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의 칼날은 문학동네 플레이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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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자객의 칼날은】







오현종 장편소설/ 문학동네 (펴냄)




누구를 그렇게도 죽이고 싶었을까?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감칠맛나는 문장으로 너무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누구의 이야기라고 갈라놓을 수 없었다”는 문장은 이 소설의 중심주제로 보인다. 이야기는 특정 인물의 소유물이 되기를 거부한다. 웃음과 울음이 닮아 있고, 악인과 선인의 얼굴이 닮아 있으며, 밤과 낮의 경계가 가르마처럼 정확히 나뉘지 않는 세계. 이 소설에서 이야기는 언제나 겹치고, 스며들고, 서로를 닮아간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살길이 된다는 문장은 이 세계의 냉혹한 윤리를 압축한다. 누군가 잃어야 누군가는 얻는다. 바닥에 머리를 눕히는 짐승과, 차가운 몸으로 알을 품는 새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이 비유가 잔인할 수 있지만 정확하다고 본다.

이 소설에서 생존은 언제나 다른 생의 대가 위에 놓인다.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기에 악은 외부에 있지 않다.





너역시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지

네 핏줄은 환관이 되었고 주름진 얼굴은 네가 받았던 고통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어.

너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내다. 고통받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야 p158




요즘에도 이런 감칠맛 나는 문장이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었아라고 쓰면 너무 건방진가?

첨단과학 우주시대, 고스펙 작가들의 소설에 질린 나에게 소설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야기의 형식 역시 이 소설의 주제와 닮아 있다. 액자 밖과 안, 기록하는 자와 읽는 자, 전해 들은 이야기와 직접 겪은 이야기 사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는 액자 밖 사내의 얼굴에서 재상의 의붓아들의 얼굴을 겹쳐 보게 된다. 이 순간 깨달았다. 이 소설의 이야기가 한 인물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얼굴을 빌려 되풀이되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 읽고 나서도 이 이야기는 꿈이었는지, 기록이었는지, 누군가 지어낸 허구였는지 끝내 확정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건너오는 순간 이미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하다.



#장편소설 #모던복수활극 #복수의문장 #자객의칼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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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보는 세계사
최희성 엮음 / 아이템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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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최희성 엮음/ 아이템하우스 (펴냄)









화려한 도판이 눈에 띄는 책, 기존 역사책과 다른 점은 신화를 통해 역사를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왕조나 연대 중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믿고 싶어 했는지를 중심에 둔다. 신화는 늘 매력적이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본다. 첨단 과학 우주 시대를 살아가지만 여전히 신화는 귀하다. 좋은 자료가 되어, 데이터 베이스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게 한다. 신화!!!!!







헤브라이 신화에서의 추방과 계약, 북유럽 신화의 종말론적 세계관, 마야 달력의 순환적 시간관, 아프리카 부족 신화의 생명 탄생 서사는 모두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역사가 직선이었는지, 순환이었는지, 혹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임시 구조였는지 그 인식이 신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신화 중 하나다. 이 신화의 특징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국가가 처음 등장하며 맞닥뜨린 질문을 다룬다. 권력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인간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서사적 답변이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질서와 윤리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트 여신의 깃털은 정의가 감정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기준이 되기를 바랐던 사회의 소망을 드러낸다.






신화는 늘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없었던 질문을 맡아주는 게 아닐까...

흥미로웠던 몇 장면을 언급해 보면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둘러싼 이 일화는 북유럽 신화가 가진 독특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여기 신화에서 묠니르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오딘의 창이 번개처럼 날카로운 판단과 통찰을 상징한다면, 묠니르는 천둥처럼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힘, 곧 질서 유지의 최종 수단이다. 그래서 토르는 가장 인기 있는 신이었다. 그는 사유의 신이 아니라, 침입자를 당장 몰아내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망치가 사라졌다는 설정은 어떤가? 곧 세계의 방어막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묠니르 없는 아스가르드는 언제든 요툰헤임의 거인들에게 유린당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신화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책은 신화를 기존 서사 자체로 두지 않는다.






이런 신화를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두지 않고, 그 문명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묠니르는 신화 속 무기이기 이전에, 세계를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이기도 했으니...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왜 신화를 읽는가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신화가 생겼다. 신화는 세계가 왜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번개가 전기 방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번개가 신의 분노이거나 심판이라는 이야기를 갖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누가 보호자이고 누가 경계의 바깥에 있는지.

신화는 이 기준을 감정과 서사로 각인시키는 장치다.

신화에 대해 처음 입문하시는 분에게도 창작자에게도 유용한 책

무엇보다 아름다운 도판의 감성!!! 추천하고 싶다








#신화로보는세계사

#최희성

#아이템하우스

#역사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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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과 처형의 역사
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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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히라 나루미 (지음)/ AK 트리비아 시리즈







내 안의 그림자, 끔찍한 어둠을 만나게 해 주는 책이다.

