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과학 전문 기자인 룰루 밀러가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을 추적하다가 만나게 된 진실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밀러는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한 여자와 불장난같은 원나잇 관계를 가진다. 그녀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리고 그녀의 고백은 남자를 떠나게 한다. 밀러는 남자를 기다리지만, 모든 것은 끝났다. 

 

  그때 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조던은 어류 전문가로 수십 년에 걸쳐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을(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학자였다.

밀러가 그에게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쏟게 된 이유는 이 분류학자의 평생에 걸친 노고가 범상치 않아서였다. 콧수염을 기른 과학자 조던은 자신이 만든 어류 표본들을 첫번째로는 화재로 잃고, 두번째로는 지진으로 잃게 되는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는다. 그는 그 중차대하고 절망할 법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이 세계에서 질서를 세우려던 모든 시도를 다시 시작한다. 

  밀러가 그를 연구하고 캐보려는 의도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해낼 수 있는가. 밀러는 조던이 그처럼 명백하게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갔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한데, 뛰어난 업적으로 명성을 날렸고 수많은 상과 그를 기리는 지명과 건물과 거리까지 있는, 이제는 고인이 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추적하던 밀러는 그가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했고 그런 정책을 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고보니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많은 과학자와 학자들도 사실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단지 죽어서까지 유지된 조던의 명성이 반대 의견을 가진 그들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린시절 별에 심취했던 소년이었고, 후에는 식물이나 꽃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졌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어류를 포획해 연구하려고 대륙과 대양을 찾아다닌 열성적인 학자였다. 숨어있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던 그, 그런 그가 어째서 힘없고 약한 인간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강제 피임화를 서슴지 않고 자행했던 것일까. 

  그에게는 청년시절에 만난 아가시라는 스승이 있었고 그 스승이 처음 그에게 심어준 사상이 우생학이었다. 인류가 진보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약한 자, 타락한 자, 가난한 자, 범죄적인 인간이 절멸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판단이었다. 그들은 우생학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지상을 건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쓸모없는 인간들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행위가 변질되어가고 있음을 조던은 깨닫지 못했으므로 자신의 생각에 오점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스탠퍼드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 부인을 죽이는 데 일조한 것처럼도 보인다. 조던은 죽었고 제인의 죽음은 자연적인 사고사로 오래전에 판명이 났기에(조던이 앞장서서 살인이 아니라 자연적인 사고였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이제와 그 진실을 파헤칠 수는 없지만 룰루 밀러는 제인의 몸에서 검출된 독이 바로 조던이 물고기들을 쉽게 얻기 위해 사용한 독, 스트리크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룰루 밀러는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한 애나를 찾아가 그녀의 오래전 경험을 듣는다. 누가 애나에게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과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애나는 이웃들과 잘 지내고 있었고 오히려 메리라는 여자를 돌봐주는 일을 자진해서 하고 있었다. 메리는 애나를 의지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밀러는 깨닫는다. 이 지구상에 생명을 배열하는 사다리는 없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상상으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연에는 위도 아래도 없으며 더 나은 것도 더 나쁜 것도 없다는 것도. 그래서 자연은 늘 혼돈, 그 자체이다. 그런데 혼돈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위계를 설정해 자연의 지도를 작성해서 아래에 위치한 것들을 하찮게 여기고 없애려한다면 오히려 자연 전체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눈에 너무나 사소하고 하찮은 존재가 사실은 어느 순간에 어떤 존재를 구원할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생태학자 조너선 밸컴은 "물고기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색을 보며, 특정한 기억 과제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시력을 보이고, 도구를 사용하며, 바흐의 음악과 블루스를 구별할 줄 안다고 한"다.

  이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도 많은데, 민들레 법칙이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다. 민들레는 잡초이고 거둬내야 할 풀 같지만, 이 풀은 여러 방면에서 약제로 사용되며 염색제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인간의 눈으로 자연을 질서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자연은 우리가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충분히 알고 있는 게 아니므로, 혼돈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룰루 밀러는 혼돈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서 다른 편으로는 더 많은 길이 열려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루루 밀러의 이 역작은 결론에서는 조금 의외였다. 자신은 양성애자라는 것, 자신은 이제 그레이스라는 여자의 남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이 정해놓은 배열도는 잘못된 것이니까. 누가 남자만 남편노릇을 하라고 했나. 그건 인간이 정한 빤한 관습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토록 대담하고 거대한 사상의 끝에 양성애자라니... 그건 그냥 본인의 사적인(너무나 자연스럽다치고) 삶이지 않은가. 밀러를 응원하지만 자신을 옹호하기 위한 거창한 글쓰기로 가라앉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냉소적인 사람인가, 싶다.

  

  아, 이 책의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 속의 모든 동물을 고기로 한정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이 우위에 있고 저들을 경멸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것. 나는 전적으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바닷속에 물고기는 너무나 많고 비교불가능할 정도의 종들이 각자 달리 존재하고 있다. 인간과 비슷한 종도 있고 포유류 동물과 흡사한 종도 있으며 육지 위의 생명들과 아주 닮은 생명도 있다. 그러니 물고기라는 한 단어로 그들을 마구잡이로 통칭해 부르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1980년대에 분류학자들이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또 내가 늘 느끼던 것이었는데 이 책에서 읽으니 너무나 반갑고 다시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페이지를 잊어버려 내 말로 쓴다.

  인간은 동물이 인간보다 더 능력을 발휘하는 일에는 동물의 '본능'이라고 말하고,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할 때는 당연히 동물이니까 그런 거라고 말한다. 정말 내 식대로 저렴하게 썼다. 나는 가까이에서 동물들의 총명한 머리와 현명한 태도를 직접 본 적이 많기 때문에 절실하게 느낀다.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하지 않다. 인간이 동물보다 윤리적으로는 훨씬 더 열등하다는 걸 인간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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