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 현암사 / 1997년 11월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로써 음악과 연극, 정치, 철학 등에 뛰어난 식견과 예술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베른하르트는 12년 간 파울과 만나며 정신적인 동반자로써 우정을 쌓는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이 자신의 삶을 살게 해준, 구원자같은 존재였다고 밝힌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을 논리적 글로써 유명 철학자가 된 아저씨 비트겐슈타인과 달리 행동으로 실천한 철학자라고 설파한다. 파울은 자신의 재산을 친구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구 주었으며 그 대가로 중년 이후에는 궁핍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자 친지와 지인들이 떠나고 그는 마지막 길을 환자로써, 정신병자로써 조용히 외롭게 죽어간다. 베른하르트는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존경을 담아, 그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으로 이 글을 써나갔을 것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그들은 한 시기, 거의 같은 시기에 베른하르트는 폐병 전문병원에, 파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절을 서두로 이야기한다.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둘은 서로를 더욱 각인하고 어떤 운명을 느꼈다고 생각된다. 그들의 우정은 그들의 병만큼이나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둘의 우정은 12년간 지속되고 파울의 죽음으로써 끝나는데, 이후에 베른하르트는 이 작품을 쓴다. 베른하르트는 파울과 있었던 일들, 그와의 대화 등을 파울의 생전에 메모해 두었다고 한다. 베른하르트는 파울의 놀라운 지성과 그의 독창적인 사고, 뛰어난 인간애를 기록해두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베른하르트를 동경하는(근래들어 그의 책을 읽었으니 역사는 아주 짧지만) 사람이 되었다. 그의 글은 독자를 중독시키고 그런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근래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이건 아직 독후감을 쓰지 못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그리고 이 작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왠지 삼총사처럼 느껴진다. 인간 심연까지, 그 치열한 자기 파괴적인 고뇌와 열정, 순수하면서도 모순 투성이인 인간들을 보여주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