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설터의 <어젯밤>을 3,4년 전쯤 누군가 주어서(선물은 아니었다. 자신이 읽은 걸 주었으니까)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제임스 설터라는'작가 중의 작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벼운 나날>이 쌤에 의해 언급되는 것을 듣고 당장 알라딘에 주문했다. 이러저러한 일들로 이 한 권의 책을 한 달에 걸쳐 읽었다. 

  결과는 경탄이었다. 서사보다는 작가의 표현이 그득찬 문장들, 사소한 풍경에서조차 사유가 녹아든 짧고 담백한 문장, 너무나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줄을 긋다보면 한 페이지 전부가 줄이 쳐지기도 했다. 

  이래서 줌파 라히리가 "나는 작가로서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로 큰 빚을 졌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설터가 세워놓은 높은 기준에 겸허해지고 만다"라고 고백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작가들은 다 놀라운 사람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더 경외감을 일으키는 작가들이 있는데 설터도 그 중의 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가벼운 나날>은 어찌보면 단순한 서사를 갖고 있다. 허드슨 강가의 호화로우면서도 절제된 중산층 가정의 남편과 아내인 비리와 네드라의 젊어서부터 늙기까지의 인생사가 펼쳐진다.

  그들은 중산층에서도 고급하면서도 소박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고 두 딸의 교육과 인성을 위해 애쓰는 교양있는 부부이다. 그들의 삶은 밖에서 볼 때는 균형 잘 잡힌 조화로운 가정처럼 보인다. 남편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건실한 건축가이고 아내는 두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디에 나가도 흠잡을 데 없는 지성과 미모를 지닌 여자다. 

  그러나 밖에서 보게 되는 삶과 안에서 겪는 삶은 대부분 다르다. 비리는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고, 또 우리가 보고 싶은 건 바로 이 다른 삶"이라고 통찰한다.

  그렇듯 설터가 작품에서 다루고자 한 것은 삶, 그 중에서도 '다른 하나의 삶'. 비리와 네드라는 서로 죽이 잘 맞는 부부처럼 보였지만, 자녀들에게 헌신적이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부부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정생활에서 양립하기 힘든, 어떤 욕망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 내면의 부조리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환경에 처할지라도 인간으로서, 한 개체로서 느끼는 불안과 고독감, 또다른 누군가를 필요로하는 불순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이혼을 하고 남은 자신들의 생을 마저 살아간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남들 눈에 보였던 밝고 환한 생도, 불안하고 비밀스럽게 불온했던 생도, 결국엔 삶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삶은 불순한 그늘 진 생과 햇빛 속에서 건강하게 타올랐던 다른 쪽 생 모두가 하나의 뿌리에서 올라온 다른 가지일 뿐이었다. 

  네드라는 죽고 이탈리아에서 젊은 새 여자와 결혼한 비리가 네드라가 묻힌 곳을 찾아온다. 이제 나날은 가벼워졌고 모든 것은 사라지며 흩날릴 뿐이다. 

  시간은 흔적마저 지우고 우리들은 모두 사라진다. 무겁고 고통스러웠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꽃잎이 지듯 어느새 지고 있다. 이 무상함, 이 덧없음. 그러나 그래서 삶은 빛나는지도 모른다. 

  

  설터의 문장들은 하나하나가 하나의 경구면서 철학이었다. 사소한 풍경조차도 작가에게는 사유를 나타내는 오브제가 될 수 있고 생을 비쳐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좋았던 문장이 너무 많아 밑줄을 쳤지만 몇 군데만 옮겨본다.



"그렇지만 설터는 벌랜드 부부를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전형'으로 그리고 있고, 과거의 '서사적 논평'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렌즈를 넓혀 나간다. 우리는 벌랜드 부부의 가장 나약한 순간을, 우습고 매력 없고 자조적인 순간을, 즉 비난받을 만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 리처드 포드가 쓴 서문 중 


"여기가 그들이 사는 새장이고, 벌집이었다. 두꺼운 슬렝트 지붕에,방은 작은 상점들 같았다. 이 집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이 어두워지면 한 척의 배 같았다. 그 안에서는 유심히 들으면 온작 소리가 났다. 물소리, 나직한 목소리, 곡식을 가는 일정한 소리."


"그들의 삶은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

이 모든 것은 제각각이면서도 밀접하게 엮여 있고, 보이는 것과 달랐다. 실제로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비리의 말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다른 하나의 삶, 문제가 있는 건 이 다른 삶이고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이 삶이다."


"강아지는 이미 그 안에 모든 용기와 모든 사랑과 모든 지식이 있었다."


"뉴욕은 소유물의 대성당이었다. 그 냄새조차 꿈이었다. 이 도시에선 거부당한 사람들조차 떠나지 못했다."


"한번 보면 모든 상황이 바뀌는, 그런 여자였다."


"인생은 지식을 경멸한다. 지식따윈 대기실에서, 밖에 앉아 기다리라고 한다. 인생이 숭배하는 건 열정과 에너지와 거짓말이다."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 조각만이 있을 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 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 무엇을 하건, 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 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 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 선택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 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그들의 삶은 함께 꾸려졌고, 함께 짜였다. 그들은 마치 배우들 같다. 자기밖에 모르는 성실한 배우들. 오래된, 불멸의 연극대본 이상의 세상은 없는 배우들."


"아버지의 옷들은 구세군이 가져가도곡 침대 위에 두었다. 셔츠와 벗어놓은 구두들, 그가 누워 있는 무덤 위의 흙이 다져졌다. 모든 장신구들, 모자와 벨트와 반지들. 그의 몸을 떠난 장신구들은 얼마나 볼품없는 싸구려인지, 연극 무대에셔 쓰이는 물건들 같았다. 햇빛 아래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심지어 기만적인 소품들."


"모든 건 지나갔고 끝이 났다. 갑자기 이 모든 일이 어떤 징조처럼 그녀의 몸을 통과했다. 그녀는 이제 드러났다. 자기 자신의 마지막으로 이어진 길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힘이 셌지만 그 힘은 유아적이었다. 그들 사이에 뭔가 달라졌다. 그녀는 언제나 그에게 애정을 가질 터였지만, 여름은 지나갔다."


언제나 좋은 책을 읽고 난 후 느끼는 건, 그냥 또다시 읽거나 책 전체를 필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만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나무 같아, 그녀에게 말했다. "자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지. 뿌리가 아주 깊고 또 그 뿌리들은 길게 뻗어나가. 상상 이상으로 멀리. 그렇게 그냥 잘라버릴 수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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