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없다
리사 주얼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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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주얼 저 / 장여정 역 | 북레시피 (펴냄)







저자 이름이 낯익어서 찾아보니 《엿보는 마을》, 《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 》은 출간 당시 인기였던 나도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영국 런던 출생의 심리 스릴러 작가 리사 주얼은 1999년 데뷔작 이후 주로 인간관계의 균열과 불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을 쓰신 분이다. 그녀의 돋보이는 지점은 특히 가까운 관계 속에 숨어 있는 공포와 심리적 위화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며 이번 신간에서도 작가 본인의 장점을 발휘하신 듯싶다.






소설은 독자를 불편한 자리로 끌고 간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듣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안전하기만 한 일일까. 그리고 우리는 왜 위험한 사람에게서조차 눈을 떼지 못하는 걸까. 이 소설은 바로 그 불안한 호기심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꽤 우연처럼 보인다. 인기 트루 크라임 팟캐스터 알릭스 서머는 마흔다섯 번째 생일 밤, 단골 펍에서 자신과 생일이 같은 여자 조시 페어를 만난다. ('버스데이 트윈’이라 불린다고 한다) 어쩌면 장난 같은 인연. 하지만 조시는 이상할 정도로 알릭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삶을 팟캐스트로 만들어달라고 제안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점점 평범한 인생담에서 벗어나 기묘하고 섬뜩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알릭스는 조시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고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인연!!!!

조시와 알릭스

심지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같다??







읽다 보면 가장 무서운 건 살인이나 범죄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사실은 가장 낯선 존재일 수 있다는 공포를 건드린다.

조시는 처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 말투도, 분위기도,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방식도 불편하다. 그런데도 독자는 알릭스와 함께 계속 그녀를 듣게 된다. 마치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이미 위험한 함정이라는 듯이.






특히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트루 크라임 콘텐츠’ 시대의 불안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삶을 콘텐츠로 만드는 순간, 어디까지가 기록이고 어디부터가 침범일까. 알릭스 역시 조시를 경계하면서도 “좋은 이야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 욕망이 결국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지 알지 못한 채로.

















작가는 원래도 관계의 균열을 굉장히 잘 쓰는 작가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인간 심리의 찝찝함을 좀 더 세밀하게 서술한다. 『그때 내 딸이 사라졌다』에서는 상실과 집착을, 『위층 가족』에서는 가족이라는 공간의 불안을, 내가 읽은 『엿보는 마을』에서는 시선과 질투를 파고들었다면, 『진실은 없다』에서는 사람은 정말 타인을 알 수 있는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를 묻는 듯싶다.






운명 같았어요. 하늘의 계시 같았죠. 그게 나한텐 터닝 포인트였어요. 이제 내 관점에서 내 목소리로 내가 아는 진실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P116






무엇보다 무서운 건 조시가 완전히 비현실적인 괴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어쩌면 우리가 현실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사람 같다. 그래서 더 오싹하다. 리사 주얼은 늘 인간 내면의 균열을 과장된 공포보다 일상의 틈에서 끌어내는 데 능한 작가다. 평범한 대화, 집 안의 공기,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 같은 것들이 서서히 독자를 조여온다.






우리는 정말 진실을 원하는가 아니면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하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소설







#진실은없다 #리사주얼 #심리스릴러 #트루크라임

#스릴러소설 #북레시피 #심리공포 #미스터리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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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밀도 - 대화가 깊어지고 관계가 단단해지는 소통의 기술 7
김윤나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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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김윤나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오히려 질문이 위로가 되다니 궁금한 마음에 펼친 책이다. 우리는 보통 위로란 다정한 말이나 공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괜찮아질 거라는 암시, 시간이 약이라는 식의 표현을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해 온 위로들이 때로는 상대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사람을 가장 깊이 움직이는 건,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려 애쓰며 건네는 질문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부분 궁금해서 저자 이력을 찾아봤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대화법이나 화술 강의만으로는 나오기 어렵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제로 오랫동안 기업 강연과 코칭 현장에서 사람들의 말과 관계를 다뤄온 분이었다. 삼성, LG 등 다양한 기업에서 소통 강연을 진행했고, 말마음 연구소를 운영하며 일대일 코칭도 이어왔다고 한다. 또한 『말 그릇』 시리즈로 이미 유명하신 분이다.





