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237~264페이지


권여선 <팔도기획>


  짧은 내용이 5개의 챕터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 화자의 상상이 가슴을 뜨겁게,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사실은 '상상'이 아니라 화자의 '기대'나 '희망'의 다른 표현이리라. 화자의 마음은 작가의 마음이기도 할 터, 작가는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결벽한 마음을 이렇게 쓴 것인지도. 


1."팔도기획'이라는 기획출판사에 한 여자가 자신이 쓴 소설을 들고 온다. 그녀는 당당한 태도에 곧바른 문학관(세계관이라고 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겠다)을 지닌 여자다. 

 "소설가는 글에 향기를 불어넣을 줄 아니까요." 그녀가 하는 말이다. 화자는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 "네에? 향기요?", "이런 우스꽝스러운 얘기는 누구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2.'팔도닭발'이라는 요식업체 사장의 자서전 대필이 촉박해 그녀를 불러 일을 함께 하게 된다. 그녀는 윤작가로 불리게 되는데, 그녀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은 대신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당당하게 의지를 밝힌다. 그녀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풀어 대필을 하려던 정선배는 황당해하면서 윤작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한다.


3. 윤작가는 정말 충실히 자기 일을 한다. 화자는 어쩔 수 없이 정선배를 본의 아니게 돕게 된다. 화자는 한편 정선배나 홍팀장의 속물적이고 기계적인 일처리에 늘 속으로는 환멸을 느끼고 있지만 늘 그들 편에 서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 화자는 사무실에서도 가장 가운데 앉아 있어서 곧바른 윤작가와 세속적인 정선배 사이를 이어주는, 또는 그 경계를 나누는 위치에 있다. 


4. 드디어 정선배와 윤작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터진다. "그 일은 폭발물처럼 계산된 시각에 정확히 터지도록 예비되어 있었는데..."라고. "그럼 나가! 나가 이 쌍년아!" 정선배의 극한 폭발. 윤작가는 그렇게 나가게 된다.


5. 환갑잔치 날에 맞춰 팔도닭발 사장의 회고록이 출간된다. 모두 기분이 좋다. 회식이 있을 예정이다. 홍팀장은 윤작가가 써놓은 회고록을 읽다가 눈을 비빈다. 그리고 원고를 자신의 책상 속에 조심스럽게 밀어넣는다. 

 화자는 홍팀장의 눈을 비비게 만든 그 원고를 읽고 싶다. 화자는 상상한다. "먼 훗날 미지의 방문객이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저는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원고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건네주는 원고를 유리그릇처럼 소중하게 받아 안는다. 그렇게까지 조심하실 필요는...... 나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소설가는 글에 향기를 불어넣을 줄 아니까요."


"적절하게 자신을 감추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기술이 만연하는 이즈음 윤 작가의 문학에 대한 투명함과 견고함은 솔직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연기에 서툰 권여선은 타인에게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이 쿨하지 못한 인물에게 뜻밖에도 문학적 진지함과 엄숙함을 부여한다..... 예술조차 지나치게 쿨해져서 더 이상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신파는 아닐까." (심진경 문학평론가)


 감동적이었다. 문학이 얼마나 문학적일 수 있는지, 알게 모르게 우리 대다수는 상업적인 목적과 명예에 현혹돼 문학을 이용하고 적당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예술적으로 보이면서도 세상의 기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타협하고, 그런 방식을 세련되게 익히려고 노력하지는 않는지... 

 품위가 촌스러움이 되고 세속성이 '쿨'이라는 미명을 쓰고 당당히 활보하는 세상... 하지만 작품만을 보자면 윤작가의 글이 인간 내면을 흔들 수 있는 깊이를 지니게 될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화자의 마지막 장면의 상상은 아직 작가가 되지 않은, 미래의 윤작가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과 같았다. 

 윤작가라 불리던 그녀는 '자기 마음에 드는 소설 작품이 나올 때까지는 응모도 안하고 등단도 안할 거라'고 정선배에게 말한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공감한다. 작가란 오직 필력만으로 인정받아야 할 사람이다.




 













2011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중 81~105페이지

 

권여선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숲>


 사랑했던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뜨고 한참 후, 남자의 동생이 전화를 걸어온다. 남자의 어머니가 여자를 꿈에서 보았다고 한 번 보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바로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가 남자의 어머니와 남자의 동생을 만난다. 셋은 바닷가를 돌아 비자나무숲으로 드라이브를 나선다. 여자는 자주 환각에 빠지곤 하는데,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교통사고를 당하는 환각에 빠진다. 

 이 환각이 실제인지 환각인지 독자로서는 판단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편소설에서 결미로 사고나 자살, 죽음은 정말 싫다. 아무리 서사가 진지하게 진행됐다 하더라도 왠지 작위적인 매듭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권여선의 작품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나... 나로선 완전히 납득이 되지는 않는 결말이었다. 


 전에 읽었지만 '사랑을 믿다'를 다시 읽어야겠다. 그 단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일 연신알라딘에 가서 중고로 사야겠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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