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력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올해 이상문학상은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이 선정되었다. 이승우 작가라면 기본적으로 믿고 보는 작가이고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배울 점이 많아 기대했던 것 이상을 채워준다. 
  '마음의 부력'을 읽고 든 첫 생각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흔한 소재라는 것. 하지만 작가는 그토록 흔한, 형제를 둘러싼 어머니의 편애와 그 편애가 불러온 불편하고 수치스런 화자의 심리를 세세하게 풀어내면서 어느덧 묵직한 사유의 세계로 끌고 간다. 엄중하면서도 비밀스런 설화가 작품 중반이 넘어가면 깔려지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전통과 보편성에 이야기는 합쳐지고 야곱과 에서,그들 한가운데 위치한 어머니 리브가가 현재의 화자와 어머니로 대치된다. 
  작가가 차용하는 성경 속 설화는 가족들에게 소외된 장자의 외로움과 무력함을 일차적으로 조명한 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차남에게로 포커스를 돌린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축복으로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차남은 그러나 어느 순간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다시 작가는 그렇게 사태를 만든 어머니의 마음에 조명을 비춘다. 그때 드러나는 리브가의 어쩔 수 없는 회한. 정말 어머니는 차남을 더 사랑해서 그랬던가, 라는 물음. 똑같은 자식인데 하나를 배제하고 다른 한 자식을 더 챙겨야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편했을까. 혹시 어머니가 한 자식을 편애할 때 그것은 어머니가 일부러 정한 것이 아니라 자식마다 지닌 태생적 인성에 기반을 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으리라는 가정이 부상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위치 때문에, 모성은 끈질기고 사라지지 않는 본성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리고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화자는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형을 대신해 어머니에게 돈을 부탁한다. 어머니가 장남에게 하지 못했던, 그래서 병이 되고 만 사랑과 배려를 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화자의 마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이 세밀하고 깊어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마음이 진실을 깨달아가는 그 과정을보여주는, 심리적 지도를 보여주는 묘사였다고.



  이상문학상이 언제나 그렇듯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들도 다 좋았는데 윤성희의 블랙홀은 특히나 그 형식이 새롭고 그러면서도 친근한 이야기들의 끝없는 나열이라 더 재미있었다. 소소한 작은 이야기들이 화장틀에서 화장지가 끊임없이 풀려나오듯, 만화경 속의 그림들이 끝없이 눈앞에 나타나듯, 독자는 어느덧 이야기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문단을 띄지 않은 페이지도 많았다. 그리고 그게 이 작품에는 완전히 맞아떨어졌다. 윤성희라는 작가의 매력을 보게 되었고 소설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환타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멋진 작품이다.


 

 박형서의 97의 세계는 말세를 향해가는(언제나 사람들은 말세야, 말세.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 지구상의 어느 마지막 순간 직전에 일어날 이야기같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그때 누구를 구하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지진이 날 때, 불이 났을 때, 서로 도와야 할 때, 위험에 빠진 이를 구해야 할 때, 이 소설은 우리에게 미리 각성하라고 주문한다. 우리 각자는 어느 한 순간 특별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장은진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게 읽혔다. 그녀의 눈동자와 분위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데, 작가의 이 지나치게 느리고 찬찬한 문장들은 특별한 사건없이 사라진 그녀를 독자에게 데려오기 위한 일종의 지연작전처럼 보였다. 왜 화자는 자꾸 그녀의 눈빛과 가을에 그토록 골몰하는가. 그건 내가 그녀와 아무 관계도 맺지 않았는데도,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특별히 사랑했던 과거와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진실인가를 말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일반적인 연인관계가 아닌, 루마니아 소설을 함께 읽고 나누었던, 특별하고 비밀스러워서 그런 일이 그녀와 나 사이에 정말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혹시 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실제 존재하기나 했었나, 하는 스스로의 의문 때문에 그토록 화자는 그녀의 눈빛을 자꾸 언급하는 것이다. 그녀는 짧은 가을날 그 바람 앞에 잠시 내 곁을 머물다 떠났으므로. 그리고 이젠 영원히 부재하기 때문에... 

  그러나 고양이는 하트 모양의 무늬를 등에 진 채 살고 있다. 혹한의 겨울을 이기고 주차장 자동차 밑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살고 있다. 그 고양이와 나는 닮아있다. 



  천운영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도 친숙하게 읽혔는데,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차례차례로 등장한다. 

 플롯을 보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위장 이혼, 나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 -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과 결혼, 나의 출생과 두 분의 결혼생활 -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생활, 어머니의 출생, 어머니의 결혼을 반대한 할아버지와 갈등과 화해(그 화해에는 아기인 내가 끼어있어서 가능) - 아버지와 어머니의 현재 - 어머니의 진실, 고백(나의 오해)

  이렇게 삼대에 걸친 이야기가 차례차례로 등장하는데, 흔히 옛날 얘기를 쓰면 올드하다, 상투적이다, 그런 이야기 없는 집안이 어디있냐, 이러는데 이런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작가는 자신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진실을 통해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가 된 이유와 어머니가 아버지의 아버지가 된 내력을 말해준다. 


한지수의 야심한 연극반은 지금 바로 읽을 예정이다. 미리 감상문을 올리기 위해 순서가 뒤집혔다. 읽은 다음에 또 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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