낮에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한밤이면 나는 어김없이 전쟁사와 전쟁영화, 잔인한 폭력 장면을 몰아본다. 스텔스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도파민이 치솟는다. 스스로도 낯설 만큼의 반응이다. 이 모순을 나는 오래 외면해 왔다.







융이 말한 그림자는 개인의 성격 결함이나 억눌린 욕망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사회, 문화, 집단이 함께 만들어낸 무의식의 잔여물이다. 우리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밀어낸 감정들—폭력, 파괴, 지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돌아온다. 때로는 취향으로, 때로는 오락으로, 때로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융이 말한 그림자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집단에서 더 또렷하게 존재한다. 사회가 스스로를 문명화되었다고 믿을수록, 그 이면에는 억압되고 분리된 폭력성이 응축되기 마련이다.



좀 더 오래 고통을 주어 서서히 죽이는 장치!! 오래 지속되는 고통쉽게 끝나지 않는 생존이 최상의 기술이라고 한다.

고문과 처형 기구는 당대 권력이 인간의 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공포를 어떻게 체계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고문을 단순히 한때 지나간 야만의 흔적으로 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문 기구의 실재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그것을 전설로 치부하며 삭제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이런 기구를 상상했고, 믿었을까에 대해 질문한다.


고통은 죄를 증명하는 도구였고 공개 처형은 질서를 각인시키는 연극이었으며 신체 훼손은 공동체의 규범을 몸에 새기는 방식이었다.

융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회가 자기 내부의 불안을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마녀사냥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혼란, 통제 불가능성—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몸에 응축시켜 처리하는 권력자의 방식이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그림의 사용 방식이다. 그림은 자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구조를 이해시키기 위한 도해라는 점

이 책은 창작자에게 매우 위험하면서도 유익한 참고서다.

왜냐하면 고문과 처형을 소재로 삼을 때 흔히 빠지는 과잉 상징화나 잔혹성의 소비를 경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얼마나 끔찍한가 보다 왜 필요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고문은 캐릭터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시대의 무의식이 설계한 시스템으로 보인다.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집단 심리와 권력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고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이동했을 뿐

공개 처형은 사라졌지만, 비가시적인 감시와 제도적 폭력이 등장했고, 신체 훼손 대신 사회적 말살은 여전히 존재한다.

융의 말처럼, 그림자는 제거할 수 없다. 다만 인식할 수 있을 뿐!!!!


그러나 책은 인식을 강요하지 않고 다만 집요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외면한 것은 정말 과거일까

아니면 아직 말 걸지 못한 현재일까 책은 묻는다.



이 책 어떠신가요?

만나보고 싶으신 분 손!!!!! 들어보세요~~



창작자를 위한 시리즈로 도해가 풍부하다.

펼쳐보기도 힘들 만큼 잔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풍부한 그림, 그러나 선정적이지 않다





내가 한밤중에 전쟁 장면을 반복 재생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자기 이미지 뒤에 남겨진 그림자, 통제되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공포, 힘에 대한 은밀한 동경. 이 책은 그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정말 무관한가라고 ㅠㅠ

책은 단순히 인간의 어두운 취향을 자극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취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잔혹함을 소비하게 만들기보다, 소비하고 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다.




#고문과처형의역사 #융의그림자 #집단무의식 #폭력의구조 #문명의그림자

#고통의발명 #권력과신체 #보이지않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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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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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죽음으로 문학을 완성한 작가_ 다자이 오사무

문예출판사


다자이 오사무를 읽을 때마다 너무 아프다. 다자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울컥 올라오는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죽음으로써 문학을 완성했다.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죽음을 선택한 작가 앞에서,

감히 인간을 실격이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2026년의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좋은가...


첨단과학, 대우주시대, 실격당한 인간들의 시대가 왔다. 그들의 기준에서 나도 실격, 너도 실격이다. 거울 앞 얼굴 장면에서 얼굴이 기괴한 이유는 추해서가 아니라 끝내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사회에서 지워졌다는 뜻이다. 다자이는 죽음을 가볍게 만들고, 삶을 농담으로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살려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폐인이라는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다자이는 이미 자신의 붕괴를 사건이 아니라 일상으로 처리한다.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를 살려냈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한다. 그는 또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가능성 때문에 살려내는 일이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장 하나.

인간은 스스로를 실격시킬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을까. 반대로 타인의 삶을 실격이라 판단할 기준은 또 무엇인가!


문학사에는 스스로 삶을 떠남으로써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은 작가들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총을 들었고, 실비아 플라스는 가스를 택했으며, 버지니아 울프는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체사레 파베세는 “나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라는 메모를 남겼고,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의 육체를 문장의 일부처럼 사용해 죽음을 연출했다.


