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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지음 / 디플롯 / 2025년 11월
평점 :
한국 SF의 방향을 바꾼 작가 《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디플롯 (펴냄)
이 책은 나에게 창작 지도다.
존경하는 김보영 선생님은 한국 SF의 방향을 바꾼 작가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 길을 낸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길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로 그린 분이다. 한국 문단에서 SF가 변방의 상상력으로 취급되던 시절, 선생님은 세계를 설계하는 언어로 SF를 끌어올렸고, 감정과 사유, 과학과 서사를 하나의 항로로 연결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작법서가 아니라 “세계로 들어가는 항해도” 여기서 어릴 때 재미있게 읽었던 《보물섬》의 지도가 떠오른다^^
낡은 종이 위에 그려진 X 표시 하나가 소년 짐 호킨스를 바다로 떠나게 했듯이, 김보영의 문장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향해 작가를 출항시키는 신호가 아닐까? 중요한 건 보물이 이미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보물을 찾아 나서도록 만드는 ‘지도’가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김보영 선생님의 지도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기만 하지 않는다.
“핵심을 일부러 틀려라.”
“세계가 흔들릴 때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자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여러 개 만들어라.”
이 문장들은 좌표이자 방향이자 경고문이다. 보물섬의 지도처럼, 한편으로는 모험을 부르고 한편으로는 위험을 암시한다. 김보영의 SF가 위대한 이유는 세계를 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항로까지 설계하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핵심이 틀려야 서사가 시작된다’는 선언이다. 하드 SF의 문법은 정확성을 향하지만, 김보영은 그 정확성의 한가운데에 일부러 균열을 낸다. 그 균열은 오류가 아니라 이야기의 엔진이다. 세계가 어긋나는 순간, 인물은 선택을 강요받고 독자는 사유를 시작한다. 이는 그렉 이건의 《쿼런틴》을 예로 들며 설명되는데, 겉으로는 과학적으로 치밀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틀려 있기’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움직인다는 분석은 김보영식 SF의 핵심을 정확히 짚는다. 과학은 장식이 아니라 세계를 흔드는 장치여야 한다는 것.
여기서 나는 최근 읽었던 류츠신의 《삼체》를 떠올렸다. 《삼체》 역시 거대한 물리학적 상상 위에 서 있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힘은 과학적 설명 그 자체보다 ‘우주의 질서가 인간의 윤리와 충돌하는 순간’에서 발생한다. 문명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비정함, 우주적 스케일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감정.... 이것은 김보영이 말하는 “세계가 인물만큼 중요하다"라는 SF 적 태도와 정확히 맞닿는다. 다만 둘의 차이는 온도에 있다. 류츠신이 차갑게 문명 단위의 계산을 밀어붙인다면, 김보영은 그 계산속에서 상처받는 개인의 감각을 놓지 않는다. 여성 SF가 보여주는 섬세함은 바로 여기에서 빛난다. 세계의 구조와 감정의 결을 동시에 설계하는 능력!!!
또 하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독자를 고려한 구조적 작법이다. 〈인터스텔라〉의 이중 스토리라인 분석처럼, 과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감정선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두 겹으로 깔아둔다. 이는 내가 꿈꾸는 작품 ‘청소년도 읽고 성인도 감동하는 SF’에 거의 정답에 가깝다. 청소년에게는 감정과 성장의 서사를, 성인에게는 사유와 세계관의 깊이를 동시에 제공하는 방식. 김보영은 이걸 이론이 아니라 실제 집필 경험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감탄한 부분은 “읽을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작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작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독자에 대한 전략적 애정이다. 《삼체》가 방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도 결국 서사의 견인력 때문인데, 김보영은 바로 그 ‘견인 장치’를 '언어화'해서 보여준다. SF 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기술이자 태도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SF가 장르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김보영은 여성 작가가 SF에서 어떤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의 궤적으로 증명했고, 동시에 ‘세계 설계 + 감정 밀도 + 독자 접근성’이라는 세 요소를 모두 잡는 방법을 제시한다. 류츠신이 우주적 절망을 보여주었다면, 김보영은 그 우주 속에서도 인간의 이야기를 끝까지 붙드는 법을 알려준다.
세계를 크게 설계하되, 인물의 감정을 중심에 놓고, 독자가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두 겹 세 겹 만들어라—김보영이 걸어온 길 자체가 그 답이다.
김보영 선생님 존경합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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