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구조된지 벌써 3주일 쯤
달은 지금 우리 아파트 후문을 떠나
새주인이 사는 장지동에 살고 있다
사랑받으면서 사는 것 같다
입양한 새주인이 보내준 사진이
너무 사랑스러워 눈물이 나려한다
달은 영문도 모르고 태어났을 것이다
자신이 냥이인지도 모르고 태어났을 것이다
2미터 가까운 좁고 긴 구조물 안 바닥에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환한지 몰랐을 것이다
어느날부터인지 자꾸 아기냥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아파트 후문을 지날때
어린 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다
이제와 다시 사건을 구성해보면
어미는 다섯마리의 새끼를 낳은 듯 하다
네 마리는 후문 길고 넓은 울타리안에서 키웠는데
희한하게도 달만 아파트명패를 높다랗게 붙인
그 구조물 안 깊은 바닥에서,
혼자 버려졌던 것이다 아니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저간의 사정이 있으리라
그러다 어느날 101동 모자가 후문을 지날때
냥, 냥, 냥, 애처롭게 우는 아기냥이 울음소리에 멈춰섰다
맞아도 괜찮을 만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냥이를 구조하려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구조물 맨 위에
비닐과 의자깔개를 덮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잠들기 전, 컴컴한 어둠 저 아래서
어린 고양이가 그새 죽어있을까봐 두렵고 불안했다.
다음날 오전 냥이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관리소장과 직원들이 나서서 구조물 아래,
인조 대리석 한장을 뜯어내고 냥이를 구조했다
털은 꾀죄죄하게 빗물에 젖어있고
야구공보다 크지 않은 얼굴은 애처롭게 떨고 있었다
101동 모자가 냥이를 일단 데려갔다
내 딸은 사진을 찍어 고양이 카페에 올렸다
이튿날 새벽엔
냥이를 상자에 넣어 후문에 놓아두기도 했다
제 어미가 찾을지도 모르니 데려가라고...
하지만 어미는 데려갈 마음이 없다
사람 손타면 절대 데려가지 않는다고
어미는 상자안의 냥이를 보고도 잠시 그 주위를 배회할 뿐
상자안 제 자식을 정말 데려가지 않는다
끝내는 상자 주위를 떠나
울타리 끝에 올라앉아 하늘을 보고 거리를 내려다본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구조된 아기냥이
괜히 구조했나 괜히 버림받을 상황을 만들었나
감정이입이 심한 아줌마 셋이서 마주 앉아 한숨만 쉰다
그러다 카페에서 사진을 보고 사연을 읽은 몇 사람이 입양을 신청해왔다
천만다행! 감사하고 뿌듯하고.....
그렇게 열흘 가까이 여러사람 맘을 들었다놨다했던
아기냥이는 입양자를 만나 떠나갔다
며칠 잠을 설치고 어린 냥이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하던 마음이 탁 놓이니
일견 뿌듯하고 일견 애잔하고 또 일견 속이 후련하다
태어나서 살아야한다는 것
고달픔, 불안, 좌절,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생명에의 애끓음
새주인은 오늘 냥이의 사진을 보내왔다
아직 어려서 무조건 귀여운 냥이는 새주인의 '달'이 되었다
냥이의 주인아가씨는 냥이를 '달'로 부른단다
우리도 냥이를 이젠 달로 부른다
달은 어미를 잃고 인간어미를 만나 달이 되었다
달을 볼 때마다 달을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달은 이제 아주 다른 달이 된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밝게 환하게 새엄마랑 잘 살아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잊지마 너 때문에 2박 3일 잠을 못자서 그후로
내가 더 심하게 아프고 있다는 걸
우리가 너를 구조하려고
비를 맞고 서서 아파트 후문을 못떠났던 걸
네 어미가 널 데려가게 하려고
새벽녁에 널 넣은 상자를 멀리서 눈이 아프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그때부터 내가 아직까지 아프고 있다는 걸
아니야, 아니야, 다 잊어
아, 넌 아무것도 몰라, 모를 거야
근데 몰라도 돼
그냥 달처럼 보름달처럼 환하게 살아
나는 달을 볼 때마다 네가 환히 빛나는 달로
주인이랑 살고 있다는 걸 느낄테니까
달은 지금 장지동에서 새주인이랑 살고 있다
오늘 새주인아가씨는 달의 사진을 보내왔다
귀여운 데는 못 당해,
달은 사랑받고 있다. 귀여운 게 최대 무기인줄도 모르고