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43~76페이지

권여선 <하늘 높이 아름답게>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일흔두 살에 죽은 마리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견 '전'이 될 것 같은 이야기는 아주 짧은 마리아의 출생과 어린시절을 다루고 이내 문단을 띄어 베르타의 시점으로 이동한다. 

 

 베르타는 성당 마당 파라솔 아래에서 처음으로 마리아의 죽음을 듣고 안타까워하면서 성도들과 마리아를 추억하는 담화를 나누는데... 

 베르타는 같은 성도인 자매들의 마리아에 대한 회고담을 들으면서 그녀들의 말버릇이나 성격을 일일이 자기 뜻대로 평가하여 한심하게 생각한다. 베르타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문장.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베르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성도들은 돌아가며 마리아에 대해 자신이 알던 바를 하나하나 술회하며 아쉬워하는데, 이 때마다 마리아를 이야기하는 자매와 그걸 바라보며 속으로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 베르타. 작가의 시선은 두 사람을 오고간다. 

 이야기가 점차 진전되자 자매들은 마리아에 대한 자신들의 속내와 정을 드러내는데 그쯤 이르자 베르타의 편견은 순간 수정되기도 한다. 그녀들을 쉽게 오해하고 경멸했던 자신에 대해 참회한다. 처음에는 상당히 냉정하지만 지적인 여자라고 생각됐던(독자 입장에서) 베르타 또한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는 걸 그제야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마리아라는 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차츰차츰 드러난다.   그녀는 어려서(옛 여인들의 인생이 대부분 그러했지만)부터 막내딸이었음에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살았고 젊어서는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고생을 했으며, 그곳에서 터키계 독일인과 결혼을 할 참이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으나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던 남자는 돌연사를 당하고 만다. 마리아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아이를 입양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의 생은 계속 어려움과 구차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죄를 잊지 않고 보속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하느님께 은혜를 구하지도 않는다고 고백했었다. 

 또한 장기 위탁보호를 하다 아들을 삼은, 지금은 입원중인 아들이 있고 친손녀가 아닌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신부의 어머니뿐이었던 걸 보면 마리아는 친아들, 친손녀처럼 그들을 돌보며 살았고, 그걸 아무에게도 티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마리아에게 하나의 형이상학적이고 보람에 찬 일이 있었는데 그건 태극기를 팔러다니는 일이었다. 아마도 독일에서 고국에 대한 태극기에 대한 어떤 추억이 있었으리라 추측하는 베르타. 

 그리고 태극기 행상을 가는 마리아와 어느 하루 같이 길을 다녀왔던 베르타는 잊고 싶은, 그러나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남아있는 역사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싸구려 양산을 쓴 여자의 우산대가 베르타를 치고 지나가자 베르타의 갑작스런 화가 마리아를 향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모님은 뭣 때문에, 베르타가 앙칼지게 물었다. 하나도 못 팔 거면서 그깟 태극기는 왜 그 먼 데까지 팔러 다니시는 거예요?"라고... 

 더구나 그 양산이 고급스런 양산이었다면 자신이 그렇게 화를 마구 냈을까? 뒤늦은 자책...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베르타의 한탄은 우리 대부분의, 인간들 대부분의 회오일 것이다. 이 문장은 진정 명문이다. 그 어떤 명작의 명문보다 직설적이고 함축적이고 날카로운 문장. 참 고귀하지를 못하구나. 우리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다 읽고나니 제목이 너무 좋다. 마리아의 일견 구차하고 초라한 삶, 그러나 그녀의 삶은 높이 아름답게 살아낸 삶이었다. 





 















제 12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91~113페이지


<희박한 마음>


 이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지만 그 이유나 근원을 찾아내기 힘든 상황(정황)에 대한 무력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이유나 근원을 찾았다해도 어쩔 수 없는, 개선할 수 없는 삶의 자기운동을, 서글프고 끔찍한 생의 아픈 이면을 그리고 있다.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기괴하고 불안한 소음이 들려온다. 그러나 아무리 추적해봐도 어느 호수인지 찾아낼 수 없다. 한참을 시달리다 우연히 알고보니 앞집 현관 앞에 있는 수도계량기(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에서 나는 희한하고 괴이한 울음같은 소리...

 같이 동거하던 친구가 떠나갔다. 둘은 싸운 적도 없고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한 감정이 남아있다. 함께 영화를 보러 외출을 나갔었다. 맛집을 찾아간다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주인공은 호흡이 가빠온다. 천식(이것도 맞는지 모르겠다, 호흡기가 안 좋은 건 확실하다)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무언가를(영화티켓이었던가...) 던져버린다. 친구가 그걸 주워든다. 그래 영화는 보지말자,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다. 결국 영화를 보지 않고 밥만 먹고 돌아왔다. 

 그런 찜찜한 기억들이 몇 개인가 그녀의 뇌리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근데 그 일은 언제 있었던 일이었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은 겹쳐지기도 하고 아예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다. 자신의 기억이지만 도대체가 희미하고 불투명하고 오락가락한다. 그런데 친구가 떠나고 언제부터인가 수면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자 멍하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희박하다.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었어. 그들이었어.디엔.

*디엔-같이 살았던 친구이름


 

*** 

 누구와 함께 산다는 건 언제나 이별을 뜻한다. 실제의 이별이든, 마음의 이별이든... 왜냐면 서로 아무리 아껴주고 잘해주려 해도 어느 순간, 힘들어진다. 상대의 습관과 그 마음이 견딜 수 없어진다. 내 좁은 마음이 너무 싫지만 마음은 넓어지지 않는다. 상대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내 딸과 계속 살 수 있을까. 딸은 나랑 평생 살 마음이라는데... 딸은 그래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친구랑은 절대 못 살 거 같다. 남편도 아들도 강아지도 평생 살기에는, 아무래도 아니다. 아니야...


 아파트에서 소음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경우는 허다하다. 언젠가는 분명 윗집에서 들리는 소음이라고 여겼는데 헉, 2층이었다. 우린 6층인데... 도대체 아파트 지을 때 방음을 위한 자재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는 건가.

 그린빌에 살때는 간혹 새벽에 우는 아이 소리가 들려서 속으로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혹시 학대당하는 아이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도무지 그 소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간혹 고양이가 앙칼지게, 위험에 처한 것 같은 소릴 들을 때도 있다. 그러면 맘이 미칠 것 같다. 누가 우는 소리, 누군가 위험에 처한 것 같은 소리, 떨어지는 물소리, 긁고 치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고 설명한다. 오래 전 대학 때의 사건도 되불러온다. 

 

 이 작품은 이 대도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동거인에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공생관계의 갈등, 그 힘겨운 관계에 대한 성찰로 읽혔다. 마지막엔 절망과 함께 슬픔이 느껴졌다.

권여선~ 정말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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