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내가 이 책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리뷰나 소개에서 읽은 것 같은데 앨범에 스크린 샷이나 카메라로 찍어둔 게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분명 어딘가에서 이 책을 검색한 건 확실했다. 왜냐하면 '목잘린 닭'의 충격적인 장면이 잊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어서였다. 그래서 목잘린 닭의 어설픈 줄거리를 긴 문장으로 여기저기 사이트에 검색했다.
처음에 작가이름과 책명을 몰랐으니 한강에서 바늘찾기?! 그러다 알라딘에서 누군가의 리뷰에 이 책이 언급돼있어 드디어 조우! 아! 다시는 나중에 사야지, 이러면서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필요하면 장바구니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사소한 법칙을 이제야 깨닫고 배웠다.
작가인 키로가에 대해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네이버 B북채널에 자세하게 소개돼있어 그걸 인용하기로 한다.
키로가의 삶은 죽음이라는 비극적 경험으로 점철되었다. 태어난 지 두달 되던 무렵, 아버지가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발 사고로 죽고 이후 의붓아버지마저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는 비극을 맞고 엽총으로 자살한다. 열일곱 살 키로가가 그 죽음을 목격한다. 1902년에는 키로가가 총을 살펴보던 중 오발되어 친구 페에리코 페란도가 즉사한다. 1910년에는 누나와 형이 장티푸스로 죽고, 1915년에는 아내 아나 마리아가 음독자살을 시도해 사경을 헤매다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다. 1933년 후원자 역할을 한 발타사르 브룸 대통령이 쿠데타에 항거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다. 1937년 키로가는 위암 판정을 받은 뒤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한다. 그런데 평생 그의 주변에 드리워져 있는 듯 보이던 죽음의 그림자는 그 몇 년 뒤 장녀인 에글레, 장남인 다리오의 자살로 이어진다.
이런 죽음과 비극적 사건은 키로가의 작품세계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했다. 그는 삶을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으로 보았으며,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공포스러울 정도의 비극성을 안고 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라시오 키로가의 작품을 보려고 책을 펼치려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난 지독하게 유아적으로 겁이 많다. 1878년 12월 31일에 우루과이에서 태어났으니 년도로나 지리상으로나 나와는 아주 먼 간극의 작가인데도 혹시 내게 어떤(?) 초월적인 텔레파시를 보내면 어쩌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멀쩡하게 독후감을 쓰고 있으니 키로가가 나라는 하찮고 평범한 독자에게는 아무 감응도 느끼지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긴 하지만 약간 서운...
이 책에는 18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제목대로 사랑과 광기, 그리고 죽음이라는 주제가 가장 많이 나타난다. 5편은 거르고(앞으로도 모든 단편소설집에서 전부다 읽기는 목표하지 않을 작정이다) 13편을 읽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몇 편만 간단하게 살펴본다.
목 잘린 닭
이 작품 때문에 이 책을 사게 되었으니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키로가를 가장 유명한 유루과이 작가로 매김한 것이 이 작품과 '깃털 베개'때문이라고 한다.
놀라울 정도로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마시니페라스 부부에게는 아이가 넷 있었는데 모두 백치였다."로 시작되는 문구가 압도적이다.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했고 건전한 삶의 목표가 있는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부는 첫 아들를 낳는데 그들은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최선을 다해 양육한다. 그러나 20개월 째, 아이는 열이 끓고 발작을 일으키더니 백치가 되어버린다. 무슨 저주인지 둘째 아들도 세째인 쌍동이 아들들도 똑같은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여기서 첫째 아들이 백치가 되었을 때 집에 들른 의사의 말은 두고두고 독자에게 어떤 징후를 보게 하고 그 비극적 씨앗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의사는 이렇게 주의 겸 선언을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부계유전에 의한 병 같다. 또한 아이 엄마가 폐 한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이의 병은 아이 문제가 아니라 이 가정 전체에 드리운 원죄에 대한 문제이며 그것은 어른들인 그들이 해결하든지 떠맡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하긴 어느 경우에도 아이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언제나 부모나 환경의 문제가 결정적인 이유지 아이 혼자 문제를 만들지는 않는다.
부부는 좌절 중에도 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러다 "짐승 같은 자식 넷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지자, 부부는 그 모든 운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태도는 열등한 존재의 고유한 특성이다." 처음 건실하고 다정했던 부부는 이제 서로의 탓을 하며 싸우고 상대를 흠집내기 위해 더 막말을 던진다. 그러다 그들은 화해하고 또 아이를 갖고 싶어한다. 결국 딸이 태어난다. 아이는 제 오빠들과 다르게 아주 잘 자라준다.
