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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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서 이후의 이야기가 나와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이야기일까, 책을 다 보기도 전부터 궁금했었다. 벌써 언제부터 봐야지 하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을 때 1순위로 구입했다.





그러나 책의 중반부가 지나갈 때까지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내가 잘 못 알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편과 무슨 상관인가 싶은 이야기 전개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상상하지 못 한 방법으로 4년 전 있었던 일과 지금의 일을 엮어내는데, 그 논리가 기상천외한 것만큼이나 정치는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선거날 시작된다. 아침부터 비가 어마어마하게 오고, 그 덕분인지 오전 시간인 것을 감안해도 선거장은 영 썰렁하다. 그런데 투표 결과를 보니 전체표의 무려 70% 이상이 백지표였다.






정치권은, 특히 우익정당에서는 이 일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투표를 실시하지만, 별 득표를 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백지투표율이 오히려 상승한다. 백지투표는 불법이 아닌데, 곧 정권이 전복되기라도 하는 양 예민하게 반응한다.  동시에 이 기회에 더 많은 권력을 쥐고자 하는 이들의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폭동'이라 규제하고, '주민들을 고립시켜 부글부글 끓게 하기 위해' 도시에 계엄령을 내리고 공권력은 도시를 빠져나간다. 그러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도, 시민 보호의 의무를 담당하는 군인도 빠져나간 도시는 오히려 너무나 평화롭다. 정치 수뇌부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명분 없는 그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지혜로운 대체 덕에 도대체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이야기가 숨 돌릴 새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데, 독자에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체라 더 속도감 있고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다) 인물 간의 대화가 따옴표 없이 죽 나열되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헷갈리기도 해서 집중하고 보느라 숨이 다 찰 지경이었다.






책의 결말이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닌가 보다.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라는 책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끝날지 궁금하다. 나의 나라와 상황이 별반 다른 것 같지 않아 꼼꼼하게 읽었다. 얼른 사다 놓은 책 다 보고 다음 편 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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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lda (Paperback, 미국판) - 뮤지컬 <마틸다> 원서 Roald Dahl 대표작시리즈 4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 Puffin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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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소설을 두 번째 읽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나쁜 아이는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아야 해요'하는 내용이라면 <마틸다>는 '아이들이 보는 나쁜 어른의 모습이란 이런 것이다'하는 것만 같다.





마틸다는 천재 소녀이다. 태어난 지 1년 반 만에 이미 어른 수준의 대화를 구사하고 3살이 되었을 때 신문 등을 보며 혼자 글자를 깨쳐 곧 411쪽이나 되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일주일 만에 다 읽는다. 동화니까 뻥도 있는 거지 뭐. (나는 콜린사의 432쪽짜리 위대한 유산을 읽다 포기했다. 물론 마틸다는 천재인데다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이고 나는 아니지만)






마틸다의 아버지는 중고차 판매업자로, 온 나라의 도난 차량을 받아 불법 개조하여 폭리를 취하는 나쁜 놈이다. 어머니는 '빙고'라는 게임을 매일 하러 다니느라 아이들 육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저녁때면 식탁은 건들지도 않고 티브이를 시청하며 밥을 먹는다. 부모님들은 티브이는 보지 않고 매일 책만 들여다보는 마틸다가 이해도 되지 않고 별다른 이유 없이 이 똘똘한 아이를 싫어한다.






그러다 학교에 들어가 무시무시한 교장 선생님 'the Trunchbull'을 만나게 된다. 전직 투포환 선수였다는 이 선생님은 아이들을 끔찍이 싫어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체벌 방법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어린아이 머리채를 잡아 올려 빙빙 돌리다가 멀리 던져버린다던가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고 있는다든가 하여간 너무나 가학적이어서 작가가 인물 설정을 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시선에 나쁜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보이는 걸까. 아이들이 보는 귀엽고 깜찍한 이야기가 아니라 험하고 폭력적이라 공감이 잘 안 갔다. 이 작가가 왜 유명한 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의구심도 들었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웃자고 쓴 건가.






여하튼 마틸다는 똑똑한 아이인데다 난데없는 초능력까지 생겨 자신을 알아주는 담임 선생님 Miss Honey과 함께 여차저차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된다. 로알드 달의 작품은 더 읽어봐야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유명한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상 독자는 아이들이지만 딱히 아이들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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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Prebound)
Dahl, Roald / Perfection Learning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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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책이 계속해서 영화화되고 있다. 어린 시절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몇 년 전 내용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상태에서 영화를 봤다. 팀 버튼 감독과 조니 뎁의 조화가 영화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원래 이런 분위기의 이야기였다.





내용이야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생략. 결국은 '말 안 듣고 고집 피우는 아이는 벌을 받고, 가난해도 자신의 상황을 묵묵히 견디고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요' 하는 교훈적인 내용인데, 중간중간 아이들이 벌받는 장면이 좀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린이가 보는 책이 이렇게 잔인하다니. 게다가 웡카 아저씨는 모르고 그런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분명 의도한 듯. 내가 너무 심각한 건가






어쨌든 상상력이 대단한 것 같다. 웡카 공장장은 초콜릿을 어찌나 동화처럼 만드는지. 달콤하고 우유 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초콜릿이 먹고 싶었다. 어린 시절 '과자 만드는 공장은 이럴 거야' 하고 상상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초콜릿 폭포라던가, 호두를 다람쥐가 분류한다던가, 먼 나라에서 와 근무하는 움파룸파라던가. 게다가 위-아래-오른쪽-왼쪽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유리 엘리베이터라니. 아이들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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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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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몸이 아파 책도 못 읽는 지경이었다. 그러는 사이 김영하라는 작가가 유명해졌나 보다. 그러다 최근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을 읽었고, 이 작가가 궁금해졌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집어온 책.





