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가을학기가 미뤄진 계기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이 책을 읽었다. 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작년 쯤이었던가,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살 때 같이 샀던 책이다. 그 때의 계획으로는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견주어서 읽고 싶어서였는데(사실은 이 채털리부인 말고도 안나카레니나나 그 외의 불륜의 주인공인 부인들을 몇 편 더 읽고 비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었다) 늘상 그렇지만 독서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나로서는 항상 텍스트 하나에 온 시간을 허비하는지라 결국 구석에 놓아둔 채 '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려니 밀린 책을 읽는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시간이 좀 아깝다,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묘사나 설명이 너무 닳고 닳지 않았나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왜 그 유명한 로렌스의 '채털리'가 내게 불만스러웠을까. 일단은 숲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아름다운 숲의 풍경이 거슬렸다. 왜 그렇게 숲이 환하고 꽃은 심어놓은 듯 아름다운지..... 특히 사냥터지기 오두막 뒤의 풍경은 일부러 가꾼 듯 꽃들이 아름답다. 자연 자체만으로 아름다운게 진짜 아름다움이고 그게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된다. 사냥터지기 또한 너무 잘 생겨서 매력이 오히려 반감됐다. 사냥터지기가 사냥터지기처럼 생겨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랬다면 코니가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날렵한 몸매에 흰 피부, 큰 키, 잘생긴 외모. 사실감이 오히려 떨어진다. 진짜 매력은 외모보다 그만의 어떤 개성적인 분위기나 특별함이 있어야 사랑에 빠질 요인이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코니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긴 대부분의 문학작품의 여자주인공은 대부분 아름답다. 그것은 거의 정해진 규칙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최근 문학작품에서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달라진 것 같고, 요즘은 오히려 인물의 외모를 묘사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그냥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만 그 상황에 맞는 표정의 주인공을 짧게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인물을 점진적으로 드러내 주는데에 합치된다. 

 그런데 도대체 남자 주인공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냥터지기의 이름이.... 그는 그런데 굉장히 정직하고 올곧은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용기있고 더구나 자신을 일부퍼 낮출 줄 아는 멋진 남자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팽창해가면서 세상이 얼마나 물질적인 가치로 재단되고 있는지, 계층(계급)의 문제가 인간을 가혹하게 구속하고 희망없는 미래를 강요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데 이는 로렌스의 사상의 일부를 집약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로렌스는 사냥터지기와 코니를 통해서 서로 다른 계층(계급)을 화해시키고 결합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체를 배제하고 주변적인 요인으로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현상에 대해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러나 로렌스의 애정관에 대해서는 어떤 여자라도, 특히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공격 대상이 될 것 같다. 물론 성적인 부분이 사랑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성인이라면 익히 아는 바이지만, 그렇더라도 남자주인공의 코니를 향한 사랑에 성적인 부분이 그렇게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회의가 들었다. 

 하지만 로렌스의 엉뚱한 이 소설은 상당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사냥터지기가 보낸 편지로 대미를 장식하고 끝나는데 그 부분은 일견 동화적일 정도로 다부지고 건설적이다. 보통의 리얼리즘이라면 사냥터지기는 쫓겨나 불행한 파멸을 맞고 코니는 남편으로부터 부정한 여인으로 지목되어 사회적으로 매장이 될 텐데 말이다. 그래서 완전히 딴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은 결말이지만 오히려 신선했다. 왜 하층계급은 행복할 수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보다 이런 반전이 반가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 소설이야. 이런 생각이 드니 나도 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얼리티 희생자란 생각이 든다. 주위 친구들은 내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비난 아닌 비난을 할 때도 있는데... 하긴 인생 자체가 환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간을 활용해서 <마담 보바리>를 완전히 그 구조와 디테일을 따져서 분석하고 독후감 이상의 독후감을 쓰고 싶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하는 일도 별로 없이..... ㅠㅠ

 정말 시간이 되면 이삼일 날을 잡고 '보바리'를 심층 분석해보리라, 또 다짐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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