진짜 공감은 모르는 상태에서 알아가는 것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니!

심지어 대학 때 교육 심리학 수업에서 들은 칼 로저스 선생님의 이론 아닌가!

질문의 중요성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제대로 질문하기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질문은 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확인하거나 판단하거나, 때로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던져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질문은 기술 이전에 태도를 말한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이해하려는 마음, 재빨리 조언하기보다 조금 더 머물러 들어보려는 자세 말이다. 읽다 보면 “좋은 질문”이란 결국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문은 존중의 표현이다 p47


저자는 상황별 질문의 예시를 통해 실제 관계 속에서 써먹을 수 있는 내용을 서술한다. 사람들이 어디에서 상처받고, 왜 대화가 어긋나는지를 오래 관찰한 사람의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문제를 ‘말 부족’이 아니라 질문의 실종에서 찾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늘 말은 많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향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듣기보다 설명하고, 이해하기보다 조언하려 한다는 부분에서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끝난 뒤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최근 질문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저자는 책에서 수많은 질문법을 소개하는데 그중 나는 GROW 질문법을 메모하며 읽었다. 단순히 질문을 많이 던지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스스로 들여다보도록 돕는 대화의 흐름이라 볼 수 있다. 먼저 Goal 단계에서는 “당신은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는다. 이어 Reality 단계에서는 현재의 감정과 현실을 함께 바라본다. 그리고 Options 단계에서는 섣부른 조언 대신 스스로 가능한 선택지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마지막으로 단계에서는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직접 선택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질문은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고 마음을 열게 한다고 하니 당장 써먹어 보자~~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건 최근 내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가족, 친구, 동료처럼 오래 안다고 생각하는 사이일수록 우리는 질문을 생략한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바로 그 익숙함 속에서 관계가 메말라 간다고 말한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 “요즘 가장 힘든 건 뭐야?” 같은 작은 질문 하나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도 있다고. 이 부분 공감한다.

질문 이전에 필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진짜 호기심과 기다림이다.






읽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위로의 말을 너무 많이 연습해왔지만, 정작 누군가를 궁금해하는 방법은 오래 잊고 살아온 건 아닐까.

추천합니다






#질문의밀도 #김윤나 #소통의기술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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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말그릇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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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롯 -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
박인성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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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성 저 | 나비클럽







독서인구는 갈수록 줄어든다는데 오히려,

쓰고자( 단순 책 출간 욕구) 하는 사람은 많아서 작가들이 넘쳐나는 시대







이 책은 과연 동시대 사람들은 어떤 감정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소비하는 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작법서나 글쓰기 책을 자주 접하는 나로서는 단순한 이론서보다 훨씬 실전적인 자극을 주는 경험이었다.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지 기승전결 플롯 위주의 책과 사뭇 달랐다. 책을 읽으며 지금 청소년들이 어떤 불안과 욕망 속에 살아가는지를 먼저 떠올려보게 된다.

이 책의 핵심은 ‘마스터 플롯’이다. 저자는 인간이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이야기의 원형이 있으며, 시대마다 그것이 변주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를 고전 신화나 문학 이론에만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웹소설의 회귀·빙의·환생, 서바이벌 프로그램, 밈 문화, 소년만화, 일본 호러까지 모두 연결해 읽는다. 덕분에 독자는 “아, 요즘 독자들이 왜 이런 서사를 좋아하는지”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청소년 소설 창작의 관점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2장과 8장, 그리고 9장이었다.

저자는 오늘날의 회귀·빙의·환생 서사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존엄이 무너진 세계에서 다시 명예를 회복하려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은 입시, 외모, 계급, SNS 평가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청소년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패한 현재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지금의 청소년 서사에서도 반복되는 감정이다. 결국 회귀물의 판타지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다시 인정받고 싶은 욕망 아닐까?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5장 「호러 장르와 공포의 사회학」이다. 그동안 장르 소설과 공포 영화들을 재미 위주로만 접해왔다면, 이 장은 그 익숙한 공포를 전혀 다른 층위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무심히 지나쳤던 설정과 장면들이 사실은 사회의 불안과 고립, 공동체 붕괴의 감각을 압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익숙했던 작품들이 저자의 해석을 통과하며 낯선 얼굴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했다. 읽다 보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공포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가 숨기고 있는 감정을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는 장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또한 ‘숏텀 피드백 시대’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짧고 강한 자극, 빠른 보상, 태그처럼 소비되는 장르 감각 속에서 독자들은 긴 호흡보다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기대한다. 지금 시대의 독자들이 왜 그렇게 읽게 되었는지 사회적 환경과 연결해 설명한다.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는 고민하게 된다. 빠르게 읽히는 이야기와 오래 남는 이야기는 어떻게 내 키보드 위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최근 쓰다 막힌 부분이 있어 꽤 고민 중이라서...






