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니꼴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고골의 <검찰관>은 5막으로 이루어진 희곡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한 건달이며 사기꾼인 홀레스따꼬프라는 인물이 여행 중, 지방 도시에서 우연히 벌이게 된 해프닝인데, 그 간단한 일이 많은 공직자들과 작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정말 쑥대밭이 된 건 아니고 여러 관료들의 속을 헤집어 드러나게 된 그런 '쑥대밭', 그러니까 그들의 그 동안의 직무와 관련된 부패와 그들의 인격적인 면에서의 가차없는 진실이 드러난 '쑥대밭'이 되었다는 뜻이다.
1막 1장 시작에서 이 시의 시장은 지인의 편지를 시의 중요직책을 맡은 관리들에게 알린다. 그 편지에 의하면 비밀 명령을 받은 관리 하나가 현을 시찰하러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편지에서 벌써 미리 언질을 해준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당신에게도 사소한 잘못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로 친한 사이인 발신자는 너도 나도 우리는 모두 부패에 물들어 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이 편지를 보내고 있다. 시장에게 나름의 처신을 하라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편지는 시장 뿐 아니라 우체국장, 판사, 의사, 자선병원장, 지방 지주 등에게 커다란 공포와 근심을 불러온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스스로 그들은 자신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와 권력을 누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멍청한 쌍둥이 형제인 지주들이 한 여관에서 상뜨뻬쩨르부르크에서 온 특이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그 문제의 '검찰관'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연기를 할텐데 아주 우스꽝스럽고 과장되며 어리석은 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 두 형제의 어리석음은 사실 이 도시 전체관료들의 영혼 없는 정신에 불씨를 당기는 역할로써 그만이다. 곧 시장과 주요관직의 주인공들은 서로 걱정을 해주기도 하고 자신의 안위에 대해 불안을 느끼면서 문제의 검찰관을 찾아간다.
이후로 그들은 사실은 사기꾼이면서 우연히(시기를 잘 맞춘 덕분에) 검찰관 행세를 하게 된 홀레스따꼬프에게 아부하기 위해 돈을 거저 주고 자신을 변호하며 자신의 직위가 날아갈까봐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마침 홀레스따꼬프는 방탕하고 또 허망한 인간으로 노름에서 돈을 다 잃고 몹시 궁한 지경에 처해있다가 졸지에 검찰관 행세를 하게 되어 이후 완전한 연기를 펼치게 된다. 그는 시장과 작은 지방 도시의 사람들을 마음대로 속이게 되는데, 사실 그가 그들을 속인 면도 있지만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이 그의 능청스럽고 자유분방한 언사에 스스로 포획되어 그를 검찰관 나리로 완벽하게 인식한 면(속은 면)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아무도 그에게 의심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의 러시아 정황이 그만큼 관료주의적이고 획일적이며 황제의 명령 하나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었던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불안을 느낀 홀레스따꼬프의 하인은 이제 그만 연기를 그만두고 여기를 떠나자고 주인에게 권한다. 하긴 곧 진짜 검찰관이 올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기꾼 홀레스따꼬프는 마냥 속물이면서 더 속물답게 낭만적인 꿈도 가지고 있다. 그는 작가 친구가 있고 본인도 작가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사건을 기록한 편지를 친구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 편지를 소재로 작품을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체국장은 이상한 낌새를 채고, 그리고 궁금증에 못 이겨 그 편지를 뜯어본다. 그는 편지를 들고 황급히 나타난다. 공포와 경외심으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홀레스따꼬프의 진짜 정체를 알려준다. 시장과 관료들은 경악하지만, 뒤어어 헌병이 들어와 진짜 상뜨뻬쩨르부르그에서 관리가 오셨다고 알린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위치를 바꾸고 화석처럼 굳어버린"다. 그들은 또다른 더 무서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 책의 뒤에는 50페이지에 달하는 작품 해설이 실려 있는데 역자 조주관 교수의 '고골의 생애와 작품 세계'이다. 역자는 당시의 러시아의 정치적 현실과 관료체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작가 고골에 대한 이해와 작품 <검찰관>을 심도있게 해부해서 보여준다. 작품해설을 읽으며 배운 바가 많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점에 대해 옮겨보려 한다.
