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책을 읽는 일, 독후 감상문 쓰는 일.

  늘 갈구하는데 상대는 아예 나를 모르는 짝사랑. 문학이라는 세계는 아득히 멀고 어렵고 높은 벽이 둘러친 저 너머의 대상이고 애달픈 짝사랑의 상대다. 끈질기게 사로잡으면서도 절대 틈을 보이지 않는 교활하고 음험한 대상. 


  <돈키호테>, <나의 투쟁>(칼 오베 크나우스  고르), 이상우의 <프리즘>을 대강 읽다가 그만 두고 임현에게로 갔다. 못 읽은 이 책들은 다음에 다시 읽어야 될 목록이 되어 책꽂이로 후진. 이상우의 "중추완월" 은 덧붙일 말이 많다. 절제되면서도 이미지가 끝까지 남는 출중한 작품이었다. 문학동네 신인상을 만장일치로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끔찍한 스토리인데도 지독히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다.  

 임현을 택한 것은 윤리와 도덕을 주 모티프로 다룬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서였다. 엄정하면서도 모호한 소재를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를 하고 페이지를 열었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작가만의 의식이 복잡하면서도 미묘하게 얽혀있어 읽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모호함이 지나쳐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의 작품도 있었다. '엿보는 손'이 특히 그랬다. 

  10개의 단편 모두 생각해 볼 거리이지만 집중하기가 자꾸 귀찮아지고 맥이 빠진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슬럼프라는 이름으로 건너뛰고 싶다. 그래서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고두'만 분석.


차례

가능한 세계

고두

엿보는 손

좋은 사람

무언가의 끝

그 개와 같은 말

거기에 있어

말하는 사람

불가능한 세계



고두


뜻: 공경하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조아림.

  

  두 번의 고두가 등장한다. 두 번 다 연주가 하는 행위다. 물론 공경하는 뜻으로 연주가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이렇게 극복한다. 그녀가 고등학생 시절 그녀는 '나'라는 화자에게 이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완전한 복수를 했다. 그리고 십 수년 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가해자가 된 상황에서 피해자 부모들에게 무릎을 꿇고 몇 번의 따귀를 맞으면서 비극적인 상황을 견디어낸다.


 

1. 

 작가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중심 이야기를 보여주기 전에 그 이야기가 어떻게 내게서 시작되어질지, 작은 삽화나 인물을 데려와 먼저 의미화를 심어준다.

 여기서 '나'는 화자이면서 주인공인데, 나는 내 아버지를 먼저 언급한다. 아버지는 군대에서 사고를 당해 유공자가 된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속으로 부끄럽고 화가 나고 민망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만큼 윤리나 체면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버지처럼 하지 않는 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이기적이고 무지한 행동들로 각성된 나는 단순히 부끄러움을 알아야겠다는, 선하고 의식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알고 이타적인 행동이 사실은 훗날에 내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누구에겐가 말하는 투로 계속 이야기를 해나간다. 말을 듣고 있는 상대는 학생인 것 같은데 화자가 선생이라고 하니 그가 가르쳤던 학생일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어째서 화자는 청자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궁금해진다. 


2.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공립여자고등학교로 임용되었을 무렵, 나는 연주를 알게 된다. 그녀는 문제가 많은 학생이었고 안 좋은 소문을 달고 다니던 아이였다. 소문이란 알고보면 부풀려진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주인공을 비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연주의 짝은 유복한 가정의 모범적인 여학생이다. 두 여자아이는 대조적인 캐릭터이다. 물론 연주는 대부분의 주인공처럼 가난한 집안의 막돼먹은 불량한 여학생이다. 일단 겉으로는.


3.

  우연히 식당에서 일하는 연주를 만난 나는 그녀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게 되고 그동안 선생들조차 그녀에 대해 불량한 이야기들을 나눈 것에 대해 미안해진다. 나는 연주를 데려다주고 그녀와 둘만의 비밀스런 교감이 오간다. 그리고 공교로운 상황에서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러나 그때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단다."

아버지를 통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거라고 자신했던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걸 알기 때문에. 


4.

  그리고 공교로운 상황에서 나는 그녀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거든. 그러나 그때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단다."아버지를 통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거라고 자신했던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 그걸 알기 때문에.(여기까지가 작품에서는 챕터3이지만 내용상으로는 4에 해당)

나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상황으로는 물리칠 수 없는 일 같았다. 하지만.... 연주는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다.


5.

  수많은 이들이 있는 교무실에 연주가 나타나 내게 무릎을 꿇고 죄송하다고,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연주의 배가 불러있다. 이 사건으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간신히 연고 없는 사립고등학교로 이직한다.


6. 

  나의 반에서 회장이었던 아이가 불량한 아이들에게 떠밀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죽는다. 그리고 연주라고 믿어지는 한 여자가 나타나 사망한 아이의 부모들에게 무릎을 꿇고 뺨을 몇 번이나 맞는다. 나는 그녀를 몰래 뒤따라가고 너를(지금 말하고 있는 상대라고 독자는 느낄 것이다, 근데 또 아니다. 작가는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 너라는 존재를 만나려고 한다. "너에게 사과하기 위해서. 나도 용서받고 싶어서."

  구치소 앞에서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를 아이를 기다리던 나는 끝내 그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출소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러나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사내아이 하나가 거기 오래 남아 있더구나." 

그 애에게 나는 "마치 그게 너인 것처럼 아버지 행세를 하려 했단다. 다를 것도 없었지. 누군가는 이 아이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니?"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야 화자가 너라고 말하는 너가 실제의 너는 아니며 너와 흡사한 불행한 다른 남자아이이며 나는 이 아이에게조차 사과를 해야한다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마지막 문단의 마지막 몇 문장이다. 


  아버지의 무지와 치졸한 떳떳함이 싫었던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는 한 가엾고 불행한 여학생과의 관계에서 부끄러운 짓을 했으며 그럼에도 잘 살고 있던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닫는다. '나라고 뭐 달랐"는가를, 생판 모르는 삐딱하고 불량스런 소년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아버지-나-유복한 여학생-연주-폭력에 죽은 우리반 회장-가해자인 비행소년의 어머니인 연주-구치소 앞에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소년-나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내 부끄러움이 얼마나 자기모순적인 부끄러움인지를 끊임없이 나와, 독자에게 각성시키고,구치소 앞의 소년은 내 아들과 여러면에서 동일시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아버지와 한 소년이 작품의 앞 뒤에서 중요한 배경이자 의미가 되어준다. 그리고 연주는 나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의 희생자이기도 하고 폭로자이기도 하다. 


  쓰고 나서 보니 이 작품이 정말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 아버지의 짧은 이야기가 중요한 키이고 나 또한 그 열쇠 구멍 너머의 이기적이고 졸렬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 그런데 부끄러운 생각과 행동을 남모르게 하고서는 떳떳한 척 연기를 하며 자신과 타인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나 할까. 작금의 사태를 보면 자신이 하는 연기가 연기가 아니라 진짜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서글픔을 넘어 분노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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