그들의 선택은 서로 다르지만, 죽음이 문학의 바깥에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그들은 죽음으로 도피하지 않았고, 죽음을 서사에서 분리하지도 않았다. 삶이 더 이상 문장으로 견뎌지지 않을 때, 그들은 마지막 문장을 몸으로 썼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지금도 불편하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삶을 끝까지 밀고 간 사람들이 남긴 언어는 독자들에게 질문이 되어 돌아온다.

‘죽음으로 문학을 완성했다’는 리뷰 부제는 문학을 칭찬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늘 작품보다 먼저 존재한다.


문학이 아무리 위대해도 한 사람의 삶을 소거할 권리는 없다. 다자이는 자신을 실격이라 불렀지만, 그를 읽는 나는 그 판결에 서명하지 않는다.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되, 그가 자신에게 내린 형량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겠다.


문학은 어디까지 인간의 고통을 요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아파야, 한 권의 책이 될 자격을 얻는가요?? 묻고 싶습니다


덧:

( 일부 독자들의 리뷰와 그들이 주고받은 댓글에서 너무 큰 충격 받은 일이 있었다. 내 의견을 차마 댓글로 쓰지도 못했는데 그때 그분들 말이, 이 소설은 미친놈 혼잣말하는 소설. 그보다 더 심한 말도 있었다 ㅠㅠ 너무 어둡고 절망적이라서 쳐다보기도 싫다며.... )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어두운 내면, 가장 더럽고 추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 진짜 내가 보인다고...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어둠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다자이오사무

#나의1월작가

#겨울의작가

#다섯번의자살시도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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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마음시 시인선 16
이정하 지음 / 마음시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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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정하 시집/ 마음사회 (펴냄)









너는 눈부시고 나는 눈물겨운 마음,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애절한 감성이 담긴 시집, 초판이 나왔을 무렵 젊은 시인은 누구를 그렇게 사랑했던 걸까?

사랑 좀 아는 나이가 따로 있을까 사랑은 여전히 모를 일이다.






과거의 명작이 다시 도착하는 이유는 뭘까? 시집뿐 아니라 소설도 과거로 회귀되는 느낌이다. 박완서 선생님이나 박경리 선생님의 위대한 한국문학이 다시 재출간되는 일, 양귀자의 『모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한 시대를 대표했던 작품들이 다시 독자의 손에 들리고 있다. 출판가에서는 이를 감정 회귀라고 부른다. 그리고 열렬히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마도 새롭게 반짝이는 이야기보다, 오랜 시간을 견디고 버텨온 시간의 힘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닐까? 첨단과학 AI의 시대, 클릭 몇 번이면 소설도 시도 만들어 낼 수 있다. AI가 사랑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시인의 시에서 간절히 원하는 그 혹은 그녀를 지금 여기 데려다줄 수 있다면... 그러나 AI가 아무리 진화한들 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니 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정하 시인이 다시 회자되어 온 것이다.







최근 신춘문예 당선작들 혹은 트렌디한 현대시를 읽으며 알 수 없는 괴리감.

현대시는 왜 그리 어려울까?


잘나고 똑똑한 고스펙 시인들이 첨단 과학을 녹여 어려운 시를 쓴다. 그들만의 축제, 독자 감성에 와닿지 않은 시. 어떤 시는 지나치게 영리하고,

어떤 시는 충분히 다듬어졌는지 의문이 남는다.

독자에게 닿기보다는, 시인들만의 언어로 닫혀 있는 느낌.






그에 비해 이정하의 시는 다르다. 어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숨기지 않아서 오래 남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확하고 똑똑해 보이려 애쓰지 않지만, 정직한 시어들이다.

AI의 시대에 다시 이정하를 읽는 일은 뒤로 물러나는 선택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시가 나의 우주에 무려 3권이나 도착했다.

감정의 언어를 다시 찾는 시대, 이런 현상은 단순한 복고 열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독자들은 자극보다 지속되는 감정을, 속도보다 깊이를 원한다. SNS의 짧은 문장과 압축된 정보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해 줄 언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오래 버티는 문장’을 찾는다. 그래서 이정하 시인....






시인만의 흐름 속에서 시는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개정판의 재출간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며 이 시대의 감정적 결핍을 정확히 짚는다. 한때 ‘사랑의 신화’처럼 읽혔던 시인의 시는, 지금의 독자에게는 오히려 더 솔직하게 다가온다. 그때 조심스레 다가왔다면 이번엔 깊은 확신으로 ~~


사랑은 보내는 자의 것이라는 제목에 엉엉 울고 말았다.








#이정하

#너는눈부시지만나는눈물겹다

#마음시회

#개정판

#1994년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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