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



 우리 인혜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은 스콧 피츠제럴드라고 한다. 주절주절 관념이나 말장난처럼 늘어지는 문체가 아니라 깔끔하게 서사만 진행되는 게 제일 좋다고. 워낙 책을 안 읽는 아이라 그 애가 제일 좋다고 할 때, 그건 정말 제일 좋은 게 아니라 자신이 읽어본 것 중에 가장 제 스타일에 맞는 걸 말하는 거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보는 눈은 정확한 것 같다. 

 나로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어떤 문체였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참 좋았었고 획기적인 내용과 문장이었다는 인식만 남아있었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그런 문체도 흥미로울 테니. 역시 재미있었다. 특히 처음 도입, 전개 부분은 압권이다. 

 아버지 로저 버튼이 아들 벤자민이 탄생한 그날 아침, 병원을 향해 가는 부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어떤 탄생이기에 그렇게 요란하고 코믹스러운 이야기로 전개되는지 궁금함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경이롭고, 두렵고 혐오스러운, 그러나 과연 아기이 탄생이 어떻게 그렇게 희한할 일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 마주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희화화하고 로저 버튼을 쑥맥으로 만들어놓는다. 

 그 후의 전개양상은 아버지 로저 버튼이 아들에게 차츰 익숙해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비극적인 일도, 경이로운 일도 화젯거리에 불과한 상류사회의 얇고 경박한 세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떤 스캔들의 주인공도  화젯거리였다가 추락하고 타인들의 무관심 속으로 침잠하지만 그는 한 생을 살아가는 고귀하고 유일한 존재이다.

 삶은 그에게 있어 어떤 식으로든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죽지 않는 한 그럴 수 밖에. 자신만의 삶을 살든, 남들이 살았던 방식을 좇아 살든.... 하지만 벤자민에게 삶은, 남을 좇아 산다해도 방식은 정반대일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삶과는 역행되게 돼있는 그만의 이상한 프로그램 때문에.

 그는 자신의 운명대로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젊어지다 아주 어린 아기가 되어 죽는다. 역설이면서 동시에 비역설인 것은 그의 몸(외양)은 범인들과 정반대의 상태로 태어나고 죽지만 그 삶은 그래도 상당히 타인들과 비슷했다는 점이다. 

 어려서는(늙어서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외로웠고 젊어서는 쾌락과 일에 매진했으며 늙어서는(어려서는) 타인들의 보호를 필요로 하다 죽을 때는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퇴락해 사라진다는 것(소멸)이 그렇다. 

 인간의 삶 대부분이 그러하고 정반대의 패턴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 또한 결과적으로는 그런 삶을 살다 죽었다. ㅠㅠ


차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젤리빈

낙타엉덩이

도자기와 분홍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

......


 11개의 단편 중 위의 ''도자기와 분홍'을 뺀 네 개만 읽고 나머지는 그냥 덮었다. 다른 볼 책은 쌓여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넘어간다. 그리고 피츠제럴드의 단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이 작가는 돈을 벌기 위해(많은 다른 작가들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읽을 만한 작품을 쓰기 위해 엄청 머리를 굴린 사람으로 보인다. 도가 지나친 향락과 사치를 일삼다 그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아내 젤다와의 애증이 얽힌 삶은 끔찍하고 한심하다. 돈과 명예에 집착한 것도 그렇지만 아내와의 삶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치졸한 남편이었음을 보여준다. 많은 남자가 여자들보다 훨씬 질투가 심하고 나약하고  치졸한 것 같다. 이런 남자들을 피츠제럴드가 제일 첨단에서 대표해준다.

 하지만 이해도 해볼 수 있다. 거대한 사회라는 벽 앞에 정면으로 맞선 남자에게 살아남기 위해 하는 일들이 어떻게 정의롭고 멋지기만 할 수 있을까. 여자가 세상의 Man이라면(아직 분명히 남자들의 세상이다) 여자들 또한 그렇게 이기적이고 치졸하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쓸지도 모른다.

 쨌든 사람은 동물보다 더 낫기는 고사하고 훨씬 못 미친다. 지성만으로 우월한 의식을 갖는다면 경박하고 얕은 사람이다. 나도 간혹 그런다. 어제는 그래서 동생과 싸웠다. 그애 또한 돈과 권력만 있으면 피츠제럴드 못지 않을 위인이다. 가난과 어려움이 강제되지 않았다면.... 성찰을 한다고 해서 그애와 잘 지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고 절망할 게 없다.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다이아몬드 산을 둘러싼 한 가정과 그에 딸린 노예들과 그 골짜기...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를 생각하며 인생의 경박함과 슬픔과 허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게츠비'를 읽을 예정이다. 그러고보니 위대한 게츠비는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 게츠비인지, 게츠비에게 위대함과 한심함은 앞뒤의 차이, 단순한 뒤집기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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