 그만하고 돌아오라 한다. 아니, 어쩌면 나를 두고 치열한 머리싸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날, 아내는 아내대로 끝장을 본다. 고아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남편은 그녀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이해한다.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마음속 외로움과 상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녀는 그 또래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기 힘든 방식으로 욕망을 배출하고, 오늘을 마지막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두 사람의 딸 현미에게도 오늘은 특이한 날이다. 진국이라는 친구네 집에 초대받았고, 그래서 놀러 갔고, 어찌어찌 두 사람은 첫 키스를 하게 된다. 사실 현미는 진국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진국의 말을 생각하던 현미는 진국이가 자기와 같이 산다고 말하던 친구의 존재는 어쩌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래저래 힘든 하루를 보낸 이 가족에게 새로운 날이 밝았다. 부모님의 분위기가 어째 다른 때와 다르다는 걸 느낀 현미는 둘이 어제 격한 사랑이라도 나눴나, 생각하지만 그뿐이다. 오늘은 어제와 별다르지 않고, 어제가 그랬듯이 오늘도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글은 읽다 보면 마구 빠져들게 된다. 특히나 이 책에서는 등장하는 주변 소품들이 그냥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소나타 자동차','폭스바겐 골프','푸마 스니커즈','배스킨라빈스 매장과 아이스크림'처럼 구체적인 상표까지 명시되어 있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기영이 코엑스에서 미행을 따돌리고 도망치는 장면은 너무나 생생해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으니까. 명령을 수행한 지 이십 년 된 간첩이라는 설정도 재미있었다. 정말 그 오랜 시간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이제는 한국 사람이 다 된 간첩이 있다면 딱 이런 모습일 것 같은 느낌.

그런데 <퀴즈쇼>도 그렇고, 책에서 별여놓은 재미에 비해 결론이 너무 성급하게 나는 듯한 인상이 든다. 뭘 기대하고 읽는 게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말끔한 결말을 원하는 건가? 뻔하다고 욕하면서도 권선징악, 해피엔딩, 열린 결말 뭐 이런 것들. 이 중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는 김영하 식의 결말도 재미라면 재미겠다.


41

이십 년간 단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명령, 4번 명령임을 아무래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56

코흘리개들도 아는 것을 뒤늦게 배우는 것이야 말로 피할 수 없는 이민자의 운명이다.


99

첩자에게 필요한 것은 변장술이나 잠입술이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이다.


178

종로는 처음에도 낯설지 않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익숙해지지 않는 거리였다. 그곳은 서울의 중심이지만 어쩐지 늘 변방 같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서울다웠다.


266

"맞아, 당신은 대학을 다녔었지."

"맞아, 그래서 지금 내가 한정훈이나 당신보다 잘 사는 거지."


430

"살아남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미친듯이들 사는 것 같아. 왜 나만 그걸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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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 (합본)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26
염상섭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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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을 실제로 만나거나 보게되면 참 신기한 생각이 든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봤을 때라던가, 하다못해 살까말까 고민하며 찜해두었던 옷을 입은 사람을 우연히 봤을 때라던가. 완전 평면으로 존재하던 것들에게 부피와 양감이 생기면서 갑자기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 순간의 생경함이란. 이 책도 중고서점을 하릴없이 돌아다니다 발견한 책이다. 이 <삼대>라는 제목은 분명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들었겠지. 무슨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역사로만 존재하던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야기는 말 그대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에 걸친 이야기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할아버지는 돈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 온 양반이다. 아버지는 명색이 교회 목사님이시다. 아들은 부잣집에서 나고 자라 고생 모르고 살아온 곱상한 '책상물림'이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영 못마땅하다. 예수의 말을 전합네 하며 별 일 같지도 않은 일을 하고 다니는 아들에게는 정이 가지 않는다. 서 있는 자세며 입고 있는 옷까지 불만이다. 할아버지에게 유일한 희망은 손자다. 유약하고 그릇 작은 아들보다는 손자가 이 큰 살림을 잘 이끌어 갈 것이라 생각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할아버지와 서조모(라는 말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으나 사전을 찾아보니 할아버지의 첩이라는 말이란다) 내외는 손자 부부와 함께 살고, 아버지 부부는 따로 산다. 자주 오는 것도 아니건만 아버지는 가끔 문안인사 드리러 오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할아버지에게 늘 타박을 받는다. 아들 덕기는 그런 아버지 보기가 민망스럽다.

