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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ㅣ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역사 관련 지식을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열심히 챙겨보는 <역사 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역사 선생님들이 뽑은 '현대에 살려내고 싶은 역사 속 인물 1위'에 다산 선생이 올랐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시 최태성 선생님이었던가? 여하튼 출연진 중 한 명이, 워낙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분이었던지라 정약용 한 분만 살려내면 우리에게 닥친 웬만한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워낙 소설을 좋아하고 이런 유의 공부하는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우리나라 위인 중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분에 대해 알고 싶었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이라는 것이 워낙 한자가 많이 섞여있으니 최대한 쉬운 책으로 볼까 싶어 사봤는데, 이나마도 한자 까막눈인 나에게는 좀 어려웠지만 다산 선생 본인이 가졌던 사상, 가치관 같은 것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엿볼 수 있어 좋았던 책.
솔직히 처음에는 아무리 대단하신 분이라고는 하나 무슨 편지글까지 읽어야 되나 싶었으나, 곧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 조선시대를 살았던 유학자인데 내가 생각했던 고루한 양반은 아니셨나 보다. 아들들에게 '어머니 잘 모시라'부터 시작해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편지로 꾸지람하시더니 역시 대학자였던 둘째 형 정약전과 주고받은 편지에서는 학문에 대해 논하고, 심지어 개고기 요리하는 법까지 상세히 알려준다. 이어 제자들에게 쓴 편지에서는 살아가며 지켜야 할 마음가짐 등에 대해 꼿꼿한 자세로 일러주신다.
책 초반을 읽을 때는 잔소리가 너무 심하여 무슨 편지로까지 혼을 내나 싶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서 정리하려고 다시 훑어보니 다 맞는 말이다. (어른 말 틀린 것 없다던가) 모르는 것 없이 다 능통한 분이었다더니, 닭 기르는 방법에서부터 기존의 책에 대한 비판까지 이 책에만 등장하는 분야만 해도 엄청나게 방대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주제에 대해 논할 때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까지 상세히 적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학자란 이런 글을 남기나 보다.
나의 좁은 식견으로 다산의 다른 글을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그거야 읽어봐야 알겠지만, 하여간 나같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무난히 볼 수 있었으며 다른 저서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만드는 괜찮은 입문서였다. 워낙 곱씹을 말이 많아 천천히 읽게 되는데, 소설만 잔뜩 보던 나로서는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39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떄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41 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100 너처럼 배우지 못 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이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까지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 제발 이 천애의 애처로운 아비의 말을 따르도록 해라.
253 비록 이것이 초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 잘못된 해석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해서 가르쳐주시고 의당 절차탁마하여 정밀한 데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다가 더러 갑이다 을이다 서로 우기며 분쟁이 오감으로써 어린 시절 집안에서 다투던 버릇을 잇는 것도 절로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301 재물을 남에게 주는 것을 혜惠라 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재물이 있고 난 뒤에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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