주인공의 이름은 이민수. 엄마도 없고 아빠는 얘기로도 들은 적도 없으며 외할머니를 엄마 혹은 큰이모라고 부르며 자랐다.  어느 날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원까지 나와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는 그가 누린 모든 것이 외할머니의 빚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빚쟁이에게 집을 빼앗기고 당장 그날부터 고시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도 주인공에게는 별 변화가 없다. 이야기는 중후반부 갑자기 속도를 내며 날 것 그대로의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78쪽

"오빠는 이러니저러니 멋진 말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실은 그냥 놀고 싶은 거야.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유유자적하며 살려는 거지. 안 그래?"





163쪽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 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빚돈으로 유지한 안락한 집에서 가짜 엄마와 평온한 삶을 살던 주인공은 고시원이라는 현실적인 공간에서부터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과 어디인지 모를 또 다른 세계를 드나들며 이 세상의 다른 이들처럼 '어느덧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배경이 현실세계든, 온라인 공간이든, 그 어떤 곳이든 주인공이 속한 사회에 대한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라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 작가님이 보내는 따뜻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았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것이든 지원받고 자랐지만 결국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던 동시대의 사람들이여,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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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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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주의!!!!!!!!!!!!!!



책의 초반 부분을 읽을 땐 시간과 공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가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얽히고설키고, 마치 주인공과 그의 친구를 보는 것만 같은 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의 이야기가 액자 구조처럼 전개되고, 이야기는 예상치 못 한 곳으로 흘러간다.




주인공 '준'은 아홉살 때 교통사고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 후유증으로 현재 불안장애를 가지고 살고 있다. (라고 정확하게 책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당사자로서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익숙지 않은 소리가 나면 본인이 어떤 사건, 사고의 목격자가 되어 증언을 할지 모르니 항상 시간부터 확인한다.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소유하는 것도 싫은 그에게는,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있을 수밖에 없는 '친구'라는 존재는 오로지 '진' 뿐이고, 그의 소유물 중 중요한 것이라곤 프란츠 카프카의 <성>과, 실레의 화집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진이 선물한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어쩌면 진인지도 모른다.




의대생인 진과 준은 우연히 한 여인과 만나게 된다. 사고로 가족과 남자친구를 잃었다는 이 여인은,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가엾게도 일생 단 한 사람밖에 마음에 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온 가족이 당한 사고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상처에 시달리는 준은 자취를 감춘 그녀를 수소문하고 다닐 만큼 끌리지만, 끝에는 늘 그냥 도망쳐 버린다. 가족과 갑자기 이별한 상처가 깊어서 인가 싶기도 하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인가 싶기도 하고. 




여자를 만나며 그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피곤하게 하는 것은 있었어도 아프게 하는 것은 별로 없었던", 딱히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마음을 주지 않던 그는 어느 순간 환자를 '환부'가 아닌 '인간'으로 대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130쪽

지금까지 나는 단지 환부를 상대했다. 그런데 점점 그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환부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보았고 그에 따라 감정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쉽게 지쳤다.





"언제나 혼자였고 조용했던" 그는, 별 이유도 없이 현관에 도어락도 달고 집에 햄스터를 들이고 시디플레이어를 사들인다. 그러나 본인의 이런 모습이 낯설다. 결국 햄스터는 죽고, 시디플레이어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만 배달이 지연된다.

돌연 일을 그만두고 프라하로 가기로 한다. 떠나기 전 진과 만나 '우리가 왜 친하게 지냈을까?' 생각하며 어색한 농담을 하다 헤어진다.



막상 떠난 여행에서 그는 딱히 할 일을 찾아내지 못하고 기껏 날아간 프라하의 호텔에서 꽃 냄새가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누워만 있다. 그리고 비행기에서부터 만난 한국 여자들 '미아'와 '미나'를 만나며 이야기는 또 다른 모퉁이를 돈다. 이 둘은 진이 만난 또 다른 '진과 준' 이었을까.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모르게 흘러간다.

여행에서 돌아온 준은 진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마음을 주고 본인의 상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그는 치유를 멈추고 이번에는 진의 인생을 살기로 작정한 듯하다. 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진의 약혼녀와 결혼한다. 아들도 하나 낳고 신도시에 집을 짓고 젊은 부부의 표상인 듯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준은 그런 사람이니까.





128쪽

제한된 삶 속에서 인간이란 죽을 때까지 전체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텐데, 하나를 전체로 알고 사는 편이 여러 개를 알고난 뒤 나머지에 대한 갈급 때문에 조급해하며 살아가는 쪽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185쪽

그런데 죽은 다음에도 나는 계속 나야......끝나지 않는다는 거야......너무 지겨운 일 아니냐구.




예전에 <새의 선물>을 볼 때는 추천자들의 극찬에 비해 사실 별로 와 닿는 게 없었는데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작가님 필력이 장난 없다. 곱씹어 볼 대목도 많고. 그런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뭐가 진짜이고 뭐가 환상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게 작가님이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책 제목처럼 "꿈이었을까" 싶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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