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모래의 여자>는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불리는 아베 코보의 베스트 셀러이며 스테디 셀러이다. 아베 코보는 실존주의적 작가, 전후파 작가라고도 불리며 극작가,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의과대학을 나온데다 수학이 특기였고 곤충채집에 흥미가 있었고 운동도 잘했다고 한다.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적인 사람이었고 시대를 훨씬 앞선 예술가였다.  

  

  '모래의 여자'는 시지프스의 신화와 맥락이 같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를 계속 퍼올려야 하는 구덩이 속의 인간이 된 한 남자의 어이없는 이야기가 긴박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평범하고 성실한 교사인 니키 준페이가 며칠간 휴가를 얻어 짧은 곤충채집여행을 떠난다. 기차로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바닷가에 도착한 그는 바다를 향해 가다가 자신이 원하던 사구를 만난다. 그는 모래땅에 사는 곤충, 특히 딱정벌레목 길앞잡이속의 좀길앞잡이를 채집하고 싶었다. 혹시 새로운 종을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되어 반영구적으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욕망도 있었다.  

  그러나 모래언덕은 그를 호락호락하게 놔두지 않는다. 바람이 불때마다 모래가 입안으로 주머니 안으로 들어차고 원하던 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구 바로 아래의 부락에서 노인이 나타나 현청에서 조사를 나왔느냐고 묻더니 아니라고, 교사라고 명함을 주자 그것을 받아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몇 명의 남자와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더니 돌아갈 차는 이제 없다고 알려준다.    그는 그럼 부락에서 묵겠다고 하고 노인은 그럼 자신이 숙박할 집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그는 노인을 따라 모래 언덕을 깍아만든 커다란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 그 곳에서 일박을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이것은 그가 만난 엄청난 함정이요 사기극의 시작이었다. 그는 곧 노인과 남자들에게 붙잡힌 좀길앞잡이 같은 벌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모래가 무시로 쏟아지는 구덩이 속 판잣집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벌레를 채집할 목적을 말하지만 그 집의 여자주인은 이상하게 그가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게 될 것 같은 말을 한다. 그녀는 '그들'과 공범이고 고된 모래파기에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려온 것이다. 그는 결국 매일 모래를 파는 삶을 살게 되는, 그녀와 같은 노예.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그는 자신이 부당한 범죄에 희생자가 되었다고 여긴다는 점 뿌뿐이다.

  그는 온갖 머리를 짜내어 모래 구덩이 속에서 탈출하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당장 그가 탈출을 시도하자 사구 너머 부락의 '그들'은 그에게 물을 공급하지 않는다. 물이 없는 생활이란 죽음을 맞아들여야하는 삶, 그는 항복하는 수 밖에 없다. 그의 내심은 그러나 이제 차라리 그들에게 협조하는 척 하다가 진짜 기회를 얻어 탈출하는 것...

  그러나 그는 그 구덩이 속의 생활에 차츰 아주 천천히 길들여지는데, 그 곳에는 여자가 있지 않은가. 여자는 그에게 음식을 해주고 몸을 닦아주고 그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연민을 자아내기에 마냥 밉지만은 않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는 결국 그녀를 돕기도 하고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수장치를 만들기도 하며 구덩이 속 일상을 받아들인다. 그러다 그는 '그들'에게 너무 답답하니 바다 풍경만이라도 좀 볼 수 있게 자신을 내보내달라고 사정한다. 

  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부탁을 들어주겠으니 조건이 있다고 한다. 그는 무어라도 들어줄 태세. 그들은 그가 그녀와 관계하는 것을 구덩이 위의 자신들에게 보여달라고 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까짓게 대수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서는 어차피 보는 사람들이나 보여주는 자신들이나 수치스럽기는 똑같은 것이니 더 나쁠 것도 없다는 순간의 판단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러나 그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를 가차없이 때려눕힌다. 그녀는 분노하는 것이다.

  하나 종내,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로서는 행운이랄 수 있는 자궁외임신으로 그녀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진다. 놀란 그들이 그녀를 위로 끌어올려 병원으로 향하면서 그 경황에 로프 사다리를 남겨놓고 그들은 부랴부랴 언덕 위에서 사라지는데...

  이제 그는 부락 남자들이 부재하는 가운데 탈출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로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유수 장치에 대해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장치의 나무틀 한쪽이 비틀어져 있는 걸 발견한 그는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 물이 고여있는 걸 보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소리를 듣는다. 그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겨우겨우 참으면서 통의 물에 손을 담갔다.' 그는 '유수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한데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고,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실종 신고는 7년 후 실종자로 확인하는 판결로 끝난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아내가 있는 평범한 교사였다. 허황된 욕망이었지만 부정한 취미도 아니었던 곤충채집에 나섰다가 어이없는 일로 구덩이 속 모래집에 갇히게 된다. 한데 그 곳에도 일상이 있었다. 감옥같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 그런데 그 생활에 길들고 보니 결국 도시에서 쳇바퀴돌듯 살던 시절이나 모래를 파내며 사는 생활이나 별로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삶이란 매일 무너지는 모래를 파 나르며 자신이 사는 좁은 집을 지키는 단조로운 일상을 견뎌야하는 시지프스의 삶이 아닌가. 일상이란 견디기 힘들지만 그런 지루하고 지난한 일상 때문에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면... 우리는 개미와 벌과 딱정벌레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녀는 그 일상에 길들인 여자이고 그는 그것에 저항하다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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