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1) 조나단 노엘은 오십이 넘은 남자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어느 날, '비둘기 사건'을 겪게 된다.
그의 이력이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 그는 아주 어려서 부모가 사라졌고(수용소인것 같다, 1942년이라고 ) 누이동생과 시골 아저씨집에 내려가게 된다. 그는 아저씨의 뜻에 의해 군에 다녀오고 제대해 돌아와보니 누이동생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아저씨는 이웃 마을 처녀와의 결혼을 권했고 그는 단 하나, 평화를 기대하며 결혼하지만 아내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간다. 그는 사람을 불신하게되고 홀로 파리로 떠나온다.
파리에서 그는 그나마 운이 좋아 은행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코딱지만한 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된다. 그는 일터와 자신의 방만을 왕복하는 삶을 살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한다. 그는 혼자 사는 삶에 만족스러워하며 그 방을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았고 벌써 많은 돈을 지불했다. 비둘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까지의 상황이다. 12쪽까지
2) 아침에 일어난 그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복도 끝 공용화장실) 현관문에 귀를 대고 바깥 상황을 주시하다(이웃의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그의 문밖에 비둘기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보게 된다. 납색의 매끄러운 깃털을 한 그것은 황소 피처럼 붉은 복도의 타일 위에, 갈퀴 발톱을 한 빨간 다리를 보이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비둘기였다. ..... 보기에 너무나도 끔찍스러웠다. 그는 공포로 몸서리를 치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망상에 빠지고 만다. 그는 처음 기도를 하고, 세면대에다 볼일을 보고 세제로 닦아낸다. 두려움 때문에 저녁에 어디로 가야하고 밤엔 어디에서 보내야할지 걱정을 하며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 그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건물 관리인인 로카르 부인에게 대답 이상의(그는 그동안 그녀와 어떤 의미있는 대화도 한 적이 없었다), 요구하는 말을 하게 된다. 비둘기가 복도에 있으며, 푸르뎅뎅한 똥이 복도에 여기저기 깔려 있고 그것은 주택 관리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4) 그는 출근해 경비업무를 선다. 그는 언제나 똑같이 성실하고 바른 자세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불안하고 똑바로 서 있지 못하며 땀을 계속 흘리며 몸은 참을 수 없이 가렵다. 그러다 뢰델 씨(지점장인것 같다)의 승용차가 들어오는 것도 보지 못하고 만다.
5) 점심시간에 그는 가방과 외투와 우산을 옷장에서 갖고 나와 생플라시드 거리의 작은 호텔을 잡아둔다. 55프랑이나 되는 돈을 미리 지불한다.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는 공원으로 가 벤치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 거지가 다른 벤치에 앉아 음직을 먹고 잠을 잔다. 그는 그의 태평스러움에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가을, 그는 그 거지가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용변을 보던 것을 기억하게 된다. 인간적인 자유가 적어도 복도의 공동변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과 그런 필요 불가결한 자유를 자기가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속 깊이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를 보자 다시 이상한 불안감 같은 것이 생겨나는데 그건 경이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게 저 사람이 나이 오십이 넘도록 살 수 있었는지가 의문스럽다. 그러면서 자신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가 그런데 왜 자신은 지금 겨우 빵 따위를 뜯어먹고 있는가. 점심시간이 30분 남아 있지만 그는 공원을 나선다.
6) 세브르가까지 다 갔는데 벤치에 빈 우유 팩을 두고 왔다는 생각에 그는 공원으로 다시 향한다. 우유 팩을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벤치에 뾰족하게 나와 있던 나사에 바지 주머니 끝부터시작하여 넓적다리를 죽 타고 내려가며 옷이 찢어진다. 그는 급하게 백화점 한 구석에있는 여자 재단사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밀린 일감 때문에 당장 그의 옷을 수리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스카치 테이프로 뜯어진 자리를 붙이고 경비를 보러 직장으로 가야한다.
7) 뜯어진 바지 때문에 그는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가 없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자기혐오가 모자챙 밖으로 점점 더 험악하게 노려보던 눈을 통하여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가 완벽한 증오가 되어 세상 바깥으로 퍼져 나간다. 길 건너 노천카페의 웨이터와 손님들에게 그 증오가 뻗어가고 자동차를 몰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급기야 그는 비둘기빛 청회색의 하늘을 향해 총을 쏘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후 5시경, 그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한 기분에 휩싸이고 차라리 자신이 붕괴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뢰델 씨의 승용차가 나가게 되자 그는 자동적으로 문을 열어주고 인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8)그는 계속 쉬지 않고 걷는다. 보행은 마음을 달래준다.
9)호텔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천천히 빵과 포도주를 음미하며 마신다. 내일 자살해야지. 그는 잠에 빠져든다.
10) 그날 밤 악천후는 별안간 천둥번개를 몰아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뜸을 한참씩 들이면서 힘을 오랫동안 질질 끄는 악천후였다. 그러다 아침에 도시 전체가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천둥이 친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경악을, 그는 경험한다. 천둥 후에 세상은 아주 고요해진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공포에 떤다. 그러다 긴 시간이 자나자 그는 그곳이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구조되기를 기다린다(몽중 또는 선잠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무슨 소리인가 난다.
북을 두드리는 부드러운 소리가 요란해지더니 좍좍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는 옷을 입고 호텔을 나간다. 그는 자유 속으로 걸어 나갔다.
11) 그는 비가 그친 길을 걸어 자신의 집으로 걸어간다. 그는 젖은 평평한 신발을 가차 없이 철벅거렸고, 물이 한쪽은 가게의 쇼윈도로 또 한쪽은 주차된 자동차로 튀었으며 입고 있던 바짓가랑이로도 튀었다. 정말 신나는 짓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그런 지저분한 유희를 다시 되찾은 대단한 자유라도 된다는 듯이 즐겼다(이 비웅덩이 놀이는 아주 어려서 했던, 그의 추억어린 유치한 놀이였다).
집 복도에 다다르자 닫혀있는 창문과 공동변소 옆의 대야 위에 말리려고 펼쳐 놓은 걸레가 보인다. 비둘기는 흔적도 없다. 오물도 다 치워져 있고 깃털도 없다. 그가 처음 로카르 부인에게 했던 요청들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그는 누구에게 그렇게 긴 말을 할지도 모르거니와 누군가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것도 할지 모르던 위인이었다. 그런 그가 타인에게 요구하는 말을 했던 것이고 그것은 의외로 다 이루어져 있었다. 스스로도 놀라웠을 것이다)!!
*** 과장된 부분도 있었지만(비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쳤다고 하는 부분) 자신의 방과 경비를 서는 은행 앞 계단 세 칸밖에 모르던 쉰이 넘은 남자가 끔찍한 비둘기 때문에 자신의 방을 처음 떠나게 되고 호텔에 묵으면서 천둥소리에 놀라 죽음을 경험하고 아침에 내린 비로 청순하게 씻긴 건물을 보며 빗물이 웅덩이진 길을 걸으면서 아주 어려서 했던 유치하고 즐거운 물장난을 한다. 그는 이제 꽉 막힌, 언제나 작은 방에만 갇혀 있던 그 답답하고 요지부동인 조나단이 아니다. 심리묘사의 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이 희망적이어서 기분이 좋고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