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이 책 표지 안쪽에 쓰인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기면, 1999년에 태어나 가나가와현에서 자랐다, 2019년 데뷔작인 <엄마>로 56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20년 33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사상 최연소로 수상했다..... 이런 구절들이 짧게 나열되어 있다. 그러니까 작가 우사미 린은 만 20세 전에 작가가 되었고 쓰는 것마다 수상작이 되고 있으며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갈 사람이다. 
  참 대단한 일이고 대단한 작가이지만, 이 작품이 23살의 작가로써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고는 믿지만, 그리고 연예인이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시되는 현재에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믿지만, 나는 그렇게 열렬한 마음으로 한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가지는 않았다. 밑줄도 그었지만(책 읽을 때의 습관일 뿐이다) 오래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내 안에 깔려 있었다.  
  작가가 젊다는 것은 한편으로 엄청난 재산이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만 잘 해도 시의성 있는 젊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 작가와 너무나 멀리 있다. 그래서 나는 예선 언니가 선물해준 따끈한 젊은 작품을 그저 얼른 읽어치웠다.
  그래도 작품 얘기를 해보면,
  그룹에 속한 우에노 마사키라는 남자가수를 쫓고 좇는, 평범한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질 수 없던 한 여자가 마사키를 본 순간 자신이 좇아야 할 목적이 생긴 다. 화자인 나는 그의 팬이 되고 그를 모니터링하며 그의 앨범과 사진을 사고 SNS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 방은 마사키의 물건들로 쌓이고 마사키는 나의 최애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의 최애인 마사키가 한 여자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얼마 안 있어 팀은 해체되고 나의 최애였던 마사키는 연예계를 완전히 은퇴한다. 나는 어느 날, 그의 집을 찾아나서고 어느 맨션, 그의 집쯤으로 여겨지는 집에서 한 여자가 나와 이불을 터는 것을 목격할 뿐이다. 

  "그냥 평범한 맨션이었다. 이름은 확인할 수 없는데 분명 인터넷에서 본 건물이다. 딱히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그저 멈춰 서서 그곳을 바라봤다.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갑자기 오른쪽 윗집의 커튼이 젖혀지더니 끽끽 소리를 내며 베란다 창문이 열렸다. 쇼트커트 여자가 빨래를 품에 안고 비틀거리며 나와 난간에 걸쳐놓고 숨을 내쉬었다. 
  눈이 마주칠 뻔해 시선을 피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척 걷기 시작해 서서히 걸음을 빨리했고 마지막에는 뛰었다. 어느 집이든, 그 여자가 누구든 상관없다. 설령 그 맨션에 최애가 살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를 명확하게 아프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안고 있던 빨래였다. 내 방에 있는 엄청난 양의 파일과 사진, CD,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수많은 것들보다 셔츠 단 한 장이, 겨우 양말 한 켤레가 한 사람의 현재를 느끼게 한다. 은퇴한 최애의 현재를 앞으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이젠 쫓아다닐 수 없다. 아이돌이 아니게 된 그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 최애는 인간이 됐다.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이 질문을 줄곧 회피했다. 회피하면서 계속 그 질문에 끌려다녔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이 저 맨션 밖으로 보일 리 없다.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때 그 노려보는 듯한 눈빛은 리포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최애와 그 여자 이외의 모든 인간을 향했다."(128~129쪽), 참고로 이 책은 132페이지의 경장편이다. 

 막상 필사를 하고 보니 참 잘 썼다. 젊고 어린 화자의 마음이, 한 여자아이가 서있다가  서서히 걷다가 마지막에는 뛰는 모습이, 그 정황이 너무 잘 보인다. 내가 지레 지나치게 젊은 작가를 얕잡아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어떤 글에도 그 작품만의 고유한 빛과 무늬는 살아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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