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월기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6년 10월
이 책 띠지에 쓰인 '60여 년 동안 일본 교과서에 수록된' 이라는 구절에 호기심이 동했다. 도대체 얼마나 지고의 윤리와 삶의 핍진성을 띠었기에 한 작품이 교과서에 60 년 간 실릴 수 있을까.
'산월기'는 자신의 생을 뒤돌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한탄했을 법한 회오를 품고 있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경구가 실로 우리의 생을 표현하기에는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것은 생의 유한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느냐일 것이다. 길고 짧은 시간은 이미 정해진 시간이라 인간으로선 불능이고 그런 와중에도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는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산월기'의 이징은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하고 끝내 맹수 호랑이가 되고 만다.
맹수라니, 사람이 맹수가 되었다고?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으로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며 상처를 주고 그러다 외모까지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려 결국 호랑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까는 왜 이런 운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애써 남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다, 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거의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와 어울리며 절차탁마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다. 내가 옥수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다."
위 글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조금 생각나게 한다. 속으로는 자신을 대단히 고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낼 자신은 없고 속인들을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세상과 섞이지 못해 외롭고 괴로웠던 그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들 주인공들은 전부 나와 한통속인 인간들이다. ㅠㅠ
이 산월기는 아주 짧은 단편이다. 그러나 무게로 치자면 대단히 무거운 작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읽으면 누구나 깨닫게 되고 말 테니까. 몇 페이지 읽으면서부터 나는 필사를 한 번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구성은 '중국의 고담'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이 9편, '식민지 조선의 풍경'아래 묶인 3편해서 모두 12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중 공자와 그의 제자인 자로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조선에서 작가가 직접 겪은 듯한 '범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도 좋았다. 조선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탓인지 경성을 고향처럼, 그러면서도 잘 아는 이국의 도시처럼 말하는 듯한 이중적인 뉘앙스가 특이했다.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어려서부터 이미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성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특히 '순사가 있는 풍경'을 읽으면 일본 학생인 그가 조선인이면서 일제에 충성해야하는 순사에 대한 고뇌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게 사뭇 놀라웠다. 어릴 때에는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텐데 말이다. 이런 천재적이고 양심적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는 33세에 기관지 천식으로 요절했다고 한다.ㅠㅠ
다른 단편들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산월기 하나만으로 충분해서라기보다 독후감을 쓰는 일이 별로 재미있지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