4장의 ‘한과 유대’ 분석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 서사의 핵심 정서를 ‘한’으로, 일본 서사의 핵심 정서를 ‘유대’로 설명하는데, 이를 각각 오징어 게임과 귀멸의 칼날로 비교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청소년 소설 역시 결국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친구 관계, 가족,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이 책은 현대인들이 왜 공동체에 목말라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를 두려워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장르 서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웹소설, 만화, 밈, 예능 프로그램 같은 대중문화 안에서 동시대의 감정을 읽어 내려 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창작자로서 용기를 얻게 된다. 청소년 소설 역시 교훈보다, 지금 시대 청소년들의 수치심과 욕망, 소속감과 고립감을 얼마나 정확히 포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책은 꽤 많은 작품과 개념을 빠르게 오간다. 그래서 특정 장르를 잘 모르면 약간 벅차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창작 노트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이 설정을 청소년 서사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예를 들어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학교 경쟁 구조를 결합하거나, 밈 문화 속 정체성 놀이를 성장 서사와 연결하는 식이다.



책은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는 동시에 지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안한가를 묻는다.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청소년 소설의 영역, 어쩌면 바로 그 불안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청소년 문학을 사랑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창작자는 결국 동시대 사람들이 아직 제대로 말하지 못한 감정을 이야기로 써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마스터플롯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한다. 그런데 그 비유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방울을 다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세계를 바라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 역시 그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 그리고 글쓰기는 그 낯선 자기 인식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글쓰기에서 나 역시 그 질문을 붙들어보고 싶다. 길고 외롭고 때로는 버거운 과정이 되겠지만, 끝내 도전해 보고 싶다.


#마스터플롯 #박인성 #나비클럽 #문화비평

#서사분석 #청소년문학 #청소년소설 #장르문학

#웹소설 #스토리텔링 #창작공부 #글쓰기책 #서브컬처

#호러문학 #소년만화 #회귀물 #콘텐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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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를 읽다
권선희 외 지음 / 득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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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호 (지음)/ 득수 (펴냄)




안토니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는 너무 익숙한 음악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중 하나가 아닐까?


봄의 새소리, 여름의 폭풍, 가을의 수확, 겨울의 떨림까지. 우리는 오래전부터 사계를 계절의 배경음처럼 들어왔다. 그런데 책은 음악을 듣는 대신, 음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책이 마냥 음악을 해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음악이 각자의 내면에서 어떻게 다른 이야기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같은 음악을 듣고도 누군가는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상실을, 또 누군가는 견디는 시간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 책은 비발디를 읽는 동시에, 저마다 자기 자신의 계절을 읽게 만드는 책!



이 책은 사계를 그저 아름다운 음악만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계절을 통과하며 느낄수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우리 삶과 밀착시킨 느낌이다. 소설가 4명, 시인 3명의 앤솔러지, 작가들은 계절을 단순히 풍경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계절 속에 숨어 있던 인간의 감정과 균열, 오래 붙들고 있던 상처와 시간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여기서 봄은 마냥 찬란하지 않고, 겨울은 끝이 아니다. 어떤 계절은 관계 속에서 무너지고, 어떤 계절은 끝내 버티며, 또 어떤 계절은 다음 계절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듯이...