일본에서 유학하다 잠깐 들어온 덕기는 길을 가다 우연히 옛 동창이자, 이제는 아버지의 첩이 된 경애를 만난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둘 다 예쁜 외모에 재주도 많아 서로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어른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아버지와 경애는 이제 서로 보지 않는 사이라 덕기는 경애를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난감하다. 서로 말꼬리만 흘리던 둘은 경애와 아버지 사이에 난 아이를 보러 가기로 한다.

그리고 덕기의 친구 병화가 있다. 덕기와 마찬가지로 '인텔리'인 그는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혈혈단신으로 가난하게 산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의지할 데라고는 덕기밖에 없지만 구차하게 굴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배경이 일제 강점기라는 거다. 당시의 시대상이란 나에게는 그냥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 같은 거라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까지는 잘 몰라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도 많았다. 가령 할아버지에게 문안인사는 매일 가는 것인지, 될 때마다 가는 것인지, 당시 돈 좀 있는 남자들에게 첩 하나 정도 있는 건 당연한 거였는지 뭔지. 나온 지 백년도 안 된 소설 속 인물의 생활상이 이렇게 낯설어서야. 게다가 외국어처럼 보이는 처음보는 낱말도 많아서 난생처음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읽은 책이다.

나름대로는 윗 세대와는 달라야지 하면서 하정작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삼대의 모습이 식민지 시절 유약한 대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이해가 가기도 하고.

여튼 명성에 비해서 재미는 그닥이었으나 끝까지 읽을만큼은 된다. 요즘은 왜 그런지 자꾸 일제 강점기 지식인의 모습이 궁금해서 당시의 소설을 찾게 된다. 아, 있는 거부터 먼저 읽고!! 이렇게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소설 체험 하나 완료.

21

부친에게 이꼴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부친에게 대하여 이때껏 느껴보지 못 한 반항심이 부쩍 머리를 들어오는 것을 깨달았다.

33

부치닝 그리 잘난 인물은 못 되더라도 인격적으로 아들에게만이라도 숭배를 받았던들 얼마나 자기는 행복하였을까?

45

자던 양복이 아니라 출입벌이고 무어고 단벌이다. 덕기는 먼지가 뿌옇게 앉은 그 양복바지를 비참하다는 눈으로 한참 바라보고 섰다.

"왜 이렇게 얼이 빠져 섰나? 모든 것이 너무 비참한가?"

192

"왜 동정녀 마리아도 아이를 낳는데 나는 혼잣몸이라고 아이 못 낳을까? 둘이 만드는 것보다 혼자 만드는 게 더 용하고 현대적이라우"

334

부친의 일생을 말하자면 이 금고를 지키기에 소모되고 만 것이다.

466

그 아버지의 자식이지마는, 아버지 같다는 것은 듣기 싫었다. 덕기는 자기가 부친같이 계집에 눈이 벌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514

사회 교제라고 첫 출발이 고작 이것인가? 하며 코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525

"이런 세상에서 맑은 정신, 제 정신으로 살자면 그럴 수밖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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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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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유럽 어디쯤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이놈의 상명하복, 이 빌어먹을 놈의 전체주의, 조금이라도 다르면 죽는 줄 아는 겁 많은 어른들.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 난 이상한 앤가 봐, 하면서 살아온 지 어느새 삼십몇 년. 나랑 같은 생각을 한다는 판사님이 있다길래 책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다 읽고 나니 판사님, 개인주의자 맞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제대로 된 개인주의자답게 다른 개인도 존중할 줄 아는 분이시네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회식이고 행사"라는 작가님은, 시험 하나 잘 보는 능력 덕에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 듣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단다. 사회나 조직의 불합리함을 알아보는 시각은 있으나 딱히 남을 위해 희생씩이나 할 정신 같은 건 없었던 대학시절을 지나, 어찌어찌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이 된다. 그리고 나라를 대신해 법을 집행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살고 계시다.

