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책을 들쳐보니 면지에 연필로 2018, 1,9~1.13 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러니까 '어젯밤'을 나는 그로부터 3년 후에 다시 읽은 것이고 두번째 읽은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때 나는 이 책의 대부분을 이해는 대강 한 것 같지만 그 분위기를 완전히 포착하지 못했다. 나는 이 소설집에서 주인공들의 불륜과 그들이 과거를 돌아보며 안타까워하고 쓸쓸해하는 심상을 어이없이 본 것 같다. 뭐, 불륜이, 성적 욕망이 그렇게 여러 작품에서 다루어야할 만큼 지대한 오브제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표지의 매혹적인 여자의 뒷모습은 그저그런 소설에 알맞는 표지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때의 나는 제임스 설터를 건너뛰었다.
하나 다시 읽은 어젯밤은 그때의 감상과는 다르다. 바로 전 읽은 '가벼운 나날'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이 설터의 문체와 그 세련되면서도 쓸쓸한 생의 회한을 여지없이 보여주었기에 나는 이미 설터에게 승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어젯밤을 읽으니 대부분의 작품 전부가 비슷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다채롭게 보였다.
설터의 문장은 아침 공기처럼 차갑고 날카롭다. 그의 문장은 도시의 새벽빛같은 아우라를 지닌다. 구체적인 표현을 하기가 버겁지만 에로틱하면서도 절제되고 욕망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태도는 절박함 가운데서도 다른 작가들에 비해 모호함이 겹쳐진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과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이 처연한 바람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목차는
혜성
스타의 눈
나의 주인, 당신
뉴욕의 밤
포기
귀고리
플라자 호텔
방콕
알링턴 국립묘지
어젯밤
이렇게 열 편 가운데 혜성과 스타의 눈을 뺀 나머지는 하나하나가 비슷해보이는 에로티시즘과 회상을 담고 있음에도 탁월한 스토리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나의 주인,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서사여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는데, 한 여자의 잠재된 내적 욕망이 개와의 관계를 통해 보여진다. 개는 '그'를 비유하고 대변하는 것 같은데(또는 그녀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대변하기도 하는 것 같기도) 그 개는 그녀를 따라오고 그녀는 개에게 자신의 절박한 감정을 투사한다. 그리고 개는 죽기 직전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녀는 폭풍같은 한 시절을 보내고 개의 주인인 시인이 술집에 앉아있는 걸 멀리서 바라본다. 그는 개를 잊겠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욕망투성이인 매혹적인 여자였다. 작품 속에서 정말 사랑스러운 주인공을 만날 때 나는 감동하고 슬픔이 휘감아오는 걸 느끼는데 이 여자가 그랬다. 이 작품은 여러 번 다시 읽을 명작이 될 것 같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좋았지만 독후감은 여기서 끝내련다. 할일이 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