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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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만나지 않은 쌍둥이 프란츠 카프카 × 에곤 실레』

홍선기 (지음)






카프카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찾게 된다. 명쾌한 결론 대신 인간의 불안과 죄의식을 말하는 작가!

이 책 표지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와 화가 에곤 실레가 어떤 접점으로 묶일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활동 분야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과감하게 만나지 않은 쌍둥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질문을 던진 예술가였다.

카프카가 문장으로 그려낸 불안과 고립을, 실레는 선과 색으로 표현했다.






작년 이맘때 카프카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는 사건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족들의 반응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쓸모로 평가받는 존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카프카는 늘 질문한다.

'인간은 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타인의 기준 앞에서 끊임없이 심판받는가.'


이 질문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SNS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에곤 실레의 작품과 글을 함께 읽는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아름답다기보다 불편하다. 삐뚤어진 신체, 불안정한 시선, 앙상한 손가락들.

하지만 그 낯섦이야말로 인간의 진짜 모습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레는 인간의 외형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균열을 그렸다. 카프카 역시 인간 내면의 균열을 문장으로 드러냈다. 둘 다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끝까지 응시했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단순히 작품집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변신」뿐 아니라 카프카의 단편들과 실레의 시와 편지, 그리고 두 사람을 연결하는 해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간중간 삽입된 인터미션은 두 사람의 시대적 배경과 검열,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작품들이 탄생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카프카 입문서라기보다는 이미 카프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에곤 실레를 그림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또 다른 문을 열어준다.

한 권의 책 안에서 문학과 미술이 서로를 설명하고, 서로를 완성하는 드문 독서 경험이었다.






카프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두 명의 예술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이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불안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만나지않은쌍둥이 #프란츠카프카 #에곤실레

#카프카 #변신 #아버지에게드리는편지

#세계문화전집 #고전읽기 #예술과문학 #북리뷰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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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3 세트 - 전3권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모리스 로사비 외 지음, 미할 비란 외 엮음, 김석환 옮김 / 사계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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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의 역사를 넘어 '연결'의 역사를 읽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3 기념비적인 역사책 !!

미할 비란 & 김호동 외 지음/ 사계절 펴냄







1~3권을 관통하며 가장 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몽골 제국을 오해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에서 배운 몽골 역사는 늘 침략자였다. 칭기스 칸과 쿠빌라이 칸의 이름을 외우고, 고려 침략 횟수를 암기하고, 원나라와의 관계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침략자, 정복자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거대한 기마군단이 초원을 달리며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3》는 정복 이후에 남겨진 관계의 지도를 펼쳐서 보여준다. 누가 세계를 지배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세계를 연결했는가를 묻는 책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다. 나의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몽골 제국은 늘 '침략'이었고, 콜럼버스는 '신대륙 발견'이었다.

한쪽은 파괴와 정복의 이미지였고, 다른 한쪽은 탐험과 개척의 이미지였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배워왔기에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왜 몽골은 침략자이고 콜럼버스는 발견자인가. 누구의 시선으로 역사를 배워왔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콜럼버스의 '발견'은 누군가에게는 침략의 시작이었다. 반대로 몽골 제국의 '침략'은 역설적으로 세계를 연결하는 거대한 교류망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몽골 제국의 폭력과 학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콜럼버스가 열어젖힌 세계사의 의미가 모두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단순한 단어들 속에 역사를 가둬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침략, 발견, 정복, 개척의 키워드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단어들조차 사실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었다.






이 시리즈는 그간 내가 배워온 세계사의 빈틈을 메우며 이 방대한 작업은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질문은 "몽골 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두 번째 질문은 "몽골 제국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세 번째 질문은 "몽골 제국은 각 지역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받아들여졌는가."

세 권을 모두 관통하고 나면 어느 순간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몽골 제국은 거대한 이야기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1권 정치사는 가장 익숙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을 통합한 테무진이 칭기스 칸이 되는 과정, 정복 전쟁, 후계 체제의 확립, 쿠빌라이 칸의 원나라 건설과 네 개 칸국의 형성, 그리고 분열과 쇠퇴까지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따라간다.





하지만 이 책은 흔한 영웅 서사를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차갑고 객관적이다. 칭기스 칸은 전설적인 영웅도 아니고, 잔혹한 폭군도 아니다. 그는 탁월한 조직가이자 현실주의자이며, 필요하다면 기존의 제도를 과감히 빌려와 활용하는 정치적 설계자였다.

