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문예 출판사.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법은 아니었지만 발각만 되면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형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13쪽)

  전체주의 국가, 당이 모든 조직과 국민을 온전히 지배하는 나라에서 윈스턴은 기록국의 공무원이다. 현재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그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과거의 모든 기록을 찾아내 삭제하고 다시 조작하는 일을 그는 매일 해야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조작을 했어도 그것에 대해 의문이나 불합리성을 느끼면 안된다. 자신이 조작을 한 것에 대해 당의 어떤 의도를 의심해서도 안되며, 자신이 삭제한 과거에 실재했던 것을 완전히 잊어야한다. 이것은 기억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는 혼란스러운, 어려운 일에 틀림없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원들에게는 '이중사고'라는 당의 방법론에 자신을 맞추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중사고'는 자신이 조작해야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조작하되, 자신이 조작한 것을 믿어야하는 사고를 말한다. 

  그런 그가 일기를 쓴다. 그는 어떤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실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막연하지만 분명히 자신이 그로 인해 파멸하리라는 예감을 갖는다. 일기는 사적인 것이고 그는 오직 공적으로만 국가와 사회에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 충동은 그를 놓아주지 않고 그는 몇 년 전부터 유난히 끌리던 오브라이언과 만나게 되기를 원하기까지 한다. 오브라이언은 웬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만 같다. 텔레스크린이 사무실과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데도 그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다. 24시간 자기를, 당원 모두를 감시하는 스크린 한곁에서 교묘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의 파멸은 이렇게 그의 일기장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일기를 쓰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부터 이미 그는 당의 사상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반역하고 있었다. 당은 사적인 생활과 마음조차도 범죄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무모한 그에게 지나치게 생동적인 줄리아가 다가온다. 그는 어디에나 깔린 감시망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 지역에서 줄리아와 밀회를 갖는다. 그는 곧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의 2층에 오래되었지만 혁명 전의 분위기를 간직한 방을 얻어 그녀와 밀회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용기있게 오브라이언을 찾아간다. 지하조직단의 일원이 되고자하는 열렬한 마음에 그들은 맹세를 하고 단원이 된다. 그러나 이 거대하고 치밀한 당의 감시망과 그물망은 그들의 숨소리조차도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간과한 것이고, 오브라이언의 정체를 완전히 오해하고 만 것이다. 

  밀회를 나누던 그들은 체포되고 애정성(법무부쯤)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심문에 그들의 정신과 육체는 완전히 파괴된다. 그들은 파멸되는 것이다.

  오브라이언은 '이중사고'를 완전히 체득한 인간이며 당을 자신과 한 몸처럼 여기는 괴물이었다. 윈스턴은 그의 지휘 아래 이어지는 수많은 심문과 고문으로 완전히 넋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오브라이언의 로봇이 된다. 그는 끝내 오브라이언에 철저히 예속되어 당의 빅 브라더, 대형을 사랑하고 믿으며 죽어간다. 완전한 디스토피아가 구현된 세계에서 윈스턴은 잠시 발작을 일으켰던 수많은 바퀴 중 한 바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했던 줄리아를 배신하고 줄리아 또한 그를 배신한다. 맞고 모욕을 당하고 뼈가 부러지고 전기고문을 당할 때만 해도 그는 줄리아를 거명하지 않았다. 그녀도 비록 심문과 고문을 당하고 있겠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줄리아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혼자만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러나 101호실에 들어서서 자신에게 씌워질 철망상자를 보자 그는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 철망 안에는 윈스턴이 극도로 무서워하는 쥐가, 너무 커서 까맣기보다 갈색인 쥐가 들어있었다. 그는 쥐만큼은 견딜 수 없었다. 공포에 질린 그가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자기 형벌을 대신 받아야 할 꼭 '한' 사람이, 그와 쥐 사이에 밀어 넣을 수 있는 '한' 몸뚱이가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그는 열에 들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줄리아한테 그러세요! 줄리아한테! 내가 아녜요! 줄리아예요! 그여자한테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 여자 얼굴을 찢고 뼈다귀까지 추려요. 내가 아녜요! 줄리야예요! 내가 아녜요!""


  몇 년인지 몇 달인지 며칠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날들을 고문 당하고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머리가 벗겨져 대머리가 되고 뼈가 어긋난 것처럼 틀어지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정신은 멍해져 한가지 생각에 집중할 수 없다. 그가 모든 것을 놓고 오브라이언의 로봇이 되었을 때 그는 석방된다. 그리고 그는 바보처럼 살이 찌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매일을 술로 보낸다. 웨이터가 다가와 그의 술잔이 비어있으면 따라준다. 그의 술값은 아주 싸게 치러진다. 

  '3월, 어느 구질구질하게 쌀쌀한 날, 공원에서'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는 손이 얼고 추위로 눈물을 흘리면서 급히 걷다가 10미터도 안 떨어진 거리에 그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가 좀 추하게 변해 있어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알은체도 하지 않고 서로 지나쳤다. 그런 다음 그는 돌아서서 별다른 흥분도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아무런 위험도 없고 아무도 그들한테 관심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를 피하려는 듯 풀밭을 비스듬히 걷더니 다시 생각한 듯 그와 나란히 걸었다. 그들은 곧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 숲을 지났다.( ..........) "그런 일이 닥치면 그렇게 돼 버려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줄리아도 그를 배반했고 그처럼 그녀도 이제 넋이 빠진 인간 이하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텔레스크린에서 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깨어지는 듯, 비웃는 듯한 선정적인 곡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우거진 밤나무 아래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네."


  그의 앞에는 죽음만이 남아있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무장한 간수가 나타난다.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힌다."

"그는 이제 달리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애정성에 돌아가 모든 걸 용서받고 그의 영혼을 눈처럼 깨끗이 한 것이다. (.............) 술내 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모든 것은 잘되었다. 싸움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게 의무요 권리인 전체주의 국가에서 한 인간은 당을 위해 소모품이 되고 수많은 바퀴 중 하나의 바퀴로써 굴러가야 될 뿐이다. 지배층은 국민을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위해, 아무 사고도 할 수 없도록 가난과 무지가 계속 되도록 내버려두고 가끔 당근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서 정권을 유지한다. 가난하고 무지한 국민은 지배계층의 탄탄한 토대가 된다. 조지오웰은 이 점을 마지막에 온전히 이해시킨다. 


  부록 '신어의 원리'는 읽다가 그만 두었다. 머리가 좀 아팠다. 다음에 읽을 기회는 없을 테지만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으므로 이만 독후감으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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