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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지음 / 고블 / 2023년 10월
평점 :
김준녕 소설집/ 고블(펴냄)
소설보다 늘 작가의 말을 먼저 펼쳐읽는다. 호기심이 많다는 뜻이다.
이 분의 작가 후기는 늘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혹은 알지 못하는 작가 일상이지만, 소설을 쓰는 내내 겪었을 고뇌와 치열함, 그리고 이 사회의 비정함이 후기에도 녹아있다.
후기를 읽고 일주일을 덮어두었다가 주말에 다시 꺼내 읽었다. 꼭 잠근 수도꼭지가 무장해제되어버렸다. 그 편안하고 여유로운 주말 밤에 소설을 읽으며 질질 짠다면 누가 믿을까? 그것도 좋아하는 장르 SF를 읽으며 울다니...... 다음날 아침 눈이 퉁퉁 부어 외출을 할 수 없을 만큼.... 총 10편의 단편 모음, 과학동아와 같은 매거진에 수록되었던 작품도 있고 이번에 새로 쓰신 작품도 있었다.
단편이라 줄거리를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작품은 약간의 줄거리를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경매》우주방사선에 피폭 당안 친구 딸 상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팔아야 하는 남자가 있다. 왜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지 도저히 친구 부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 상아를 돌보며 그런 마음을 잊었을 것이다. 기억을 사고파는 미래, 기억이 돈이 되는 세상, 기억에도 저마다 가치가 달라서 어떤 기억은 비싸게 팔리고 어떤 기억은 싸구려가 되는 세상. 미래 사회 디스토피아 세계와 자본주의의 종말을 함께 서술한 소설.
경매라는 제목은 내게도 아픔이 있는 제목이다.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 자신의 기억을 특히, 상아에 대한 기억을 판다고 했을 때 심장이 저만치 쿵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문장에서 아마 울음이 터져 나온 것 같다.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울먹한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물론 나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억쯤? 은 팔 수 있겠지... 아니 그보다 더한 거라도 팔았을 거야. 그런데 그 기억이 하필 너에 대한 기억이라면 ......... 울지 않을 수 없다...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멸망하고 몇 명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는 세상. 민 대신에 달려나간 중국인 여자가 내내 잊히지 않는다. 그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작가는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독자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에...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나만 생각하고, 나만 위하는 삶이 아닌 가끔은 희생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로 점철된 디스토피아를 읽는 것보다 더 슬프고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팔이 닿지 못해 슬픈 짐승》 그래, 소설 속 준의 말처럼 안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빛보다 빠른 빚》죽어서도 빚을 갚아야 하는 세상, 죽을 수도 없는 미래, 빚이 있는 사람은 죽을 권리도 없었다. 첨단 과학은 빚진 자들을 골라내고 끊임없이 되살렸다. 우리 한국인들의 오랜 관습이자 습성, 부동산 투기를 비꼬는 작품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우주는 무한했지만, 토지는 유한했으니까 P59
작품 속에서 말한 0차원의 세계는 어디일까? 그런 세상이 존재하는 걸까?
경산, 시지, 하양, 칠곡, 성서, 팔공산, 대명동.... 낯익은 지명이 대거 등장하는 표제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매일 같은 트랙을 도는 0번 버스 이번엔 도무지 경유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그것은 누구의 선택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 환승이 필요한 걸까? 과거 SF에서 언급된 첨단 과학은 전부 현재가 되었다. 오히려 소설가들이 언급한 것보다 더 발전한 상태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작가가 말한 소설 속 미래는 언제쯤 우리의 현재가 될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그때 나는 세상에 없을 것이고, 저 우주 어딘가 내 기억이 떠돌아다니고 있을까? SF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 늘 관심 많고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프다..... 아무도 정답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에^^
작가인터뷰 같은 걸 해서 작가를 만날 일이 있다면, 궁금했던 많은 것을 더 묻고 싶지만, 속으로 꿀꺽 삼키기로......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