동시대를 사는 비슷한 성질머리를 가진 인간으로서 공감 가는 구절이 많아 중간중간 책을 내려놓고 킥킥대며 웃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쾌한 글발이며 냉철하지만 따뜻한 작가님의 면모가 보여 재미있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며 나 자신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사람은 모를 거다. 소화기가 좋지 않아 음식을 가리는 나로서는 5인 이상 단체로 어디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그냥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으레 그렇다. 음식의 선택권도 그렇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선택의 폭도 그렇고. 술을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주변의 머리통들은 눈이 빠질 듯 해서는 이유를 물어댄다. 설명하면 알아듣기나 할 건가 뭐.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말이라도 하게 되면 아까 그 머리통들은 각기 편한 방향으로 각도가 꺾인다. 나의 비혼 여부가 당신들에게 큰 숙제라도 남긴 양.

개인주의자라고. 내 생각에 이건 그냥 도대체 나 같은 부류가 이해가 되지 않는 자들이 최후의 보루로 붙인 딱지 같은 정의이고, 내가 생각할 때 판사님 혹은 작가님은 그냥 깨어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사회의 잘못된 부분이 너무 잘 보이고, 인간들 간의 묘한 기류를 잘 느끼고, 그 불편함에 굳이 동석하고 싶지 않은. 오히려 불편함을 잘 느끼기에 사람들에게 더 예의를 갖출 수 있고, 맡은 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으며,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판사님은 인간을 혐오한다고 선언하셨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분인데 뭐.

오래간만에 공감 가는 유쾌한 글이 좋았다. 요새 영어만 보다 보니 우리글이 심하게 당기는데 갈증해소가 되고도 남는 즐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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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 하서명작선 29 하서명작선 100
김구 지음 / 하서출판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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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요즘 책이란 읽는 물건이 아니라 사는 물건이다. 읽지 않는다고 해서 사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게다가 책 구경은 언제나 꿀잼이다. 그중에서도 중고책 구경은 새 책보다 더하면 더 했지 절대 덜하지 않는 법. 그 집에 뭐 단 거라도 발라놨는지 핑계에 핑계를 대며 자꾸 가게 된다. 이 책도 중고서점에 가서 구경하다가 집어왔다. 분명 언젠가 저녁을 아주 많이 먹은 주말 저녁, 소화를 시킨다며 나간 끝에 괜히 들렀을 것이다.

한번씩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매년 3월 1일이나 6월 25일 같은 날 방송국에서 으레 해주는 다큐멘터리나, 시대극 등을 보다가 괜히 비장해지곤 한다. 이런 영상물이야 그때를 직접 겪어보지 못 한 우리 후손들이 재구성 한 '창조물'이니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시각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역사를 살아낸 사람은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했다. 그냥 배불러서 알라딘에 갔다가 사온 건 아니라고.

내가 김구 선생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금보다 식민사관이 덜 벗겨진 시대의 국사시간에 몇 번 들어봤던 게 전부이다. 그리고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풍채 좋은 배우가 꼭 동그란 안경을 쓰고 나오던, 그러나 그 시대를 그린 극에서는 비중이 크건 작건 꼭 만날 수 있던 그 이름 김구. 극에서 많이 봤던 데다 이름이 주는 느낌도 그렇고, 어쩐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극중 배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백범 일지가 굉장히 무겁고 비장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천만의 말씀.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재치 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으레 무게 잡고 진지하고 위엄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일본인이면 누구나 '~놈'이라 지칭하는 것도 이상하게 웃겼고 (예: 왜 경관 일곱 놈), 임시정부 시절 본인의 행색을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라느니 '그래도 이만하면 고등 피난민'이라고 표현한 구절도 재미있었다.

