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장강명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리얼리즘에 반할 정도로 구체적인 사실들을 나열하지 않는다. 다른 작가들이 세네 문장을 쓸 것을 그는 한 문장으로 끝낸다. 그래서 묘사가 짧고 선명하다. 또 독자를 고려해 전후사정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처음 몇 페이지는 어떤 서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한참 지나야 깨닫게 된다. 

  이 작품 '그믐'은 어느 소설보다 그런 작가의 문체가 두드러진다. 너무 간결하다보니 장편이고 서사가 단순하지 않은데도 페이지가 얇다.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중요한 가지들만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정원같다. 

  또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의 대화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그 대화 속에서 '우주의 알'이라던가 학창시절 학교폭력이 드러난다. 상황묘사로 사건을 전개하기보다 겹따옴표를 치지 않은 둘의 대화나 따옴표를 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이나 혼잣말로 사건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알려준다. 정통 소설에서 한 장면, 한 에피소드에 소용되던 묘사들을 아예 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체, 새로운 스타일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갑작스런 대화나 상황 전개로 서사와 인물에 대해 깜깜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두 번 읽었다. 그랬더니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확연하고 서사가 굉장히 간결하게 처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처음부터 작품을 이렇게 기획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작품을 디자인이 아주 잘 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소설이 기획되었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다른 작가들이 자신이 지어낸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많은 면에서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정통 소설에서는 개연성을 중시해 독자가 수긍하고 그 분위기에 빠져들도록 많은 배경과 상황 묘사를 하고 작가 자신의 내적인 설명을 계속 붙여간다. 하나 이 '그믐'은 그런 수고를 하지 않고 가지치기를 많이 하고 결과적인 부분만을 보여주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정을 등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정에서도 감정적이고 지난한 시간은 생략하고 현재 상황에서 인물들의 행동이나 대화로 그것들을 압축해 드러내준다. 그림으로 치자면 중요한 선과 뚜렷한 색만 입힌 회화같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의도에 대해서보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어떤 자료들을 참고했고 누구에게서 도움을 받았는지를 주로 밝히는데 지면을 거의 할애하고 있다. 또 그 뒤의 수상소감(20회 문학동네작가상)에서도 자신의 작가로서의 내적인 고투에 대해서보다 가장 신랄하고 절박한 한 가지 문제를 먼저 언급한다. "먹고 사는 수단, 돈 버는 방법으로서의 소설쓰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로 소감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가 전업 작가의 삶에 일치함을 선언한다.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습니다."라고. 

  장강명의 세 번째 소설과 에세이를 읽고(곧 택배가 도착할 것이다) 독후감을 쓸 때에 나는 또 그의 어떤 패턴에 놀라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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