그러던 어느 날, 네 백치 아이들은 마당에서 벽을 보며 앉아있다가 하녀가 닭을 잡아 목을 따고 피를 내자 부엌으로 달려와 그 광경을 목격한다. 그리고 부모와 여동생이 외출하고 돌아오던 중, 여동생이 먼저 들어와 담 위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던 백치들은 순간 동생의 머리채를 닭의 머리처럼 잡아채 부엌으로 끌고 들어가 하녀가 하던 대로 생명을 서서히 앗아간다. 부엌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이 얼마나 원래의 목표나 의미에서 퇴행하고 변질되는지, 그리고 그 왜곡된 삶은 누구의 탓이 아닌 바로 그 자신(나자신)의 몫이며, 그로 인해 일어난 비극은 바로 자신에게로 향하는 화살이 되기에 남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어찌보면 원죄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비극을 이미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네 백치 아이가 마당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하루종일 방치된 채 벽돌담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데에서는 사랑받으며 응석어린 막내딸의 처지와 상반되어 이 가정의 환한 빛 뒤에 음험한 어둠이 도사리고 똬리를 튼 채 언젠가 무서운 폭발을 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네 아이들이 하루종일 바라보던 벽돌담, 그들은 갇힌 아이들이며 방치되고 버림받은 수인인 존재들이다. 그들 앞에 버티고 선 벽돌담은 어디로도 탈출로가 없는 네 백치 아이들을 정말 백치로 만 남게 한다. 백치가 스스로 되지 않은 이상, 그 책임을 어린 그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인데도... 부부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자식을 액세서리로 여겼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이 단편에서 작가는 인생의 부조리와 모순이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태도와 인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키로가의 대표단편이 될 작품으로서 완벽하게 잘 짜인 플롯과 간결하면서도 명징한 상징이 일품이었다.
깃털 베개
신혼인 젊은 아내가 차갑고 냉정한 성격의 남편 때문에 불안한 일상을 보내다 깃털 베개를 베고 자다 죽는 이야기. 아주 짧은(책 6쪽 반) 내용이지만 함축하는 바는 무진장 크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사랑을 원했고 남편을 사랑했다. 남편 또한 사실 속으로는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너무나 차갑고 냉정해 그녀는 남편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차츰 우울해지고 점차 병이 되어간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매일 잠을 자는데 점점 더 일어날 수 없이 병은 중해진다. 결국 그녀는 창백하게 여위어 죽음에 이르고.
하녀가 그녀가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들자 베개가 너무 무겁다. 남편과 하녀가 베개를 들고 나와 그걸 갈라보니 그 안에 다리가 여럿 달린 괴물이 살고 있었다. 그 괴물이 밤낮으로 그녀의 피를 빨아먹어 괴물은 공처럼 커져있고 그녀는 그렇게 하얗게 말라 있었던 것.
그녀는 혹시 괴물에게 피를 빨리면서 빈혈이 야기하는 환상과 몽상으로 신혼의 단꿈을 대신 꾼 건 아닐까. 이럴 때 이 단편은 성적 환타지라는 보이지 않는 주제를 담게 될 수 있다.
또 정신을 놓아버린 그녀에게 흡혈벌레가 기회를 타 찾아온 것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떼어버리려고 하기보다 그 속에 파묻혀 그 불행을 놓지 않고 습관처럼 살아가면서 그걸 받아들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비전이 없는 삶의 루틴.
마지막, 그녀는 왜 일어나지 않고 벌레를 잡지 않고 그렇게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을까. 이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그녀는 차라리 남편의 차가움보다 흡혈벌레와의 동거가 편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러면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으리라.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뇌막염에 걸린 친구의 여동생이 열이 나고 착란 증세에 빠지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는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집에 드나들며 그녀가 낫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병이 낫자 그는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그녀곁에서 매일 한 두 시간 그녀의 열오른 얼굴과 지나치게 착란으로 반짝거리던 아름다운 그녀의 눈을 더 볼 수 없다는 것. 그녀가 정신이 돌아오면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것. 그는 점점 그녀 몰래 그녀를 바라보고 병중에 있던 그녀의 눈빛과 그 손을 그리워한다... 그러다 그녀가 고열 중에 그를 부르던 게 마냥 다 기억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두 남녀의 서로의 애정을 탐하고 그러면서도 자존심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밀고 당기고 절망하고 화를 내고, 그러다 끝내 돌아서려는 그에게...
두 남녀의 연애심리가 세심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해피엔딩 러브스토리. 심리묘사가 무척이나 길고 디테일하다.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세 편만 다루기로... 페이퍼, 허리 아프고 기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