선생의 자서전을 보니 생각했던 당시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라서 흥미로웠다. 일제강점기 초반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우호적이었으며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독립운동을 피하는 분위기는 우리의 독립의지가 어떻게 해도 꺾이지 않아 일제의 탄압이 시작되며 생기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지하는 이들은 많아서, 임시정부가 이사 다닐 때마다 같이 이동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김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했다는 것도 몰랐던 부분이다. 일반인들이야 당연한 건데, 독립운동가들조차 생활을 직접 해결하며 살았던 생활인이었다는 사실도.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시작인데 말이다. 아니, 야채장수 윤봉길 의사에 공장 노동자 이봉창 의사라니! 생각이나 했겠나 말이다.

백범 일지에서 현실과 무지하게 싸웠던 독립운동가를 만나게 되기라고 누가 알았을까. (하긴 그럼 난 뭘 상상했던 걸까) 역시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다. 알고 보면 재미있는 열사들의 생생한 그때 그 시절 이야기, 의외로 재미있다!

15
우리 집이 어떻게나 호젓한지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우리 문전으로 지나갔다. 산어귀 호랑이 길목에 우리 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밤이면 한 걸음도 문 밖에는 나가지 못하였다.


29
내 형색으로 말하면 머리는 빗어서 땋아늘이고 옥색 도포에 끈목띠를 띠었다. 때는 내가 열여덟 살이 되던 정초였다.


37
안 진사의 이름은 태훈이니 그의 맏아들 중근은 나중에 이등박문을 죽인 안중근이다.

39
"홍역도 못 한 장군이로군." 하고 웃었다.

61
그런 즉 고 선생은 아버지를 보시고 내가 못생긴 것을 한탄 말라고


69
"이인이 없을 리야 없겠죠마는 아,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83
이로부터 나는 옥중에서 왕이 되었다.

160
나는 난장을 맞을 때 내복 위로 맞으니 덜 아프다 하고 내복을 벗어버리고 맞았다.

186
그래서 나는 집안일에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해본 일이 없었고 내외 싸움에 한 번도 이겨본 일이 없었다.

200
죽는 것도 자유가 있는 자라야 할 일이라서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하면 산 것이 아니요 살아져서 산 것이고, 죽으려고 하여도 죽지 못 한 이 몸이 필경 죽어져서 죽게 되었다.

209
있을 것은 다 있어서 공산당 외에 무정부당까지 생겼으니

214
동포의 직업이라 하여 전차 회사의 차표 검사원인 인스펙터가 제일 많은 직업이어서 70명가량 되었다. 나는 이들의 집으로 다니며 아침저녁을 빌어먹는 것이니, 거지 중에는 상거지였다.

224
내게 오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고 잘 논다는 소문이 났다.

231
상패 일본 영사관에 있는 일인 관리 중에 우리의 손에 매수된 자로부터

234
내가 청년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를 잃지 말란 말이다. (...)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잘한 체를 말라는 것이다. 제 뇌로, 제정신으로 생각하란 말이다.

243
피난민으로는 고등 피난민이라 할 만하게 살았다.

254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게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255
그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국제 간의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것이었다.


260
늙은 몸을 자동차에 의지하고 서울에 돌아오니 의구한 산천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272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 댄 삼십 년이 못 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274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279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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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Legend: And Other Stories (Mass Market Paperback, REV and Revised)
리처드 매드슨 지음 / Tor Books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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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고 읽기로 결정한 데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심심해서 동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고, 이 책에 눈에 띄었고, 그래서 샀다. 본 적은 없지만 영화로도 나와있다고 하니.

나는 책을 살 때 내용을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사는 걸 좋아한다. 처음부터 내가 온전히 알아가듯 읽는 게 좋다. 그러므로 이 책 또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좀비물인 줄 알았는데 맙소사, 읽다 보니 웬 뱀파이어 이야기? 제일 좋아하지 않는 종류인데 이게 뭐냐 했지만 읽다 보니 재미있다. 사실 뱀파이어가 등장한다는데 상황이야 뻔한 거 아닌가? 쫓기고, 저항하고, 숨고 등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이 역시 작가의 필력이 중요한 법인가 보다.

