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협의 완성이갑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4월
작년 겨울(바로 세 달쯤 전) 이갑수 샘의 4주 특강을 들으면서 산 책이다. 추운데다 코로나까지 겹쳤지만 오랜만에 시간이 널널했었던(정말 그러기가 쉽지 않은) 시연씨가 적극적이었기에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군자역에서 백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문학팩토리가 있었다. 우리는 문학적 형상화를 위한 소설작법을 아주 짧게, 정말 몇 가지만 배웠다.
기억해보자. 무엇을 배웠던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지만, 생각해보자.
각인, 구조, 낯설게 하기, 독자 속이기 등... 한두 가지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이 확실치 않은 건 내 기억의 문제일 뿐, 좋은 수업이었다. 덕분에 읽은 이 책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작가는 현실에서 한 발 공중에 떠있는 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성향이 잘 구현된 소설집이다.
차례
편협의 완성
아프라테르
T.O.P
일사부조리
조선의 집시
서점로봇의 독후감
품사의 하루
우리의 투쟁
'편협의 완성'은 2011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케 한 작품이며 앞 표지의 콜라병이 주제와 소재를 나타낸다. 이야기도 상당히 재미있고 시사적인데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가 달의 뒷면에 콜라 병 모양의 광고판을 만든다.
'나'는 무엇이든 책으로 배우는 사람이고 안인력은 검도를 하는데 찌르기만 연습한다. 내겐 할머니가 계시는데 할머니는 침구사이다. 그녀는 한의와 침구가 포함되어 약과 침을 모두 사용하게 되는 한의사들을 무시하며 침만을 고집한다.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알아야지' 할머니가 한의사들을 무시하는 이유다.
안인력은 대회에서 우승하고 할머니는 물에 빠진 연인을 침으로 회생시킨다. 코카콜라는 달 뒷면에 거대한 콜라병 모양의 건물을 짓고 점등식을 가진다. 이 정도면 편협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편협은 정통적 완성 아닌 완성을 불러온다.
나머지 작품들도 현실에서 한두 발 띈 상상을 소재로 삼아 흥미롭다. 일반 소설에서 간혹 삶의 구차함과 그 지난함에 한숨이 쉬어지는 순간을 맞닥뜨리는데 반해 이 단편들은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게임을 할 때 느껴지는 박진감과 흥분이 좋았다. 특히 소림사에서 온 커피자판기의 이야기는 신선하고 그 결말이 궁금해 마구 글자를 따라 나가게 만든다.
이 책의 대표작이면서 표제작에 대해서만 쓰고 이만 끝내야겠다. 요즘은 컴 앞에 앉아 글 쓰는 것도 지친다. 독후감 쓰기가 잘 안되는 이유다. 김유정 문학상 수상 작품집<작별>도 써야하는데 며칠 뒤에나 간단히 다뤄야 할 것 같다.
날이 좋아 그냥 강변을 걷고 싶은데 그건 어렵고 이따 아파트 놀이터에서 좀 걸어야겠다. 그래서 더 글쓰기가 싫은 것 같다. 봄이 가까운 것 같다. 아후, 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