우리는 흔히 몽골이 독창적인 제국 운영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중국의 행정 시스템을 차용했고, 페르시아의 관료들을 활용했으며, 각 지역의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했다. 제국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출신도, 종교도, 민족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몽골은 자신들의 문화를 강요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실용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이 제국은 이전의 어떤 제국과도 달랐다.

로마처럼 동일한 시민 정체성을 만들려 하지도 않았고, 중국 왕조처럼 하나의 문화권으로 동화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존재들을 연결하고 관리하는 거대한 플랫폼에 가까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2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권이 정복의 역사였다면, 2권은 연결의 역사다. 2권은 몽골 제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바라본다.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로망처럼 연결되기 시작했고, 사람과 물건뿐 아니라 사상과 기술, 종교와 지식까지 이동하기 시작했다.





흔히 이를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라고 부른다. 몽골의 평화라는 뜻이다. 물론 이 평화는 현대적 의미의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폭력과 학살 위에 구축된 질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서가 만들어낸 변화는 엄청났다. 이전에는 수 세대에 걸쳐 천천히 이동하던 지식과 기술들이 폭발적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종이 제조 기술, 화약, 인쇄술, 천문학, 의학 지식 등이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상인들은 이전보다 더 먼 거리를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종교인과 학자들 역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개념은 '칭기스의 교환(The Chinggis Exchange)'이다.







콜럼버스의 교환이 신대륙 발견 이후 대륙 간 생물과 물자의 이동을 의미한다면, 칭기스의 교환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유라시아 전체를 하나의 교류권으로 만들었던 현상을 설명한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세계화의 원형이 이미 이 시대에 등장한 셈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비행기로 연결된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몽골 제국은 이미 13세기에 그것의 원시적 형태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이 책은 몽골을 지나치게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몽골이 가져온 것은 번영만이 아니었다. 교류가 빨라진 만큼 질병 역시 빠르게 확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흑사병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길은 지식만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난도 함께 이동시켰다. 연결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도 닮았다!!!



그리고 마지막 3권에 이르면 시선은 다시 한번 전환된다. 이번에는 몽골 제국을 중심에 놓지 않는다. 대신 주변부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 거대한 제국과 관계를 맺었는지 살펴본다. 바로 이 지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역사를 중심의 시선으로만 배우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3권은 몽골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구조 안에서 고려, 러시아, 중동, 인도, 동남아시아, 유럽, 캅카스 지역이 각각 어떤 경험을 했는지 보여준다. 같은 제국이었지만 모두에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침략자였고, 누군가에게는 협력자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특히 3권의 2장 「몽골 제국 속의 고려」 에서 특히 고려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흥미롭다. 이 장을 집필한 이는 서양의 몽골 제국 연구자인 데이비드 로빈슨이다. 한국사를 오랫동안 한국인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서술해온 상황에서, 외부 연구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고려라는 점 자체가 신선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려를 단순히 몽골 침략의 피해자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장은 고려를 몽골 제국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인 하나의 구성원으로 조명한다. 동시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던 불편한 역사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특히 고려 여성의 공녀 문제를 다루는 대목은 쉽게 넘길 수 없었다. 흔히 우리는 '공녀'라는 단어를 하나의 역사 용어처럼 익숙하게 배워왔지만, 이 책은 그 단어 뒤에 감춰진 인간의 삶을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여성들은 외교적 교환의 대상이자 제국의 필요에 따라 선발되고 이동되는 존재였으며, 때로는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 거래 가능한 재화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역사 교과서 속 짧은 몇 줄로 지나쳤던 사건이 사실은 수많은 개인의 삶과 존엄이 훼손된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외부 연구자의 시선이 기존의 익숙한 민족주의적 서술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피해와 저항의 역사만을 강조하기보다, 고려가 몽골 제국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편입되고 협력하며 때로는 이용당했는지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아마 이것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아닐까? 특정 국가의 역사로 몽골 제국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연결된 세계사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

책은 그 불편한 진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방대한 역사서가 결국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는 책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이동, 글로벌 공급망, 문화의 혼종성, 정보의 확산, 팬데믹의 전파, 정체성의 재편까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대부분의 현상들이 이미 800년 전 몽골의 시대에 실험되고 있었다. 이 시리즈는 거대한 정복 전쟁의 기록도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문명사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로 다른 언어와 종교, 민족과 문화가 어떻게 충돌하고 섞이고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연결의 역사다.





방대한 분량의 책을 덮고 나면 더 이상 몽골 제국을 하나의 국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였고, 하나의 시스템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탄생시킨 거대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는 늘 선과 악으로 구분되기를 거부한다.


긴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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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45
조지 오웰 지음, 이혜인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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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1984 』 디스토피아의 고전!!! 고전을 읽는 이유!!

