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지음, 김학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6월
차례
약혼녀
골짜기
귀여운 여인
정조
함정
상자 속에 든 사나이
아뉴타
사모님
약제사 부인
우수
복수자
앞의 너무나 유명한 세 단편은 거론하지 않고...
정조
"공증인 루반체프의 아내--스물다섯가량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소피아 페트로브나는 이웃 별장에 피서하러 온 변호사 일리인과 함께 숲 속 오솔길을 조용히 거닐었다"로 시작된다.
소피아는 끊임없이 일리인에게 향하는 마음을 다잡으려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몸과 마음은 그를 열망한다. 일리인은 그녀를 향한 구애를 계속하고, 소피아는 자신의 욕망을 뿌리치려하지만...
"화냥년!"
그녀는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더러운 년!"
그녀는 빨갛게 상기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자기 발의 감각조차 잊었다. 그러나 수치심보다도, 이성보다도, 공포보다도 굳센 그 어떤 힘이 그녀를 자꾸 앞으로 밀고 나갔다.(156쪽)
함정
이 단편은 펭귄클래식판 <사랑에 관하여>에서는 '진창'으로 수록돼어 있다. 팜프파탈인 유대여자에게로 향하는 남자들의 진창 또는 함정이랄 수 있는 어리석지만 거부할 수 없는, 남자들 이야기
상자 속에 든 사나이
펭귄 클래식 <사랑에 관하여>에도 수록되어 있다. 형식과 틀만을 고집하던 남자가 네모난 상자 속으로 죽어서도 갇히게 된다는. 진실보다 치레와 사회적인 규율만 신봉하던 남자의 답답하고 어리석은 삶을 잘 형상화한 작품. 그런데 결국 그런 자신의 선택은 자신에게 가장 실질적인 손해를 끼친다. 행복한 삶, 진심어린 사랑을 놓치고 보이지 않는 굴레를 스스로 썼던 남자의 이야기.
아뉴타
가난하고 배운 게 별로 없을 프롤레타리아인 아뉴타라는 한 여인의 삶의 여정 중 한 페이지.
그녀는 장래 의사가 되려는 학생과 동거중, 학생은 늑골을 세어본다고 추운 날 그녀의 옷을 벗기고 늑골마디마다 펜으로 줄을 긋는다. 한 화가가 찾아와 그녀에게 모델이 돼달라고 한다. 학생은 선뜻 그녀에게 따라가 모델이 되라고 하고.... 그녀가 화가를 따라간 사이, 학생은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다(의젓한 의사가 되어 훌륭한 귀부인인 아내와 함께 사는) 꾀죄죄하고 초라한 그녀와는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돌아온 그녀에게 학생이 말한다. 헤어지자고,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떠나려하지만 학생은 순간 그녀가 가엾어보여 일주일 후에 내보내야겠다고 다시 생각한다.
"그녀는 언제나 앉아있던 들창 가의 의자로 조용히 가서 앉았다."--아주 짧다, 8쪽 분량의 길이
참 훌륭한, 아주 짧은 단편이었다.
사모님
사모님들에게 청탁을 넣은 남자를 할 수 없이 채용하게 된다는 이야기--때문에 주인공 남자는 화가 나고 사모님들에게(자기 부인도) 지긋지긋한 환멸을 느끼지만 여러 사모님들의 청을 물리치지 못한다(그녀들은 권력자의 아내들이다). 대신 어려운 상황에 빠진 교사를 채용하려던 결심을 되돌려야 한다. 정말 청탁이란 부정하고 부패한 짓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취업청탁들을 하는지, 그 시대에나 지금이나.
약제사 부인
시골 마을의 평범한 약사의 아름다운 아내가 권태로운 일상을 견디지 못해 별볼일 없는 군의와 병사의 감언이설에 마음이 달떠 잠시 자신의 분수를 잊고 그들과 유치한 감정의 유희에 빠진다.
<마담 보봐리>를 연상시킨다.
우수
며칠 전 죽은 아들의 이야기를 한번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마부, 그러나 아무도 그가 하는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아들이 죽었다고 말했는데도, 분명 그 말을 들었는데도 손님들은 아무 감정이 없다. 자신들의 일상에만 매달려있을 뿐, 마부의 슬픔에는 한순간도 공감하지 않는다. 마부는 그토록 누군가에게 하고 싶던 그 말을, 자신의 말에게, 조용히 듣고 있는 말에게 말한다. 자신의 죽은 아들 얘기를..... 정말 잊을 수 없는 이야기.
복수자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죽이려고 총을 사러 온 사나이, 그러나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그들을 죽이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행동을 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
체홉의 단편선집을 연이어 두 권 읽었다.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