특히 김서령의 「내 봄 어디 갔어」는 봄이라는 계절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린다. “니네 집…… 진짜 깬다.”라는 짧은 문장이 주는 여운. 소설에서 나는 준호 성격이 속시원해서 좋았다. 누군가에게 봄은 시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도대체 결혼이란 뭔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반면 권선희의 시 「강」은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도 흐르기를 멈추지 않는 생의 감각을 붙든다. “강이 몸을 푸는 봄까지 살아볼 작정”이라는 문장은 겨울의 끝에서 겨우 희망을 건져 올리는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바다가 따라 젖었지

사랑이란 젖은 음표들이 부는 계절이 되었지 p39



책을 덮으며 다시 〈사계〉를 듣고 싶다. 익숙했던 선율 사이로 누군가의 외로움, 흔들리는 관계, 끝내 살아내려는 마음이 스며든다. 어쩌면 이 책은 음악을 문장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음악 속에 숨어 있던 인간의 시간을 꺼내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 계절마다 소설 한 편과 시 세 편이 그리고 비발디 사계 음악에 대한 해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황종권 시인의 사랑 시가 마음에 남는다.












먼저 여기 소개된 시인들은 대중적으로 아주 널리 알려진 스타 시인이라기보다는, 한국 문단과 지역 문학·시단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중견/기성 시인이신 듯싶다. 이 책의 구성이 더 흥미로운 이유이기도 하다. 아주 유명한 이름값만 모은 앤솔러지라기보다 “각자의 결이 뚜렷한 작가들”을 모아서 비발디의 〈사계〉를 서로 다르게 번역해낸 프로젝트가 아닐까?


오히려 그래서 더 문예지 같은 감성과 발견의 재미가 있었다. 이 시리즈는 꾸준히 출간된다고 알고 있다. 기대된다.



#비발디를읽다 #득수읽다시리즈 #사계 #비발디

#클래식문학 #음악과문학 #시와소설 #책추천 #감성리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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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 6가지 우회적 성찰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 외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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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화원









리뷰를 쓰기 앞서 벅찬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찾다가 내 부족한 언어의 한계가 부끄러울 뿐이다.

슬라보예 지젝 선생님 (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의 표현으로 나는 위대한 지성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과 동시대를 살다니, 이건 내 삶의 큰 자랑이자 신의 축복이다.






“폭력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시작된다"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과연 우리는 폭력이 일어나는 곳을 모르는지, 지젝이 말하는 폭력의 구조란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펼친 책이다. 무려 15년 만에 새 옷을 입고 태어난 지젝 사유의 결정판!!






전쟁과 혐오, 정치적 양극화, 온라인 집단 린치와 불안이 일상이 된 폭력의 시대에 지젝은 단순히 누가 폭력을 행사했는지 묻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와 언어,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유지하는 시스템 자체를 의심한다. 부제 우회적 성찰이라는 표현처럼, 그는 폭력을 정면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때 오히려 더 본질적인 장면들이 드러나지 않는가?



원서로 말하면 무려 2008년에 쓴 이 책은 18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현재적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더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혐오와 공포, 분노와 불안이 끝없이 증폭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젝은 이미 오래전 이 시대의 균열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특히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폭력이라는 현상을 통해 현대 사회 전체를 해부하려는 지젝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1부에서 지젝은 우리가 흔히 폭력이라고 부르는 사건들 뒤에 숨어 있는 구조를 이야기한다. 그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을 구분한다. 누군가를 때리고 죽이는 장면은 비난받지만, 경쟁과 빈곤, 차별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시스템은 오히려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 부분 읽다가 문득, 우리 사회의 끝없는 생존 경쟁이 떠올랐다. 청년 세대의 불안, 혐오 정치, 타인의 실패를 관망하는 문화는 어떤가? 이는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결과는 아닌지?






책 초반에 2006년 8월 6일 영국의 자위 마라톤이 언급된다. 찾아보니 이는 실제로 열린 퍼포먼스성 행사라고 한다. 참가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위를 하며 성에 대한 금기와 보수적 규범에 저항한다는 취지의 이벤트였다. 일부는 성 건강 캠페인이나 기부 행사 성격도 띠고 있었다고 한다.

지젝이 이 사례를 가져오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선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현대 사회가 겉으로는 점점 더 자유롭고 쾌락에 개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쾌락조차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규율 안에서 이용된다고 본다. 자유로운 쾌락조차 이벤트화·상품화되면서 결국 시스템 안에 흡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지젝의 핵심 개념인 ‘잉여 향유’와도 연결된다. 인간은 단순히 즐거움을 원하는 게 아니라, “즐겨야 한다"라는 압박 속에서 피로와 강박을 느낀다. SNS 시대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행복과 자유, 자기표현을 끊임없이 전시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지치곤 한다.