이 작품 <검찰관>이 당시 얼마나 화제작이었는지를 설명하는 몇 문장.
"검찰관은 황제 니꼴라이 1세 치하의 관료제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은 황제의 특명으로 1836년 4월 19일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보수적인 언론과 관리들의 비난 때문에 고골은 로마로 피신하여 1842년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180쪽)
고골은 푸슈킨에게서 엄청난 도움을 받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높였다. 푸슈킨은 고골에게 구세주.
"고골은 항상 한 편의 순수한 국민 희곡을 쓰고 싶어 했으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부탁을 받은 푸슈킨은 고골에게 자신이 경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몇 해 전에 노브고로드 지방을 여행하던 중 그곳의 지방 유지들이 자신을 검찰관으로 오인하여 일어난 작은 소동을 희극의 소재로 추천하였던 것이다"(186쪽)
"<검찰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검찰관에서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홀레스따꼬프인가 아니면 시장인가?"(188쪽) -- 지방 관료들을 모두 속인 사기꾼이지만 작가 같기도 하고 환상적인, 나름의 도덕성을 검열나온 사자(?) 같기도 한 홀레스따꼬프가 주인공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중심에 서서 부패하고 부정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인물인 시장이 주인공인지...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검찰관은 '오해받은 정체성'과 '공포'에 대한 문제를 심도있게.........뱌젬스끼의 말처럼 이 희극에 묘사된 것은 글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심리적 진실'이다. 심리적 진실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반응이 전체적으로 공포라는 지배적 분위기 속에서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공포는 시장이나 관리들의 죄의식에서 나온 심리일 뿐만 아니라 니꼴라이 1세의 공포정치에 자동적으로 수반되어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시장은 공포에 짓눌려 홀레스타꼬프의 모든 말을 시종일관 반대로 생각한다. 사실 홀레스따꼬프는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시장은 자기 상상력을 동원하여 마음대로 왜곡되게 해석한다. 홀레스따꼬프가 보여주는 초기의 단순함과 솔직함이 시장과 관리들의 교묘한 말놀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189~190쪽) -- 상황에 이끌려가기도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그 상황을 더 왜곡하고 그런 다음 그 두려움 때문에 더 완전히 그 왜곡된 환상을 믿게 되는 악순환적 환상성....
"고골이 선택한 사건이나 주인공 들은 그 생생한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과장되고 희화화되어 있다. 이는 고골 창작 전반에 나타나는 특징으로 지극히 세태적이고 그럴듯한 심리를 지닌 인물들이 기이하고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의 환영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환영을 등장시키는 고골의 미학은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으로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199~200쪽) -- 외투, 코, 광인일기 등
"홀레스따꼬프와 같은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을 규정해 주는 용어가 있다. 그의 '과장된 거짓말'이나 '그와 같은 행동 양식'을 우리는 홀레스따꼬프시치나(홀레스다꼬프주의)라고 말한다." (211쪽)-- 한 작품에서 우리는 표본이 되는 인간형을 설정할 수 있다. 소설에서 어떤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이상의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 인물은 그리하여 영원성을 지니고 우리들에게 하나의 지표가 된다.
쓸 게 태산같지만 이쯤해서 접어야겠다. 역자의 해설은 끝이 없이 이어져 이걸 다 쓰다간 손가락이 손등이 아플 것 같다. 또 내일 로쟈샘의 강의를 들으면 무한정 배울 게 많은데 그런 배움 전체를 어떻게 다 기록해두는가 말이다. 스승은 많은데 학생인 나는 심각하게 여러 면에서 유한하다.
고골의 작품은 배울 게 많다. 작품의 형식에서보다 내용상 풍자적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