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이 소설을 무슨 장르라고 해야 할까. SF라기엔 과학적인 논리로 시작되는 소설이 아니니까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엽기나 공상소설이라기엔 또 너무나 실제적으로 느껴져서 그도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한데 실제적이라니, 내가 이런 현장을 본 적이 있나? 물론, 분명 없다. 그런데도 작가의 냉철하고 분명한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정말 그런 시대가 금방 도래할 것 같고 지구 어디선가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다. 그만큼 이 작품의 무대와 서사는 공상임에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없다.  책을 읽어나갈 때의 끔찍함과 참혹함이 남의 일 같지 않고 지금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니까 말이다.  

  쓰레기 하치장, 매일 실려나가고 버려지고 부려지고 있을 쓰레기들. 우리는 매일 그 쓰레기들을 양산해내고, 쓰레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존재한다. 그리고 쓰레기는 단순히 사용이 끝난 물건들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인간 말종, 인간 쓰레기, 어디에도 소용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이 무섭고 참혹한 이유다. 인간이 정말 쓰레기로 버려지고 재활용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과학과 의술이 첨단에 도달한 세계는, 그러나 민주적인 나라가 아니다. 최고위층이 지배자 계급이 되어 영원을 지향하며 의학의 도움으로 길고 긴 생을 구가한다. 그들에게는 쓰레기가 버려지는 땅을 볼 필요도 그럴 의향도 없다. 가장 높은 산 속, 요새 같은 영역이 그들의 땅이고 그들은 거기에서 산 아래 세계를 다스린다. 

  산 아래에는 민간인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나름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들의 자유와 삶은 유한하여 노쇠해 생산가치 없는 인간으로 판명나면 쓰레기로 처리된다. 

  그리고 정말 재활용인간이 되어 민간에 위탁되어 노예처럼 부려지는 노인들이 있다. 생산력이 없는 노인은 아무렇게나 민간에 의해 쓰여지고 학대를 받다 그마저도 어려워지면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 산에 묻혀지거나 소각되어 비누나 초가 된다. 그야말로 효율성이 최대의 가치가 된 사회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결국 그 어떤 시대보다 가장 야만적이고 독재적인 국가, 신분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은 그 참혹함을 딛고 살아보려고 발버둥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런 세상에서조차 살려고 노력한다. 최고위층의 애완생물이 되어 몇 십 년을 성장호르몬 억제제를 맞으며 아이로 살아온 진과 이 세계의 공무수행 인간을 낳기 위해 강간을 당해 아이를 강제 출산했던 수, 둘은 재활용 심사장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만난다. 

  이 디스토피아 세상은 수많은 노인들을 쓰레기로 분류하고 내다버렸다. 그들은 쓰레기 산에 적재되고 소각장에서 태워지며 약품이 끓는 곳에서 액체가 되었다. 한쪽 팔이 잘린 진과 늙어서 더는 재활용품으로도 분류될 수 없는 수가 그곳에서 만난다. 쓰레기산 아래에서 쓰레기로 연명한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 세상을 나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 한다. 회색빛 세상에 여명이 밝아오는 것 같은 결말... 그래도 마지막이 희망이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정말 도래할지도 모를 이야기를 읽으며 왠지 지금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기시감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이 책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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