조지 오웰 지음 | 푸른숲주니어 (징검다리 클래식 45)




감시당하는 사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스스로 감시하게 되는 인간 아닐까?



최근 《1984》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푸른숲의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를 다시 보게 되었다. 고전은 늘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해설도 넘쳐나니 굳이 또 읽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든다는 것!!! 그런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은 고전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특히 이번 《1984》는 그 진가가 더욱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기존에 여러 판본을 갖고 있어서 번역 비교의 재미도 쏠쏠하다.

조지 오웰의 문장은 원래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장된 문장이 아니라 담담한 문장으로 공포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그런데 푸른숲의 번역은 현대성을 강조한다는 명목으로 원문의 무게를 어렵게 끌고 가지도 않는다. 청소년 독자를 비롯해 처음 《1984》를 접하는 독자들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문장의 호흡이 조정된 번역이랄까?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1984》가 독재 국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빅 브라더를 거대한 권력자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오웰이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감시 그 자체보다 인간이 감시에 익숙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SNS 시대를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 같다.

부모를 고발하는 아이들,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말, 끊임없이 수정되는 진실, 그리고 숫자조차 권력이 결정하는 세계.

그 모든 장면은 낯설지 않았다.



SNS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고,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 데이터로 축적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억압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다수의 의견에 맞춰 생각을 수정하는 모습은 오히려 《1984》보다 더 정교해진 현실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부분은 '새말'이다.



"새말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것임을 모르겠는가?"






언어가 줄어들면 생각도 줄어든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짧은 자극적인 단어로 규정하고, 긴 토론 대신 몇 개의 키워드로 상대를 판단하는 오늘날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다.



《1984》는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라기보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존재인지 소설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신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고전으로 회귀하는지도 모른다.



#1984 #조지오웰 #푸른숲주니어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고전읽기 #디스토피아소설 #빅브라더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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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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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나이 든 여자들을 위하여 『피날레_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





수전 구바 저/정지인 역 | 북하우스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나이 든 여자를 위하여. 그리고 나이 들고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우리를 위하여.

문장의 의미가 깊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를 오래 머물게 했던 문장이다. #다락방의미친여자#여전히미쳐있는 을 울면서 읽었던 나에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서문부터 장렬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노년을 삶의 한 시기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든 미뤄야 하는 사건처럼 여긴다. 나이 드는 것은 실패한 몸의 증거처럼 취급되고,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능력이 되어버린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수전 구바는 이 책의 첫 장부터 그 통념을 부순다. 암 생존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문장들. 현대 의학은 그녀에게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예언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니, 단순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쓰고, 사유하고, 질문하고 있다. ( 감사하기까지 한 !!!! )




이 책의 매력은 아홉 명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다. 수전 구바는 이들을 단순한 위인전의 주인공처럼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늙어가는 몸과 함께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갔는지 보여준다.

1부의 연인들에서는 조지 엘리엇, 콜레트, 조지아 오키프를 만난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끝내 자기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여성들이다. 특히 조지 엘리엇이 빅토리아 시대의 편견을 뚫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과정이나, 콜레트가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나가는 모습이 언급된다.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는 노년에도 자신의 감각을 멈추지 않으며 예술가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2부의 이단아들은 더욱 흥미롭다. 이자크 디네센, 메리앤 무어, 루이즈 부르주아는 사회가 정한 정상성의 바깥에서 살아간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변부에 머무르는 대신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해냈다. 특히 루이즈 부르주아의 삶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창작의 불꽃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분이다.

3부의 제목인 현자들은 더욱 마음에 남는다. 메리 루 윌리엄스, 궨덜린 브룩스, 캐서린 더넘은 오랜 세월 자신이 걸어온 길을 공동체와 나누는 존재들이다. 단지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사람들이다. 자신이 살아낸 시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수전 구바가 이들을 특별한 천재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도 늙어가는 몸 앞에서 흔들리고, 상실을 겪고, 불안을 마주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창조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년의 롤모델이 이렇게 많았는데, 왜 우리는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이 책은 잊혀졌던 끝까지 살아내는 지성에 관한 여성들의 계보를 복원하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인상 깊었던 것은 손택이 말하는 노년의 이중 잣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흔히 남성의 노년은 어떤가? 흔히 원숙함, 권위, 연륜이라는 언어로 포장된다. 하지만 여성의 노년은 어떤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거나,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되거나, 더 이상 욕망과 창조의 주체가 아닌 사람처럼 여겨진다.

같은 시간의 흐름조차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는 것이다.