지젝은 자위 마라톤 사례를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역설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사용한다. 가장 사적인 행위조차 공적 퍼포먼스와 소비의 대상으로 변하는 시대.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해방”이라고 느끼지만 동시에 또 다른 규율 안으로 들어간다는 지점을 포착한 것이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이유는, 지젝이 폭력을 꼭 피 흘리는 장면에서만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욕망과 쾌락을 조직하는 방식 자체에도 보이지 않는 폭력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슬라보예 지젝을 사랑하고 그의 저작을 읽을 때마다 살아 있는 역동성을 느끼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이론만 설파하는 철학자가 아니다. 조르주 바타유, 테오도어 아도르노, 알랭 바디우 같은 사상가들뿐 아니라 영화감독, 대중문화, 사건과 뉴스까지 끌어와 끊임없이 충돌시키고 뒤집는다. 때로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때로는 그들의 사유 위에 자신의 철학을 덧입히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느낌.

읽다가 이해가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 부분을 캡처해 검색하고, 언급된 철학자와 영화,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사유의 세계가 열린다. 하나의 문장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질문으로 끝없이 번져나가는 쾌감은 읽어본 분들만 아실 듯.



2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두려워하라! 」에서는 지젝 특유의 불안한 인간관이 드러난다. 그는 타인을 단순히 이해와 공감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서로에게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언어의 폭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말이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이미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sns 시대를 살며 우리는 타인을 쉽게 조롱하고 낙인찍지 않는가? 누군가는 단지 말 몇 마디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삭제된다. 폭력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언어 속에도 깊게 스며 있다는 사실... 섬뜩하다.






3부에서는 테러와 분노의 구조를 분석한다. 여기서 지젝은 단순히 “폭력은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어떤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폭발 직전의 상태로 내몰리는지를 묻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는 묻지 마 범죄나 극단적 분노 범죄가 떠올랐다. 물론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지젝은 사건 자체만 소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 배경의 구조를 보라고 요구하는데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가해자의 악마성에 집착하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씁쓸하다. 한 사람을 악마화하면 우리는 안도할 수 있다. 문제는 저 사람 개인에게만 있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을 악마화할수록, 경쟁과 고립, 혐오와 불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는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된다. 지젝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외면해온 세계의 균열 속에서 서서히 자라난다는 사실!


















4부와 5부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관용’에 대한 비판이었다. 우리는 관용을 좋은 가치라고 믿지만, 지젝은 현대 사회의 관용 담론이 사실은 정치적 문제를 문화 차이 문제로 축소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의 문화화”라는 표현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놀랍도록 잘 들어맞는다. 노동, 계급,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서로의 취향과 정체성만 이야기하는 사회. 갈등의 원인을 구조가 아니라 개인 감수성 문제로 돌리는 풍경은 너무 익숙하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읽었던 《잉여 향유》《지젝 비판적 독해》 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젝은 늘 인간 욕망의 모순을 파헤친다. 사람들은 평등과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혐오와 배제를 통해 쾌감을 얻는 아이러니! 그는 불편한 욕망을 끝까지 직시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서 지젝은 발터 벤야민을 끌어오며 기존 질서를 완전히 뒤흔드는 폭력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순한 복수도 아니고 국가 권력의 폭력도 아니다. 오히려 기존 질서 자체를 중단시키는 어떤 순간에 가깝다. 이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왜 사람들이 체제 전체를 향해 분노하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혐오 정치,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분노, 온라인 린치, 불평등과 불안의 시대 속에서 지젝의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지금은 폭력이 너무 노골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폭력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세계를 “정상”이라고 믿고 살아가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18년이 지난 지금 더 현재성을 지닌다.


폭력은 갑자기 터지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긴 세계의 구조 속에서 천천히 자라난다는 것. 내게 지젝은 지금 시대를 읽는 가장 독보적인 렌즈이자 좌표다.





지젝은 묻는다.

정말 우리가 봐야 할 폭력은 저기 바깥에만 있는가. 아니면 이미 우리의 언어와 일상, 욕망 속에도 깊게 스며들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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