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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버스 - 낙원에 갇힌 아이들
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김 윤 장편소설/ 팩토리나인 (펴냄)
철저히 계급이 나눠진 세계, 살아있기만 하면 괜찮은 걸까? 주인공 수호 사고로 메타버스 세상인 헤븐 버스에 오게 된다. 여기서 주목했던 점은 타인을 구하려다 난 사고라는 점이다. 작가의 전작을 잠시 찾아보고 왔다. 누군가를 살리려던 몸은 그 수명을 다하고 대신 의식만이 살아남는다는 설정. SF에서 가끔 보던 세계관인데 이번에는 청소년 화자를 다룬다. 작품 속 세계가 안전욕구가 극단적으로 충족된 세계라는 점도 흥미롭다.
헤븐 버스는 현실에서 몸이 아픈 아이들이 의식만을 옮겨 살아가는 메타버스 공간이다. 그곳에는 통증이 없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차별도, 불안도 제거되어 있다. 완벽한 만큼 철저히 설계된 이 세계는 과연 행복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낙원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주인공 수호는 그 구조를 곧 알아차린다. 그리고 병준과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 세계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통제된 구조물이라는 사실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이 설정이 단순한 SF 적 장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을 압축해 놓은 은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보호는 언제든 통제로 변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이 불공정하더라도 그 시스템을 정당하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세계는 불안정해지고 나의 삶은 예측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평등을 겪으면서도 그래도 이게 낫지라고 말하는데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의 반복되는 맥락이다.
수호와 병준은 헤븐 버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움직인다. 아이들은 혁명을 꿈꾼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이 단순히 탈출을 원해서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되찾고 싶어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고통이 없는 세계에서 고통의 의미를 묻는 아이들. 상처 없는 세계에서 선택의 책임을 되찾고 싶어 하는 아이들 대단하지 않은가?
물론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고 대가는 혹독하다. 설계된 세계의 벽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혁명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잔혹하다. 세계를 부술 것인가? 말 것인가... 습작을 처음 할 때 쓰다 말았던 메타버스 관련 작품을 다시 꺼내 써봐야겠다는 욕구가 일어난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문장에 대해 헤븐 버스는 ‘생존’을 보장한다. 하지만 수호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타인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한 소년이 타인의 선택을 대신해 설계된 세계를 거부한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수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을 향해’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의 사고도, 그의 혁명도 모두 타인을 향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단순한 메타버스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윤리적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생각된다.
고통이 제거된 세계는 진짜 행복일까?
소설의 결말이 완전한 승리인지, 또 다른 시작인지는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헤븐 버스 안에 있는 걸까. 계급, 통제, 생존, 윤리, 혁명이라는 묵직한 질문, 이 세계가 안전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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