수전 구바는 바로 오래된 불균형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더욱 좋았던 것은 노년을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늙어감에는 상실이 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그런데도 그 상실만으로 노년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책 속에서 만나는 노년기의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뜨겁게 다가온다.








1장의 문장 '노년의 시간은 더 빨라진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무한한 자원처럼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부터 시간은 유한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더 소중해진다.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위해 살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고,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노년은 시간이 사라지는 시기가 아니라 시간의 밀도가 높아지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우리는 노년을 준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경제적 준비에 대해서는 수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어떻게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 창조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수전 구바는 그 질문에 아주 강렬한 대답을 내놓는다.

피날레는 끝이 아니라고!!!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완성해가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너무나 뜨거운 책이다.




노년을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가능성의 언어로 다시 쓰게 만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라, 나이 든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수전 구바는 그 빈자리를 아주 강렬하게 채워준다.

이 책은 앞으로의 삶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책의 제목 『피날레』 우리는 흔히 피날레를 끝이라고 생각한다. 막이 내리고, 박수가 끝나고,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순간!!!

하지만 수전 구바가 말하는 피날레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가장 농축된 시간이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경험과 상처, 실패와 기쁨, 지성과 감각이 한데 모여 마침내 자기만의 목소리를 완성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피날레는 가장 화려한 절정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내가 남자인 척하는 일에 서툴고 젊은 데 서툴다면 이제부턴 그냥 늙은 여자인 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누구라도 늙은 여자를 발명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p473




















젊은 시절에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바쁘고, 중년에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기 쉽다. 하지만 노년은 오히려 그 많은 것들을 하나둘 덜어내며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으며 피날레라는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끝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자기 삶의 저자가 되는 마지막 창조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드는 일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의 피날레를 너무 일찍 포기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수전 구바는 말한다. 삶의 마지막 장은 부록이 아니라고. 누군가의 여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본편이라고.



얼마 후면 쇼가 우리 없이도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매일같이 그들에게 가르쳐주었다 p 508


마지막 문단을 읽었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는걸까? 누구에게나 노화는 곧 닥칠 일 혹은 언제가 도래할 미래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내가 모든 것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끝내 사라질 존재이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노년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삶을 더욱 선명하게 살아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수전 구바는 두려움 대신 기개를 이야기한다. 상실 대신 창조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 하나를 건넨다.



당신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끝까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책의 제목은 이토록 강렬하다.

피날레는 끝이 아니라,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남는 마지막 예술이다.



#피날레 #수전구바 #북하우스 #다락방의미친여자

#여성주의독서 #노년의창조성 #노년에대하여

#노년의시간 #끝까지강하고자유로운나

#에세이추천 #인문교양 #여성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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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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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낯선 채로도 다정할 수 있을까 『이웃집의 탐스러움』

정기현 저 | 북다




"서울은 빛도 사납구나."

소설 초반의 문장이 오래 남는다.

부모로부터 집을 양도받은 주인공. 그리고 옆집에 사는 기은과 준영과의 첫 만남.

읽다 보니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싶은 순간들이 없지 않다. 물론 나는 작가를 전혀 모르고 읽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시선과 감정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누군가의 실제 경험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이 소설은 거창한 줄거리보다는 삶의 작은 결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웃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아파트 현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가장 낯선 사람들. 서로의 출퇴근 시간 정도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인간은 그 낯섦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 궁금해지고, 친해지고 싶어지고, 때로는 조금 수상해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이야기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짧은 인사, 사소한 안부, 우연히 나누는 대화처럼 아주 작은 접촉들이 서서히 관계를 만든다.

읽는 내내 떠오른 질문도 있었다.




우리는 왜 이웃이라는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근데 반전인것은 시계를 갖다주려고 초읹종을 띵동 울리는 옆집 사람이라??

나는 사양하고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며 계속 웃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명 다정함을 이야기하는데 어딘가 수상하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한 끗만 잘못 흘러도 경계심으로 바뀌는 오늘날의 현실을 너무 정확하게 짚어낸다.




요즘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한다. 택배 기사님도 비대면 배송을 하는 시대인데,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관계를 만들려는 사람은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은 다정함과 부담스러움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밉지 않다.




오히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거절하면서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고립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이 소설은 그 모순된 감정을 꽤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생각해보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역설 같다.

그래서 제목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탐스럽다'라는 단어는 보통 과일이나 꽃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에 붙인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대상을 이웃에게 가져온다.

탐스럽다는 것은 소유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다.

조금 더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소설이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인은 끝내 타인으로 남는다.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되지도 않는다. 마지막은 다소 충격인데.... 



그래서 제목처럼 낯설고 마지막은 다소 반전으로 남는다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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