전염병이 창궐한 1976년의 어느 날, 네빌은 오늘도 혼자 집에 있다. 이웃 사람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딸까지 모두 잃었다. 그는 살아남을 만반의 준비를 마쳐놓았다. 딸의 방은 식료품 창고로 바뀐지 오래이고, 온 집안을 판자로 못질하고, 마늘을 온 사방에 걸어놓고, 밤이면 찾아와 자신을 잡아가겠다고 괴롭히는 동네 흡혈 주민(?)들의 끔찍한 소리가 듣기 싫어 방음장치 공사까지 마친다.

도대체 이 병의 원인은 뭘까, 그는 오늘도 무언가를 한다. 도서관(이었던 곳)을 찾아가 관련 서적을 빌려 공부하고 실험도 해보고,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을 흡혈귀로 만드는 이놈의 균에 대해 이론을 정립해 나간다. 왜 도대체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도 없는 삶이 외롭다. 살아남은 개 한 마리를 만나 희망을 가져보지만, 곧 죽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집 주변으로 지나가는 여자 한 명을 본다. 그는 다짜고짜 여자를 쫓아가고, 여자는 그 길로 줄행랑을 친다. 얼마 만에 만난 인간인가. 네빌은 루스라는 이 여자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부득부득 집으로 들여 같이 기거하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뭐야 너무 뻔한 거 아냐? 둘이 또 사랑에 빠지겠군 했는데 오산이었다.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끊임없이 루스를 의심한다. 감염된 거 아닌가? 그렇다면 꼭 내가 낫게 해줄게. 그런데 아무래도 하는 행동이 수상한데? 진짜 감염된 건가? 그래도 괜찮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주인공은 여자를 완전히 믿지도 못하면서 보내지도 못한다. 하긴 험한 일을 겪으며 혼자 살아남은 지 3년이다. 이제는 대화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날, 자다 일어나 보니 루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다. 집을 떠나 살아남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떠나지 못한다. 이미 혼자만의 공간에서 완벽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살아온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대 마지막 인류인 그는 드디어 최후를 맞는다.

다 읽긴 했지만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뭔지 잘은 모르겠다.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가상한 것이었다? 아니면 이 모두??

뻔한 내용 아닐까 했던 책 치고는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뭐가 남는지는 물음표다. 하긴 뭐 책을 읽고 꼭 뭘 배우고 남겨야 하나. 재미있으면 됐지 뭐. 예상치 못한 마무리가 씁쓸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영화는 어떠려나?

 

5.
He took down a can of tamato juice, then left the room that had once belonged to Kathy and now belonged to his stomach.

그는 토마토 주스 한 캔을 꺼내고는 방을 나왔다. 한때는 딸 캐시의 방이었으나 지금은 그의 위장을 책임지는 곳이 된.

26
Virginia.Take me where you are.

버지니아. 나 좀 데려가 줘

52.
He found himself wondering again why he chose to go on living.

내가 왜 살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는 또다시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85
Yet here he was, eight months after the plague‘s last victim, nine since he‘d spoken to another human being, ten since Virginia had died.

그러나 지금 여기 그가 있었다. 전염병의 마지막 감염자가 죽은 지 8개월, 인간과 이야기해 본 지 9개월, 그리고 버지니아가 죽은 지 10개월이 지났다.

128
He was afraid of loving again.

다시 사랑하기 두려웠다.

130.
Through the years he had achieved a certain degree of peace.

지난 몇 년 간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139.
"Why were we punished like this?"
(..)
"I don‘t know," he answered bitterly. "There‘s no answer, no reason. It just is.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벌을 받는 걸까요?"
(...)
"모르죠." 로버트가 쓰게 대답했다. "대답 같은 건 없어요. 이유도 없고요. 그냥 그런 거."

159
And suddenly he thought, I‘m the abnormal one now.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다른 종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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