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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산책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편역 / 지콜론북 / 2024년 10월
평점 :
헤르만 헤세 지음/ 지콜론북(펴냄)
작가 헤르만 헤세말고 인간 헤세는 어떤 사람인가? 정원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했다. 그의 소설 외에도 에세이와 산문에 여행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헤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우울증과 가족들의 병, 조국의 배척 등 삶이 주는 어려움을 삶 밖에서 관조하고자 한 그의 자세는 문학적 사유로 드러난다. 이탈리아에서 헤르만 헤세는 무엇을 본 걸까?
베네치아의 모든 집에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한 헤세. 도시가 주는 즐거움을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한 헤세의 문장들.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함은 신경쇠약을 더욱 심각하게 한다.
너무나 여윈 상태에서도 글쓰기를 놓을 수 없었던 그는 무리하게 글을 쓰다가 아팠는지, 글이라도 쓸 수 있어서 그 삶을 견뎠는지는 모를 일이다. 작가가 여행 중에 해당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눈 대화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일상의 대화들조차도 문학이자 작품인 헤세.
피렌체의 수도원에서 왜 이제는 이런 작품을 그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수도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사람들은 500년 이상 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달리 말하면 돈 되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을 혹은 자신들의 시대를 경멸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헤세는 대답해 주었다.
볼로냐 여행에서 헤세는 예술적인 기준을 벗어나면 볼 수 있는 게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공감이 된다. 헤세는 완전히 고립된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으로 대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종종 있다. 그래서 책 제목도 무해한 산책일까....
독일 남부에서 태어난 헤세는 따뜻한 곳으로의 여행을 늘 꿈꾸고 동경했을 터. 그에게 이탈리아란 어떤 의미일까, 길가에 핀 꽃들조차 봄을 다 합친 것만큼 아름답다고 표현한 헤세.
편집부에서 보내준 편지를 제일 마지막에 읽었다. 언젠가 헤세가 걸었던 길을 나도 걸어보고 싶다. 서로의 노트를 읽어볼 시간, 서로의 산책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기다려진다. 구름, 나무, 어린이들과의 대화 그리고 순수한 예술품을 대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헤세. 첨단과학의 시대 바쁜 일상 속에서 헤세가 누리고자 했던 여유, 자연과의 교감,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싶다. 세계여행을 다니면 꽉 짜인 일정을 따라 나만의 사색의 시간은 오히려 사치가 되는 현실인데 언젠가 꼭 한 번의 헤세의 여행을 따라 해보고 싶다. 닮고 싶다.
난 오히려 헤세의 소설이 아니라 여행 산문에서 더 깊은 매력을 느꼈다. 이 책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제 그의 소설을 다시 펼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