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2018년 수상작품집이다. 수상작은 한강의 '작별'

그 외, 수상 후보작

강화길- 손

권여선- 희박한 마음

김혜진- 동네 사람

이승우- 소돔의 하룻밤

정이현- 언니

정지돈- Light from Anywhere(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작별

  갑자기 눈사람이 된 한 여자가 서서히 녹기 전까지의 행로를 그리고 있다. 

  여자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남편 없이 중학교를  졸업할 아들 하나를 두고 직장을 다니는, 중년에 들어서기 바로 전의(또는 들어선) 여자.

  그녀가 직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가난하고 무능하다 싶은 남자.  지나치게 조용하고 선량한 그 남자와 그녀는 표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천변에서 그를 기다리다 우연히 깜빡 잠이 든 사이에 그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겨울 끝자락이라 덥지는 않아 그녀는 그런대로 집을 찾아가 아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그와 함께 천변으로 향한다. 늦겨울 햇살이 비추어 그녀는 녹을 위험에 처하지만 잠시 그와 손을 잡고 짧은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그녀는 서서히 녹는 상태로 천변으로 향한다. 그녀가 갈 곳은 그 곳외에 없다. 따듯한 실내나 누군가를 만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천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그녀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사람은 단 하루도 살지 못한다. 해가 비치면 그대로 녹으면서 무너지고 만다. 냉동고를 찾아가도 되지만 냉동고에 갇힌 삶을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눈사람의 스러짐과 우리 인생이 아주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100년도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면 개미들에게 강아지들에게 욕들을 소리겠지만 세상을 하직할 때는 온전한 하루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한탄에 얼마나 허무할까. 나이가 드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수상작 '작별'은 상징성에서나 이야기의 순수성에서도 감동적이었다. 그간 읽은 한강의 (몇 편 읽지 않아 이런 말 할 자격은 안되지만) 어떤 작품보다 좋았다.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수작이었다. 

  


  솔직히 수상작 외 후보작들은 물론 훌륭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썩 좋았다고 할 수 없었다. 

강화길의 '손'은 공포와 써스펜스를 불러오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그쪽으로만 치우치고 이야기로써는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김혜진의 '동네사람' 또한 지나친 과장이 군데군데 독자의 감정이입을 막았다. 

  이승우의 '소돔의 하룻밤'은 성경에 기록된 롯의 에피소드를 논리적으로 설명한 이야기면서 그 이야기를 해설하고 있는 작품인데 처음엔 재미도 있고 교감도 있었으나 갈수록 지루하다는 느낌에 마구 쭉 훑게 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승우의 독창성은 언제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놀라운 작가이다.

  '언니'는 정이현의 수상후보작인데 정직하고 바른 인희언니가 권위와 위선을 도구로 학생들을 착취하는 교수에게 이용당하고도 내쳐지는 상황을 정서적으로 그렸다. 마음을 서서히 드러내는 방식이 조금 뻔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하면 흠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읽다가 포기했다. 포기해서 아쉽지 않았다. 꼭 스토리가 있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무슨 얘기인지는 알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작가는 자신만의 어떤 의미를 썼으리라. 하지만 내가 작가의 뜻을 꼭 알아줘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가 잘 못썼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의미도 있고 주제도 좋고 문체도 좋고 작가의 노고까지 느껴지는 글들이 많기에 이 작품은 pass다. 


* 책을 읽은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겨우 이런 독후감을 쓰면서 쓸 시간이 없었다면...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독후감 쓰기가 지겹게 싫었던 것일까. 후자가 먼저인 것 같다. 앞으로는 웬만하면 읽은 다음 곧바로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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