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누이가 죽으려고 찾아간 이노셍 묘지, 그곳은 바로 자신이 태어난 곳이었다. 어젯밤 페이퍼를 쓰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그가 그라스에서 파리로 떠나온 이유는 자신이 태어났던 그 곳으로 돌아가 죽기 위해서였다. 악취가 가장 심한 그곳에서 그는 태어났고 죽기 위해 그곳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소설에서 이유없는 설정이나 사건은 없다. 모든 사건과 정황은 먼저의 원인을 거느리고 있다. 그르누이가 태어난 해는1738년인데 이때까지도 이노셍 묘지는 그대로 페르 거리와 페론느리 거리 사이에 있었다. "그러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몇몇 무덤이 위태롭게 무너져 버렸고, 그 결과 묘지에서 진동하는 악취에 참다못한 주민들이 단순한 항의를 넘어 진짜 폭동을 일으킨 후에야 비로소 묘지가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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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곳, 프랑스 왕국에서도 가장 악취가 심한 그곳에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태어났다. 그날은 그 해의 가장 무더웠던 날들 중의 하루로서 뜨거운 열기가 납덩이처럼 묘지를 내리누르고 있었고 썩은 참외와 불에 탄 쇠뿔이 섞인 듯한 부패 가스가 근처의 거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르누이의 어머니에게 진통이 찾아온 것은 페르 거리의 생선 좌판 뒤에 선 채로 좀 전에 꺼낸 대구의 비늘을 손질할 때였다. 아침에 세느 강에서 잡았다는 그 생선들은 벌써 악취를 풍기고 있어 오히려 시체의 냄새를 압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르누이의 어머니는 생선 냄새도 시체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코는 냄새에 대해 완전히 마비되어 있었을 분 아니라 더욱이 진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진통으로 인해 그녀는 외부의 모든 자극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녀는 단지 진통이 빨리 끝나기를, 가능한 한 빨리 이 구역질 나는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였다. 그전에도 전부 이곳 생선 좌판 뒤에서 일을 끝냈었다. 아기들은 전부 죽었거나 반쯤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 태어난 핏덩어리들은 주변에 널려있던 생선 내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고, 게댜가 생명이 그다지 오래 붙어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녁 무렵에는 다같이 쓰레받기에 담겨 치워졌다. 그리고는 수레에 실려 묘지나 아래쪽 강가에 버려졌다. 오늘 역시 그렇게 될 것이 뻔했다.
.......... 그녀는 마지막 진통이 찾아오자 커다란 도마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 자리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는 앞서 네 번의 경우처럼 생선칼로 핏덩이의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백합꽃이 만발한 들판이나 수선화가 가득한 좁은 방에 있을 때처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참을 수 없이 자신을 마비시킨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옆으로 쓰러지더니 길 한가운데 쌓여 있는 생선 더미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12)
가이아르 부인은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았지만 세상 풍파를 다 겪은 여자였다. 겉모습은 실제 나이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어떤 때는 두 배, 세 배, 혹은 백 배 정도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처녀 미라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이미 죽어 있는 여자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부지깽이로 이마를 맞은 때문이었다. 코와 이마가 만나는 바로 그곳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고, 그와 더불어 따뜻함이나 냉정함 등 모든 인간적 감정도 잃어버렸다. 그 한번의 매질로 인해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후일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으며 아이들을 낳았을 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주위 사람이 죽어 갈 때도 슬퍼하지 않았으며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남편이 그녀를 때려도 위축되지 않았으며, 그가 시립 병원에서 콜레라로 죽었을 때에도 아무런 해방감을 느끼지 못했다.(34)
그곳에는 사람냄새와 짐승 냄새, 비누 냄새, 갓 구워낸 빵 냄새, 초에 넣고 끓인 계란 냄새, 국수 냄새,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놋그릇 냄새, 샐비어와 맥주와 눈물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마르거나 젖은 지푸라기 냄새 등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55)
가령 다림질한 비단 냄새, 쿠엔델 차의 향기, 은실로 수를 놓은 비단천의 냄새, 진귀한 포도주병의 코르크 마개 냄새, 자라 등 껍데기로 만든 빗의 냄새 등이(57)
마치 장사꾼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고 야채나 계란이 가득 담긴 바구니들과 포도주와 식초가 들어 있는 통들, 양념 재료나 감자, 혹은 밀가루가 가득 든 자루들, 못과 나사가 담긴 상자들, 정육점의 고기 자르는 도마, 옷감이나 구두, 구두창, 혹은 낮에 팔던 수백 가지 다른 물건들로 가득 찬 판매대...... 그 모든 활동들이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공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든 일이 다 끈난 후에 냄새로 인식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인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소음이나 과장, 육체를 지닌 인간들의 구역질나는 체취 등 그 당시의 통상적인 속성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 원래의 본질, 즉 정신으로 인지했기 때문이다. (57)
그때 그르누이의 짜내는 듯한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
"공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제가 모르는 건 그것뿐입니다. 그것말고는 다 알고 있어요!"
"모든 향수의 시작과 끝이 바로 공식이야."
발디니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117)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236)
사실 외로운 진드기이자 잔혹한 괴물 그르누이는 단 한 번도 사랑을 느껴 보거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3월의 어느 날 그라스의 성벽에 기대어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랑으로 그는 행복했다. 물론 그 대상은 사람, 성벽 뒤편의 집에 살고 있는 그 소녀가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녀의 향기뿐이었다. 다른 어느 것도 아닌 그 향기, 미래의 자신의 냄새로써의 그 향기를 사랑할 뿐이었다. 그는 일년 후 반드시 그 향기를 가지러 오겠다고 목숨을 걸고 맹세했다. 자기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향기에 헌신하겠다는 이런 이상한 맹세를 한 후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287)
군중들은 동요하거나 반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람들은 드디어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마차는 오히려 성공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용을 익히 알고 있던 작품이 극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공연되었을 때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심지어 그렇게 등장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끔찍스러운 범죄자는 보통과 다른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식이었다. 살인마를 길거리의 시시한 도둑처럼 쇠사슬에 묶어 처형장으로 끌고 와 죽일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랬다면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352)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눈물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 놀랍게도 저항하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결국은 그 모든 것을 녹여 쓸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이제 사람들은 순수한 액체 상태였다. (354)
그들은 모두 그의 손길이 자신들의 가장 예민한 곳, 가장 민감한 성감대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손이 만 개라도 되는 양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국부에 손을 뻗어 여자든 남자든 그들이 은밀한 환상 속에서 열렬하게 갈망해 온 그대로 그들을 애무해 주었다.(357)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 한 번만, 꼭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감정인 증오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이날은 그렇게 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향수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360)
정오가 되자 광장은 마치 깨끗이 청소라도 한 것처럼 모두 사라졌다. 시내에 돌아온 사람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급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길에서 누군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도망치듯 바삐 인사를 한 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전날, 그리고 지난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행동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렇게 치욕스러울 수가 없었다. 모두들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모두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라스 시민들이 그때처럼 일치 단결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살얼음판을 디디듯이 생활했다.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